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흘러넘친다.
얼마 만에 키득키득 거리면서 웃어봤는지 모르겠다. 저자인 브라이슨과 친구 카츠와 함께 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도전에 관한 이야기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 코스는 3,500킬로에 달하는 대장정의 길이다. 하루에 35킬로를 걷는다고 해도 무려 100일이 걸린다. 등에는 20kg의 등짐을 지고서 말이다.
말이 쉽지 백팩에 책 몇 권만 넣고 동네를 걸어도 한 시간이면 땀이 줄줄 흐른다. 평지에서 걸어도 힘든데 애팔래치아는 산악지대이다. 그것도 불곰과 늑대, 여우, 멧돼지가 사는 곳, 호랑이나 사자는 책에 이야기가 없는 걸로 봐서 어쩌면 우리나라 산악지대보다 양호한 환경이긴 하다.
우린 그 시절에 호랑이가 곳곳에 살아 있었으니 말이다.
낮과 밤, 낮이면 걷고 밤이면 자고 배고플 때 먹는다. 트레일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만을 충족시킨다.
걷고 자고 먹고 다른 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매일 같은 것을 반복하다 보면 시간관념도 잊어버린다. 오늘이 며칠인지 주말이 언제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저 매일 같은 일을 하며 다른 공간을 걷는다.
이렇게 걷다 보면 일상에서 소소하게 즐겼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된다.
침대에서 잠을 자고. 차를 타고 이동하며.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먹고. 씻고 싶을 때 씻는다.
집이란 공간이 주는 안락함.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사람. 수시로 할 수 있는 전화.
평소에는 가끔 짜증도 나고 소중한 걸 잊었지만 내가 누리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니 소중함을 알게 된다.
출발하기 전에는 맨땅에 텐트를 설치하고 어떻게 잠드나 싶었지만? 그건 도전하지 못한 자의 걱정일 뿐이다.
일단 출발하고 걷기 시작하면 텐트를 설치하지 못할 만큼 잠이 쏟아졌다. 하루 종일 무거운 등짐을 메고 길을 걷는다면 이 세상에 모든 불면증은 사라질 것이다. 사실 불면증의 원인 중에 하나도 신체 활동이 부족한 탓도 있다.
눈물의 여왕이란 드라마에서도 극 중 김지원 엄마인 선화가 용두리에서 일일 과수원 알바를 하고 난 뒤에 없던 식욕이 살아나고 불면증이라 잠 못 든다는 말도 쿨쿨 잠들면서 거짓임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과도한 신체 활동은 불면증에 명약 중에 명약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출발 전에는 많은 고민들이 쏟아진다. 왜냐면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상황을 가정하지만 고난은 쉽게 찾아오지는 않는다. 걱정과 고민으로 밤을 지새워봐야 쓸데없다.
이들도 출발 전에 그럴싸한 계획을 세웠지만 출발하자마자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카츠의 행동에서 우린 단번에 알 수 있다. 브라이언과 카츠는 전문 산악인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브라이언은 작가요. 카츠는 별다른 직업 없이 살아가는 40대의 평범한 남자다.
몸무게도 꽤나 나가는 것 같다. '2층 침대에 올라가지 못해 밑에서 세 사람이 밀어주었다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이런 두 사람이 자연의 길을 걷는다. 그것도 무거운 등짐을 메고 말이다. 카츠는 등짐을 매고 길을 나 선 첫날 식량부터 각종 물품을 다 버려버린다. 미친놈이란 생각도 들지만 어깨가 빠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쩌면 카츠의 행동이 먼 길을 떠나는 데 있어 현명하다는 것을 말이다.
첫날 산행부터 이들은 서로 맞지 않았다. 일단 보속이 달랐던 그들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브라이언이 앞서고 카츠는 뒤 따라왔다. 뒤쳐지는 카츠를 기다리다 걷고 기다리다 걷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멍하니 걷다 보니 어느새 카츠를 잊어버린 브라이언은 야영지에 도착했고 45분을 넘게 기다려도 보이지 않는 카츠를 찾아 나섰다. 저 멀리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카츠. 출발 전에는 배낭에 이것저것 달려 있었는데 왠지 배낭이 이상하다.
힘든 카츠를 대신해 배낭을 건네받는데 배낭이 가볍다.
"뭘 버린 거야?"
나는 놀라지 않은 척 애를 쓰며 물었다.
"빌어먹을, 더럽게 무거운 것들.... 페퍼로니, 쌀, 흑설탕, 스팸.... 몰라, 뭘 버렸는지. 하여튼 많이. 제기랄."
카츠는 자신이 생각했던 트레일이 아니란 듯이 마치 배신이나 당한 사람처럼 굴었다.
"좋아, 어쨌든 갈 길이 멀지는 않아."
"얼만데?"
"아마 1.6킬로미터쯤."
"제기랄." 그의 어조는 비통했다.
"배낭을 들어줄게."
배낭을 들어보니, 완전지 빈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가벼워졌다. 그가 뭘 버렸는지는 신만이 알 일이다.
야영장의 끝 자락, 거의 숲 속이어서 텐트 안에 누우면 우리 몸이 경계선이 될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난 어떻게 텐트를 치는지 몰라."
카츠가 심술궂은 어조로 말했다.
"그래, 내가 해주지." - '내가 해주지, 이 의지 박약한 큰 아기야.'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나무에 걸터앉아서 내가 그의 텐트를 쳐주는 것을 지켜보았다. 텐트 설치가 끝나자 그는 패드와 슬리핑 백을 밀어 넣더니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나는 또 하나의 텐트를 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겨우 텐트를 설치하고 허리를 곧추세우다가 그의 텐트에서 어떤 소리나 움직임도 없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벌써 자니?"
"어." 그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벌써? 저녁도 안 먹고?"
"어."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화를 내기엔 너무 고단 했다. 나도 너무 피곤해서 배고픈지 어떤지도 몰랐다.
깨어나자 나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그가 다가와 내 텐트 앞에서 몸을 구부렸다. 그는 내가 잠에서 깨어났는지를 묻지도 않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가 어젯밤 바보같이 굴었다고 말하겠지?"라고 말했다.
"맞아, 넌 멍청이었어."
그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더니 "내가 커피 끓일게"라고 말했다. 이게 그가 사과하는 방식인가 보다 생각했다.
"정말 고마운 일이군."
"여기는 무지 춥다."
"여기도 마찬가지야."
"물병이 얼었어"
"내 것도 그래."
나는 나일론 자궁에서 빠져나왔다. 카츠는 물을 끓이며 버너 옆에 웅크리고 있었다. 여전히 추웠지만 전날보다는 좀 따뜻해진 것 같았고, 나무 사이로 불타오르는 아침 해는 희망을 주고 있었다.
"기분이 어때?" 카츠가 물었다.
나는 다리를 쭉 펴보며 "나쁘지 않아"라고 말했다.
"나도 그래"
그는 물을 필터에 부으면서 "오늘은 괜찮을 것 같아"라고 약속했다.
"좋아" 나는 그의 어깨너머로 커피를 보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왜 화장실용 휴지로 커피를 거르는 거지?"
"아, 그거?... 필터를 다 버렸거든."
내 입에서, 결코 웃음이라고는 할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건 50그램도 나가지 않는데....."
"나도 알아, 하지만 던지기엔 안성맞춤이거든. 펄럭거리며 천천히 추락하니까."
나를 부르는 숲은 브라이언이 사는 집 옆으로 숲길이 이어져 있는데 이곳을 따라가 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무엇이 소중한지 알 수 있고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나약한 존재가 묵묵히 길을 걸어가면서 위대한 존재가 되어간다. 사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브라이언의 삶도 카츠의 삶도 또 나의 삶, 너의 삶도 다 정답인지 오답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길을 걷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이 책은 읽는 동안 그냥 웃음이 난다. 애팔래치아 트레일 코스를 가본 적도 없지만 브라이언과 카츠와 함께 숲 속을 걷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웃고 울게 된다. 나는 카츠가 마지막 산행 길에서 길을 잃기 전에 브라이언에게 버드와이저 6캔만 사달라고 하는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브라이언은 또 술을 마시냐며 안 된다고 거절했고 그 후 산행에서 두 사람은 길을 엇갈리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찾아 헤매면서 느꼈던 감정이 뭔지 모르지만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중년의 무모한 도전 이야기라 더 실감이 났다.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고 픈 욕망 덕분에 하루라는 시간 동안 멋진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다.
삶에 지쳐서 웃을 기운이 없다면 읽어보라.
맘껏 웃고 싶을 때 읽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