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결혼식

비현실 같은 현실

by 요부마

햇살이 잔디에 떨어진 단풍잎을 비추어 선명하게 만든다.

하버드 대학교 캠퍼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검정 턱시도를 입은 신랑이 손을 잡고 걷는다.

커플 앞에는 긴 갈색 머리의 20대 포토 그래퍼가 네 발짝 앞서 뒤로 걸으며 연속적으로 셔터를 누른다.

일요일인데도 교정에는 학생과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여러 사람이 스마트 폰을 꺼내 커플의 사진과 비디오를 찍는다.

하지만 신부는 신랑을 바라보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다.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2014년 10월 5일, 나의 결혼식이다.

김래원, 김태희가 주연을 맡았던 <러브 스토리 앤 하버드>를 볼 때도,

배용준이 나왔던 <호텔리어>에서도 주인공들을 하버드와 연결 지을 때면 웃음이 나왔다.

"하버드라니. 너무 비현실적이다."

20대까지만 해도, 하버드라는 이름은 존재하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결혼식을 하고 있다니.

현실임이 분명하지만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하버드 교정을 걸어 다니며 결혼사진을 찍고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로엡 하우스로 돌아갔다.

로엡 하우스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 회관이다.

여기서 우리의 결혼식을 한다.


10개월 전만 해도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른셋. 10월의 신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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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객은 열여덟 명.

일요일에 여유롭게 즐기는 브런치 테마로 정했다.


나는 제이크루 웨딩에서 산 30만 원짜리 드레스를 입었고, 허리에 코르사주가 달린 리본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데이브스 브라이덜에서 4만 원에 산 베일을 썼다.

온라인 구인광고에서 찾은 대만계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헤어와 메이크업을 해주었고,

그녀의 친구가 부케와 코르사주, 식장에 꽃을 장식해 주었다.

부케는 가을에 피는 꽃 중에서 가장 화려한 핑크빛 달리아였고, 나머지는 화이트와 그린으로 심플하게 꾸몄다.

정해진 예산에서 남편과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함께 알아보고 선택했다.

결혼한 지 9년이 지난 지금 돌아봐도 우리 다운 결혼식이었다.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규모의 차분하지만 유쾌한 모임을 선호하며,

조촐하면서도 아름다운 멋을 추구했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하나 있었다.

예식을 시작해야 하는데, 신부 부모님 자리가 비어있는 게 아닌가.

식장 안에도, 화장실에도 없었다.

건물 안에서 다 들리도록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신랑은 결혼식 음악을 직접 세팅해야 했기 때문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결국 신부인 내가 드레스 옷자락을 들고, 높은 힐을 신고, 수많은 나선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천진하게 웃으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부모님을 발견했다.

"뭐해요! 식 시작하는데!"

보통 신부의 어머니는 딸 옆에서 하나하나 챙기는 줄 알았는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헐떡이는 숨을 고르고, 식장에 입장했다.

신비주의라고는 없는 친숙한 신부의 등장이었다.


식후에는 모두 식당에 모였다.

한국에서 참석했던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가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테이블을 하나씩 돌며 인사를 했다.

커플을 보면서 '신랑, 신부는 밥을 언제 먹지?'하고 궁금했다.

친구가 식이 다 끝나고 나면 따로 밥을 먹었다고 했다.

우리는 손님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테이블이 따로 있어서 다행이었다.

웨딩드레스가 너무 꽉 쪼여서 의자에 앉으니 숨을 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자크를 살짝 오픈하고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없었던 것만 빼면, 만족스러운 결혼식이었다.

두 달 동안 우리가 준비했던 작지만 소중한 이벤트가 실현이 되었으니까.


식이 끝나고 우리는 살고 있던 단칸방으로 돌아왔다.

결혼식을 막 치른 신혼부부가 누릴 수 있는 사치스러운 착각은 누리지 못했다.

우리 부부는 바로 현실로 컴백했다.

결혼식은 짧고 결혼 생활은 길다. 이벤트는 끝났다.

하지만 좋은 이벤트에 대한 추억은 오래간다.

그렇기에 이벤트를 할 때는 충분한 노력을 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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