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현대미술사>, 윌 곰퍼츠
미술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약 중인 윌 곰퍼츠가 쓴 <발칙한 현대미술사>. 그의 저서는 단순한 지식 전달에 그치기보다,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현대미술의 탄생 과정을 흥미롭게 써 내려간다.
이 책은 단순한 미술 이론서가 아니다. 뒤샹부터 뱅크시에 이르기까지 천재 예술가들이 얽히고설켜서 서로에게 스승이자 동료, 뮤즈가 되어 빅뱅을 일으킨 사건을 540페이지 안에 기록한다.
# 그들은 언제나 따로 또 같이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대통령 연설 비서실장이었던 강원국 작가님과 함께 독서 모임을 하면서 글을 쓴 일이 있었다. 그때 선배님은 글을 쓰려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셨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나세요. 그래서 서로의 글에 가감 없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동료와 함께 글을 쓰세요."
나는 늘 그런 동료 모임을 꿈꿨다. 그것은 마치 색채론과 같다. 다시 말해, 빨간색과 초록색은 색상환에서 서로 보색이지만, 둘을 함께 나란히 색칠하면 상호보완 작용 덕에 빨간색은 더욱 붉게 초록색은 더욱 푸르게 각각의 색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다.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은 이러한 상호 작용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하여, 함께 카페나 집, 심지어 한 도시에 모여 살면서 모임에 이름을 만들어 교류했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더욱 뚜렷이 하기 위해 창조적인 생각과 독창성을 끊임없이 추구했다. 그런 무리 안에서 천재 예술가들의 크리에이티브 경쟁이 시작됐고 위대한 작품은 어김없이 탄생했다.
# 위대한 예술가들은 모두 이단아, 이방인이다
지금이야 익숙한 시선으로 그들의 작품을 바라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억압을 받을 만큼 혁명적이었다. 게다가 기존의 틀을 깨부수면서 겪는 개인적 시련과 조롱을 견뎌내야 했다.
윌 곰퍼츠의 표현에 의하면 예술가들은 온갖 규칙을 정리해놓은 책자를 갈기갈기 찢은 후 권위 앞에서 함께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지금의 현대미술이라고 하는 전 세계적인 혁명을 선동한 것이다.
창의력의 또 다른 말은 용기라는 앙리 마티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혁명의 또 다른 말은 용기이다. 이렇듯 내면의 소리를 따라 자기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은 군중으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며, 기득권으로부터 억압을 받으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을 강인한 멘털과 체력이 뒷받침되어 있어야 한다.
천재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발견한 적이 없다. 정말 위대하고 감동적인 모든 것은 자유 안에서 일할 수 있는 자들에 의해 창조된다. 진정한 예술은 창조적인 예술가의 견딜 수 없는 충동에 의해 생긴다. 나는 상상력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예술가다.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지식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상상력은 세상의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윌 곰퍼츠도 예술에서는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현대미술의 핵심을 이렇게 정리한다.
현대미술의 핵심은 혁신과 상상력이지, 현상 유지나 그보다 더 나쁜 흐리멍덩한 모방이 아니다. 게다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희소성을 경제적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다. (p.241)
# 천재 예술가에게는 언제나 '파트롱'이라고 부르는 영리한 후원자가 있다
파트롱은 원래 가톨릭의 수호성인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미술에서는 예술의 보호자, 후원자를 가리킨다. 윌 곰퍼츠는 천재 예술가 탄생에 있어서 큰 역할을 하는 후원자에 관해서도 독자에게 소개한다.
예술가가 중요한 발자취를 다져나가는 과정에서 영리한 후원자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예이기도 하다. (p. 145)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에게 파트롱은 큰 역할을 해낸다. 그의 존재는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애인이나 친구, 전문 후원자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파트롱은 수호성인처럼 세상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지지하는 예술가를 믿고 응원한다. 그들의 사랑과 관심, 물질적 도움 덕분에 예술가들은 계속해서 자기 길을 걸을 수 있고, 우리는 위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 예술가에게 없어서는 안 될 '뮤즈'
얼마 전 서울숲에서 막을 내린 <더 뮤즈 : 드가 to 가우디> 전시회는 9인의 혁명가 뮤즈라는 주제로 아래와 같이 서문을 열었다.
‘뮤즈(MUSE)’는 인간, 사물, 자연 등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와 영감을 불어넣고 위대한 작품을 만들도록 이끈다. 예술가들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볼까. 그들은 흔한 풍경에서 기필코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매일 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시대를 읽어낸다. 그렇게 만든 작품에서 우리는 오늘을 넘어 미래를 본다.
가장 강력한 뮤즈는 역시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많은 예술가가 뮤즈와의 만남을 꿈꾸고, 함께 가정을 이뤘을 때는 상호작용을 훌륭히 해낸다. 나 또한 그런 연인과 결혼을 꿈꾼다. 이 시대의 사랑꾼 션도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저는 결혼을 '원석을 만나, 나로 하여금 보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라고.
그렇게 모든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는 출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이 시대의 또 다른 혁명가, 예술가에게 인사를 보낸다.
다만, 9인의 예술가가 남긴 작품들이 가슴을 울리는 것은 빛과 어둠을 모두 끌어안으며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영민하게 관찰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얻은 해답은, 영감은 나를 둘러싼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소중하게 돌아보고, 사소한 것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일상의 전부를 특별하게 보는 것, 그렇게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영감의 원천이었다.
마음을 절실하게 뒤흔들어 새로움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은, 삶의 매 순간을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된다. 오늘 다시 시작될 당신의 삶 속에서 부디, 당신만의 뮤즈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반짝이는 작품 그 자체보다는 달빛 아래에서 드러나는 예술가의 발자국에 감동하며 영감을 얻는다. 마치 오늘을 사는 나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서울숲 전시회도 윌 곰퍼츠의 <발칙한 현대미술사>도 선배들의 발자취를 통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나의 발자국도 자기 길을 걸으려는 미래의 후배들에게 소중한 메시지를 전해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