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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로 Dec 14. 2023

결혼식, 빨리 끝나 버렸으면 좋겠다

행복해야하는 날인데 행복한 척 한 날

D-DAY

48일만에 준비한 결혼식을 마무리 하는 날.


교회를 다녀오고 일주일 사이에 시어머니가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하셨고, 결혼식 전까지 며칠이라도 같이 지내고 싶다고 하셔서 마음 약한 남자친구는 본가에 들어갔다. 그렇게 약 두달 간 모진 모습을 보인 부모도 부모라고... 사실 난 이해되지 않지만,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봤다. 본가에서 자고 아침 일찍 우리 집으로 와서 메이크업 샵으로 가는데 남자친구가 입을 뗀다.


"누나들은 안 올 수도 있을 거 같아. 아침에 나오려고 하는데 큰 누나가 자기는 안가겠다고 하더라고. 급히 나오느라고 긴 말 나누지는 못했는데 내가 진짜 안오면 앞으로 다신 안 볼 거라고 했어."

"부모님은 오신대?"

"부모님은 오실 거 같아. 교회 사람들도 오고 하니까 면 생각해서라도 오실 거야."

"에휴... 정말 마지막까지 마음 편하게 해주지 않는구나..."

"미안하다. 정말..."


그렇게 내가 운전을 해서 메이크업 샵에 갔다.(남자친구는 집도 차도 없고 운전도 할 줄 모른다. 집도 차도 내 걸로.. 운전도 내가...) 전문가가 화장을 해주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진한 화장은 아니지만 샤샤샥 하는 손길에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에 기분이 조금씩 풀렸다. 메이크업이 끝날 쯤 웨딩플래너가 보내 준 부케가 도착했고, 내 동생이 도착했다. 예식장까지 운전해 줄 기사로 나서준 것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내내 우리 부모님은 뭐든지 너희 뜻대로 너희 편한대로 하라며 적극적인 찬성과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내 동생 또한 작은 것 하나라도 도와주려고 애써주었다. 너무나 상반된 태도가 나의 불만과 분노를 더 키운 걸 수도...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남동생 결혼식에 오지도 않는 누나들과

예식장까지 기사로 나서준 나의 동생.


여튼 그렇게 예식장으로 이동한 후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시험기간이 끝나고 급하게 축가 준비를 해 준 우리 반 학생들을 비롯하여 작년 우리 반 아이들, 그리고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축하해 준 몇몇의 졸업생까지... 감사한 분이 너무나 많았다. 신부 대기실에서 앉아 찾아오는 손님들과 인사하고 사진 찍으며 한 시간을 넘게 보내다 보니 예식 시간이 되었다.  늦게 온 친구와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급하게 입장 준비를 했다. 드라마에서는 아버지와 신부가 손을 잡고 입장 연습도 하고 그렇던데, 아버지와 나는 그런 연습 없이 한 번에 잘 잘해내야 했다. 입장 음악이 흘러 나왔고 문이 열렸다.


'결국 하긴 하는구나. 결혼.'


코로나 막바지에 진행된 결혼이라 생각보다 많은 손님이 와주셔서 많은 축하를 받았다. 축하를 받아 마냥 기쁘고 행복하기만 했어야 하는 날인데 남자친구와 나는 이 결혼을 준비하는 내내 슬프고 힘든 일들이 넘치고 넘치다보니 빨리 끝나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자친구가 속삭였다.

"아, 너무 힘들다. 빨리 끝나버렸음 좋겠어."


같은 마음이라는 게 신기하고 웃겨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결국 그는 누나가 둘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사진은 부모님과 본인 셋만 찍게 되었고

우리 쪽 손님들은 누나 둘에 막내 아들이라는 걸 알았기에 누나들은 어딨냐고 수군거렸다.


여하튼 결혼을 했다. 내가. 

서른 아홉에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으며 유부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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