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의 교정에 대해서
뭐든 억지로 하면 딱 그만큼 헛소리를 늘어놓게 된다. 어릴 적 고약한 성질머리가 헛소리로 탈바꿈을 한 것인데, 이렇게 한바탕 헛소리를 늘어놓고 나면 이성을 상실한 나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이 뒤따랐다. 다행인 것은 신체활동 덕분에 많이 온화해져 사람들이 눈치채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성질머리가 발동하는 지점이 있다.
바로 골반의 전방경사 구간.
요가 선생님이 워리어2를 말한 순간부터 내 뇌는 맹렬히 외친다.
‘치골을 당겨! 당겨! 당겨!’
하지만 치골을 당기는 힘이란 게 말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살짝 맛이 간 스프링처럼 이 녀석은 당길 때와 밀어낼 때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미 멀어진 부부사이처럼 좀처럼 엉덩이와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다. 멀어지는 엉덩이를 붙잡으려는 치골의 사투는 3번 차크라에서 올라오는 깊은 빡침을 땀으로 흘려보냈다. 그런 식으로 버티고 있는 내 옆으로 ‘내 정렬을 늘 옳아’라는 표정을 짓는 강사가 다가온다. 허벅지로 내 둔근을 밀면서 양팔을 옆으로 쭉 뽑아내며 외친다.
“치골을 당기세요!”
정확히 이 지점에서 나의 전사자세2번은 전의를 상실한다. 진짜 비굴하게 딱 한마디 속삭인다.
“쌤... 치골 다 당긴 거예요.”
그러곤 속으로 십장생 염불을 외는 것이다.
'내 엉덩이와 치골이 이별한 남녀만큼 멀어진 건 아니잖아? 엉덩이 튀어나온 사람은 서러워서 살 수가 없어.'
솟구쳐 오르는 성질머리를 누르려면 뭐라도 필요했다.
요가에는 교정법(이하 핸즈온)이라는 것이 있다. 강사가 손이나 다리로 회원의 몸을 터치해 저항하는 힘을 유도하거나 직접 신체를 교정해 주는 방식이다. 핸즈온은 단순히 몸을 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과 힘의 방향을 이해하고 그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는 작업이다. 그래서 '정답을 주는 손'이 아니라, '감각을 일깨워주는 손'이어야 한다.
강사 교육과정에 아사나에 대한 정렬과 핸즈온을 공부한 그대로 외우고 실습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런 실습을 하게 되면 정렬은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할 수 없으므로 보편성을 띄게 되고, 핸즈온은 그 보편적인 정렬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익힌 보편적인 정렬과 핸즈온이 실제 사람 앞에 섰을 때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고, 움직임의 패턴 심지어 그날의 컨디션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들되 힘의 방향을 고려할 것.’이라는 티칭은 적절하다.
회원의 힘을 쓰는 방향을 이해하고, 그 방향으로 도움의 손길을 얹어야 한다. 내 머릿속에 있는 '정답 같은 워리어 2'에 회원의 몸을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회원의 힘을 쓰는 방향을 고려하고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주려는 행위. 결국에는 몸뿐 아니라 힘든 마음까지 핸즈온해주는 일이다.
반면 회원의 입장에서 강사의 설명이 즉각적으로 이해되지 않거나 방향을 잃고 헤맬 때
강사의 입장에서 말로 설명이 충분하지 않을 때는 위에 배운 보편적인 정렬과 핸즈온은 필요할 수 있다.
내가 하려는 핸즈온과 내가 원하는 핸즈온이 같을 수는 없지만, 나는 두 가지 모두 '정답을 강요하는 손'이 아니라 '그 순간의 상대를 이해해 주는 손'이었으면 한다. 밀거나 끌어당기지 않아도 거기 가만히 얹힌 손이 "이 방향이야"하고 속삭이고 "나도 그만큼 힘들었어"하고 말없이 전해주는 온기.
강사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만진다'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 것을 전제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 손길 하나에 수없이 많은 지식과 훈련 그리고 진심이 깔려 있는지를.
눈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던 초반의 교정은 내 안의 열정과 친절함을 증명하고 싶은 몸짓에 가까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최소한의 터치로 핸즈온 하는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핸즈온은 아무리 회원이라도 누군가의 경계를 허락 없이 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경계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기에 내 손은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훼손할 수도 있다.
그래서 원칙을 하나 세운다. 만지기 전에 반드시 볼 것.
회원의 움직임과 오르내리는 숨 그리고 움직임 안에서 드러나는 의도와 주저함을 읽는다. 이 사람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 읽으려 시도한다. 만약 회원이 자신의 몸을 향해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있다면 그 정렬이 조금 어긋나 있더라도 그 시도의 리듬을 깨고 싶지 않다. 스스로 맞추어가는 중이라면 손을 얹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도 안에서 생기는 모든 것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이다. 물론 손이 필요한 순간은 있다. 그럴 때는 내 손이 지시가 아니라 제안이길 바란다. 가볍게 얹힌 손 하나가 "혼자 다 하지 않아도 돼요. 같이 들어드릴게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관념적인 것들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전제로 해야 한다.
요가 수련 중 그런 순간이 있었다. 최선을 다해 틀린 방향으로 힘을 쓰고 있는데 고개를 든 순간 강사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의미는 정확하게 전달된다. 살짝 방향을 틀어 자세를 수정한다. 강사는 끄덕임으로 말을 대신했다. 그 침묵의 합은 내 몸이 나보다 먼저 이해한 움직이었고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받아들인 변화였다. 좋은 핸즈온은 기술이 아니다. 그 사람의 리듬에 들어가려는 진심이다. 때로는 아주 미세한 접촉 하나로도 몸이 어떤 방향으로 기울어 있는지 어디가 굳고 닫혀 있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순간이 바로 열림이다. 그러한 열림은 마음에도 틈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