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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간을 추억하며 웃고 싶다

코로나 19 -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

by 이은영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시작되면서 세 가족이 집에서 부딪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코로나 19로 인해 아빠의 일터인 유치원도 휴원을 한 지 한 달째다. 엄마는 몇 해 전부터 천식이 악화하면서 중환자실과 응급실에 들락거렸고, 급기야 작년부턴 일도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만 계신다. 나는 퇴사 후 그런 엄마를 대신해 살림을 하며 돌봐드리고 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외부인과 접촉하여 코로나 19에 걸릴 경우 엄마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몇 달째 자발적 자가 격리 자의 모습으로 집콕 챌린지와 동네 순이돌이로 살고 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세 가족의 삼시 세끼를 차려내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직접 집안 살림을 하면서 들여다보게 된 엄마의 삶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엄마는 어떻게 네 가족의 식사는 물론 오빠와 나를 키우며 돈까지 벌어오셨던 걸까?’ 몸이 야위고 아픈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밖을 나가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과 지친 몸으로 인해 엄마는 짜증 내는 일이 잦아졌고, 그럴 때마다 나도 똑같이 날 선 태도로 상처를 갚아 주고 싶었다. 아니, 때론 나 역시 엄마에게 짜증을 내며 상처를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공간 안에서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현을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몸과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그 결과 우린 소소한 일상의 기쁨과 감사를 찾는 훈련을 더 많이 하게 됐고, 전보다 삶의 지혜를 조금 더 체득했다.


이 시각에도 TV를 켜면 어김없이 전 세계 코로나 19 감염자 수와 사망자수가 뜨고, 핸드폰은 밤낮없이 재난문자가 울려댄다. 한 편에서는 역학조사를 통해 누군가의 불륜 사실이 들통났고, 누군가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이 들켰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단 한 명에서 시작한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슬픔과 혼란에 빠지는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삶의 시련을 통해 보고 배우며 깨달아가기 때문일까? 나는 습관처럼 ‘죽는 순간 내가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 묻고 답을 찾아 실천 중이다.


“나를 포함해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더 좋은 추억을 쌓지 못하고, 더 많이 웃지 않은 것이 가장 아쉽고 후회될 것 같다.”


어린 시절엔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해서 효도해야 한다는 착각을 했다. 그러나 부모님을 포함해 모든 사람은 우리가 성공해서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돈 많이 벌고 최고가 되는 삶을 성공과 행복이라 정의하지도 않는다. 결국, 우리가 돈 많이 벌고 성공하고 싶은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의 또 다른 모습은 오롯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도록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이다.

언젠가 나 또한 결혼하게 된다면 부모님과 이런 시간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이 시간은 엄밀히 말해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시간이 아닌 나에게 주어진 기회다. 하여,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소중한 내가 덜 아파하고 덜 후회할 수 있도록 추억을 짓는 중이다. 어쩌면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각자 살펴볼 수 있도록 신이 주신 또 다른 기회는 아닐까?


코로나 19로 인한 일상의 불편함이나 슬픔은 절대 영원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당연한 듯 보이는 곁에 있는 사람과의 인연 또한 영원하지 않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사랑에서 오는 진리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언젠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연이 끊긴다고 해도 오늘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이 시간은 더 선명하고 소중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땐 이 사람들과 다시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리 모두의 삶을 믿고, 응원하며, 희망한다.


엄마를 부축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의지하며 걷는 엄마. 사랑하는 부모님의 뒷모습.



아빠, 엄마, 나 이렇게 셋이서 동네 뒷산에 갔을 뿐인데, 충남 서산으로 보내는 친오빠 클라스. 그렇게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고... (가족 단톡방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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