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이 만만치 않은 주도권 싸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펼치고 보게 되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나말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싶다. 생각해보면 안드로이드나 애플 스마트폰 이전에 '그냥 모바일폰'(그 당시 폰을 뭐라고 불렀는지 잘 생각도 안난다-.-)이었을 적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대부분이 절감하고 있듯이 스마트폰은 중독성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인간 사회에 아주 심한 중독을 하나 남기고 떠나기는 한 것 같다.
아침부터 스마트폰을 보는 일은 은연 중에 나의 삶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 애쓰며 하고 있는 일은 스마트폰을 펼치기 전에 공책을 펼치든지, 최소한 책을 펼쳐드는 것이다.('공책'이라는 말을 쓸까 '노트'라는 말을 쓸까하다가 '노트'도 너무 디지털 느낌이 나서 '공책'이라는 촌스러워 보이는 단어를 선택했다.) 공책을 펼쳐서 하는 일은 사실 별 것 아닌 것들이다. 하루 예상 일과, 머릿 속을 떠도는 키워드들, 어제 깨달은 일 정도를 써내려 간다. 그러고 있으면 끌려가는 느낌이 아니라 이끌어 가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 저항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공책을 쓰다가도 스마트폰에 있는 정보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 정보만 참고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펼쳤다가 어느 덧 쓸데없는 유튜브를 보거나 카톡 그룹방을 엿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스마트폰은 인류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발명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공책을 열심히 쓰는 일에는 몇가지 매력이 있다. 일단은 공책이 주는 여백이다. 그 여백은 나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 여백앞에서 생각을 해도 되고, 멍을 때려도 되고, 써도 되고, 안써도 된다. 그림을 그려도 되고, 낙서를 해도 된다. 스마트폰에서는 이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또 하나는 '나'라는 사람의 상태를 반영하는 필체이다. 생각보다 필체에 많은 것들이 투영된다. 공책의 책장을 역으로 가며 넘겨보면, 필체에 나의 조급함도 있고, 갈급함도 있고, 주저함도 있고, 비장함도 있다. 그리고 공책은 과정의 흔적을 잘 보여준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쓰는 일에는 과정이 잘 남지 않는다. 공책에는 생각이 어디에서 멈추었었는지, 어디로 갔었다가 어떻게 이 자리로 왔는지, 어느 지점에서 많은 고민들이 있었는지가 오롯이 드러난다.
노트 기능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 스마트폰의 저항에 맞서 공책을 펼쳐드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공책에는 '발효'의 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