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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May 14. 2019

제주 김녕 밤바다에서 만난
이름 없는 세 남자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 있어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 안 들어올지도 몰라. 친구들이랑 야영할 거거든!



이 집 부부는 오늘도 자유로웠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대개는 현실로 돌아오기 마련인데 이 집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여행의 연장선에 있는 듯했다. 간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손님과 캠핑을 간다며 이리저리 집안을 들쑤셨다. 일상 속에 여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일상으로 끌어들일 줄 아는 이들. 그 와중에 나는 원고 마감에 시달리고 있었더랬다. 어느 누구의 간섭 없이 자유로운 하루를 살고자 제주에 내려와 놓고도 달라진 게 없었다. 여행지에서도 현실을 놓지 못하는 나와, 현실에서도 여행지처럼 사는 이들. 이 집주인 부부는 내게 판타지였다.






#진정한 자유로움이란


제주도에서 만큼은 자유롭고 싶었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야.’라고 떠벌리고 다녔어도 단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기에,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모든 것에서 해탈한 삶을 살고 싶었다. 적어도 한 달 뿐일지라도. 애초에 제주를 내려온 까닭도 그런 이유였다. ‘제주도’라는 지명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내가 살고 있던 곳을 벗어난 그 어느 곳이 되었든 나는 그것을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맞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묶여있던 사슬을 끊어버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실 사슬에 묶여있던 지난날이 더 편안했던 것 같기도 하다. 빼곡히 채워진 하루가 어느 날 갑자기 텅 비어버렸다. 그뿐 아니라 내게 그 속을 채울 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또 그것 나름대로 어려우리라. 이 원고를 기한 내 전송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누려온 꿈같았던 제주 생활은 순식간에 -밥 걱정, 버스비 걱정과 같은 것에 둘러싸여-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내일이 없다는 듯, 오늘을 사는 삶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깡마른 두 사람이 자기 덩치만한 장비를 이고 집을 떠났다. 하루만 떠난다더니 또다시 며칠 동안 집을 비울 참인가 보다. 그들의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아서 그러려니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 집에 또다시 홀로 남았다. 나의 밥줄인 원고를 털어내고 소파 위에 널브러졌다. 이내 밤 8시를 알리는 손목시계 알람과 함께 전화벨이 울렸다. 파이샤였다.


그녀는 난데없이 캠핑장으로 오라고 했다. 며칠 전 내가 고기를 엄청 좋아한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는지, 함께 먹자며 어서 오라고 재촉했다. 내 아무리 고기킬러지만 그것을 이기는 상위의 것이 있었다. 바로 ‘귀찮음’이다. 절대 외출할 일이 없다는 듯 일찍부터 잘 준비를 마쳤다. ‘그녀의 호의와 애정하는 나의 고기 vs 만랩의 귀찮음.’ 누가 이길 것인가. 빠르게 두뇌를 굴려본다. 다시 씻어야 하는 귀찮음, 밤길에 집을 나서야 한다는 사실(행원리는 가로등이 별로 없다. 이곳의 밤은 정말 ‘밤’이다, 거의 진공상태). 


아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귀찮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걸 대면하는 상황이 내게는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그 캠핑장에 가면 파이샤의 친구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 소개를 할 테다. 그들은 분명 제주에는 무슨 이유로 내려왔냐 물을 것이고, 자연스레 퇴사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퇴사 이유를 묻게 되겠지. 하. 벌써 피곤하다. 그래, 거절하자. 역시나 나는 나였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에겐 기존의 삶에서 탈피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우린 다음에 같이 놀아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길 : )

- 우리가 집으로 데리러 갈게요!

- …음?


포기라는 걸 모르는 여자다. 그녀는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도망갈 구석이 없었고, 꼼짝없이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세탁기에서 방금 꺼낸 세탁물처럼 축 쳐진 채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이름 모르는 사람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피곤한 일이다.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해야만 하는 여러 질문들과 대답들, 거기서 파생되는 표정과 눈빛. 이 모든 것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 같이 예민한 사람에겐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이 모든 과정들이 자동적으로 행해진다. (자석이 쇠붙이에 붙고 싶어서 붙나? 저절로 되는 걸 어떡해!) 태생이 피곤한 사람이기에 되도록이면 이런 상황에 노출되고 싶지 않아 한다. 세상은 나의 의지만으로 굴러가지 않았고, 종종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어쩔 수 없이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이 또한 빠르게 습득했다. 결론은 이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피곤한 일이지만, 또 막상 가면 잘만 놀더라.’



어둠은 방향 감각을 상실케 했고 단지 소리만이 바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제주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졌대도 이곳의 밤바다는, 아니 야경은 나에게 여전히 낯선 것이었다. 저녁 9시만 돼도 버스가 끊기는 탓에 해질 무렵엔 타의적 집순이었다. 파이샤 덕에 고기도 먹고 낯선 풍경 감상도 한다. 여행 속 또 다른 여행을 떠난 느낌. 새롭고 또 새롭다.


파이샤와 루피의 친구들을 만났다. 석쇠 위에 구워지고 있는 고기 탓에 통성명도 잊었다. 이름이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30대 초중반의 남자들은 모닥불에 둘러앉아 진정한 자유와 현실을 논했다. 늘 자유를 갈망했지만 현실을 저버릴 수 없었다. 이따금 타지로 떠나는 것으로 이들의 피 끓는 자유 욕망을 잠재웠다. 



우리 알고 지낸 지 1년 정도 됐나? 아마 그럴 거야.



이들의 대화를 보고 있자니 오래된 관계로 보였다. 오래된 관계임을 증명해주는 것은 '대명사'로 이어지는 문장들이었다. '그때 내가', '거기에서', '그 언니는' 등.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많은 기억들은 이들의 얼마큼 가까운 지를 알려주는 척도였다. 시간과 관계의 깊이는 절대 비례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바뀔 수 없는 수학공식처럼 그렇게 생각해왔다. 알고 보니 고작 일 년. 이번에도 보기 좋게 나의 '통념' 하나가 깨졌다. 


한 남자는 나에게 ‘백패킹’을 제안했다. 가방 하나에 필수 야영 장비만 갖춘 채 떠도는 야영 활동인 백패킹. 나의 관상에 그리 쓰여 있었던 건지, 아님 두 시간 삼십 분 동안 내뱉은 나의 말들이 그를 그리 생각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파이샤는 반색하며 자신과 내가 비슷한 성향을 지녔기 때문에 나를 여길 데리고 온 거라고 소리쳤다. 어쩌면 나는 자유로운 사람인데 속세를 떠날 용기가 없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런 나를 알아차렸다. 


여섯 사람이 함께 했던 약 2시간 30분. 파도소리와 장작 타는 소리는 그 시간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이었다. 마지막 버스가 10분 뒤면 이곳을 지나칠 예정이었다. 머릿속에 떠도는 수많은 대화들 중에 그들의 이름은 없었다. 그들도 나도, 여태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물론 중요하지 않다. 그 탓에 이 날의 시간들이 특별함으로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철수이건 민재이건 무엇이건, 그것은 그들을 명명하기 위한 하나의 단어에 불과하다. 다음을 기약할 명분이 생겼다. 그때는 이름을 물어봐야겠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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