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란 포장지로 꾸민 의미 있는 선물
의미 없는 선물은 아름다운 포장으로 마음 설레게 하고
의미 있는 선물은 고통이란 포장으로 외면하게 한다.
의미 없는 선물은 받지 않아도 다시 배송되지 않지만
의미 있는 선물은 받을 때까지 다시 배송된다.
이제 더 이상 피하지 않겠다. 고통으로 포장된 그 선물 상자를 열어본다. 상자 안에 든 선물 '이간질하는 사람'.
'이간질하는 사람'이 선물이라니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하늘을 보지만 다시 의미를 찾아본다.
사는 동안 '이간질'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사는 동안 '이간질'은 어디서든 일어나는 일이다.
학교, 직장, 가정, 사회, 정치 어느 곳이든 피할 수 없다.
이간질하는 사람을 욕한다면 난 평생 욕쟁이가 된다.
평생에 걸쳐 일어나는 일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간질하는 사람'과 '이간질에 휘둘리는 사람' 둘 중에 나는 후자를 바꾸기로 했다.
'이간질하는 사람'은 타인으로 내가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 자신도 못 바꾸는데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평생을 만나야 한다면 나를 바꾸는 게 가장 쉬운 일이다.
'이간질하는 사람'에게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말을 듣고 흘린다고 하지만 흘리기는 쉽지 않다.
어느 순간부터 '이간질하는 사람'에 대한 경계는 사라지고, 나를 욕하는 그 사람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세운다. 마음은 먼지처럼 쌓이게 되는 것이다.
먼지는 처음에는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층층이 쌓이는 것처럼 어느 순간이 지나야 먼지가 보인다.
이간질하는 말을 듣고 '난 그딴 소리에 신경 안 써'하며 쿨한 척 해도. 점점 오해란 마음이 쌓이고 폭발한다.
천천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아주 천천히.
이간질에 당사장에게 욕 할 필요는 없다.
감정이 격해지면 손해는 오롯이 내 것이 된다.
방법은 오로지 하나.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당사자와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간질하는 사람'을 만날 때 이런 사람도 있음을 알면 된다. 그리고 나를 욕했다는 사람과 직접 대면하고 오해를 풀면 된다.
사건 이후 직접 대면하면 처음에는 이간질한 사람 때문에 약간 냉랭한 시간이 있지만, 서로 터놓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사람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나쁜 사람이 아닌데, 오해했네?' 하는 순간이 온다.
혹시 누군가 나와 다른 사람을 이간질한다면 명심해라.
이간질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에 휘둘리고 있는 나 자신의 잘못임을 알아라.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이간질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다만 그것을 알고 나에게 답을 찾는다면 더 이상 '이간질'은 힘을 쓸 수가 없다.
항상 문제는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