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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하는 요가원에서의 첫 대강

by 요인영



아주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다. 7월부터 10월까지 다니는 요가원 선생님이 바쁜 일정으로 요가수업을 대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초보강사에게 대강은 유용하다. 정규수업에 비해 부담이 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시험해 볼 수 있으며, 원장이나 회원들의 피드백도 비교적 관대하다. 깍두기를 대하는 국룰이 있지 않은가.


얼마 전 수련이 끝난 후(다른 선생님의 수업시간) 회원 한 분이 질문을 주셨다. 하누만아사나(앞뒤로 다리를 찢는 동작)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동작이 맞느냐는 물음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근육의 이완과 강화를 통해 할 수 있다 말씀드렸으나 그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회원님은 가볍게 물었지만 나는 금덩어리처럼 무겁고 진지하게 받아 든 격이다. 금요일에 있을 대강 수업을 박쥐자세를 위한 시퀀스로 구성해 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박쥐자세는 앞뒤로 찢는 것이 아니라 양 옆으로 여는 것이고, 전굴도 필요하여 방향성은 다르지만 더 풍부하게 시퀀스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어쨌거나 회원님은 그 질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초보강사인 내게 시퀀스 구성은 어려운 동시에 설레는 작업이다. 마지막 피크포즈(박쥐자세나 하누만아사나 같은)를 위해 돌을 쌓아 탑을 만들듯이 하나하나 아사나를 쌓는다. 중간중간 흐름이 어색한 부분은 제외하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 넣으며 시퀀스를 완성한다. 분위기와 흐름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아사나를 위한 해부학적 지식도 은근히 집어넣는다. 긴 설명은 득보다 실이 많다.


회원들은 강사의 한 시간을 대여한다. 나는 빚진 한 시간을 공들여 구성한다. 그 시간 동안의 나는 그들이 믿고 따르는 지휘자이며 동시에 안내인이다. 대여된 시점부터 멈춰 있는 그 작은 시공은 내게 더없이 신비한 곳이다. 연결된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동시에 대여한 사람에게만 허용되고 기억되는 곳.


klara-kulikova-6MxPH_N4huE-unsplash.jpg 출처 unsplash logounsplash


요즘 부쩍 정서적 허기에 시달리고 있다. 간헐적으로 있어왔지만 이리 몇 날 며칠 지속되는 것은 처음이다. 몸은 고되고 마음은 힘들다. 연결된 감각 없이 몰이해의 지대에서 이해의 물꼬를 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먹고 자고 움직이는데 마음은 계속 뭔가를 기다린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이해받지 못하는 지점이 있지만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길, 아무 조건 없이 안아주길, 말하지 않아도 기분을 알아차려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기회가 더 고맙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연결된 감각을 오롯이 느낄 수 있고, 나와 타인을 위해 생산적인 활동. 지금의 내게 간절한 시간이다. 비록 수업이지만 참석한 회원들은 그 시간만큼은 열린 마음이다. 받아들일 준비가 된 상태.


대강수업을 마친 금요일.

회원들의 표정을 밝고, 피드백은 긍정적이었다. 보통 수업 후에 회원분들은 별 말없이 간단히 인사하고 요가원을 떠나기 마련인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그간 수련을 함께 한 의리인지 친근함인지 칭찬과 고마움을 아끼지 않았다. 코끝이 찡할 정도로 감사하고 감사하다.


회원들이 다 떠나간 요가원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오후. ‘완전한 준비’라는 희한한 강박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나는 회원들의 밝은 표정에도 불구하고 미진한 감정을 느꼈다. 수업을 마친 직후 안도감은 새벽이슬처럼 사라지고 남는 감정. 이런 감정을 뭐라 표현해야 하나. 글이라는 도구가 없었다면 '흙을 퍼먹는 심정으로 살았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오랜 시간을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괜찮아야 하니까'의 상태로 살아왔다. 그것이 버티고 버티다 무너져 지금 정서적 허기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완전한 준비로.


어느 순간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딘가에 무기력함을 허용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이런 공간도 소비를 통해 확보해야 한다. 돈을 지불해야 무기력함을 허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면에선 나도 요가강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그들의 건강과 편안함을 판매하는 사람일 것이다.


허공에 발을 디딘 아찔함, 마음을 기댈 수 없게 위태위태한 몸. 나는 이해를 바라면서 동시에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금요일에 회원들과 함께 한 시퀀스를 복기하며, 몸과 마음을 달래 보지만 이 명명할 수 없는 감정은 끝날 줄을 모른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곳이 고프다.



하누만02.png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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