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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척과 모른척의 경계에서

by 요인영


아는척이 '모르는 것을 최대한 복잡한 언어로 포장해 말하려는 행위'라면 모른척은 '알고 있는 것을 최대한 감춰보려 하지만 결국은 다 알게 되는 상황' 이라고 정의해 본다.


요가지도자 과정(TTC)에 참여하다 보면 무수한 질문 앞에 놓이고 발표에는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질문이 던져졌을 때 고개를 푹 숙이거나 슬쩍 눈을 피해 본다. 급기야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반면 눈을 번쩍이며 기회를 잡은 듯 아는 척의 포문을 여는 사람도 간혹 있다. 나와 함께 지도자코스를 밟고 있는 선생님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면 몰랐지 아는척하는 경우가 없다. 알고 있는 것은 정형화된 틀 안에서 반박 불가능하게 설명하고 모르는 것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한다.


땅굴 속에 있다가 빛을 본 지 몇 해 되지 않은 나는 당연히 전자이다. 마냥 모르고 싶었다.

굳이 말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농담 따먹기가 아니라면 입을 다물었다. 말보다는 글이 편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처음에는 긴장 탓에 수시로 목이 잠겼고, 목소리는 대책 없이 떨려 요들송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긴장은 많이 줄었지만 평가라는 요소가 끼어들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을 누가 들고 튀기라도 한 것처럼 탈탈 털려있다. 심박수는 150 이상 치솟고, 내가 심장인지 심장이 나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간다.

이런 긴장은 대강(요가강사의 부재 시 대타수업) 수업 도중에 특히 심해지는데, 회원의 질문을 받는 순간은 부정맥 직전까지 간다. 이유는 알다시피 머릿속에 있는 것이 모두 휘발되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알고 있어도 지금은 답해드릴 수가 없어요.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머릿속에서 꺼내 말로 옮긴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기술이다. 입 밖으로 내뱉어 본 적 없는 정보는 입구까지 와서도 멈춰버린다.


TTC에서는 이럴 때의 노하우도 전수해 준다. 이름하여 '솔직할 것'.

강사는 의사도 물리치료사도 한의사는 더더구나 아니다. 수련을 안내하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가 강사라면 난도 높은 자세들을 소화하고, 인체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야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실제로 요즘 강사 중에는 정말 다양한 전직업군이 존재한다. 인요가 강사 중에는 한의사도 있고, 물리치료사도 있다. 고난도 자세를 수월하게 소화하는 사람 중엔 무용, 발레 전공자들이 있고 몸을 잘 쓰는 사람들은 모래알만큼이나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아는 척은 오히려 독이 된다.'

결국 강사는 동작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 동작을 만들기 위한 조건들을 습득해야 한다. 그러나 그건 타인을 안내하기 위한 도구이지 누군가에게 자랑하거나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쌓고 전달하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몸과 함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로써 활용되어야 한다.


경계에서


특명 '솔직할 것'은 모르는 것에 대한 고백이 아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꼭 공부해서 답해드릴게요.'라는 책임의 선언이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부하여 회원에게 상세한 정보를 전달할 것이라는 개념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포장해 전달하면 당장은 모면할 수 있지만 뒤끝은 오래 남는다.

반면 진심으로 질문에 책임을 지고 공부해 다시 답을 전하면 회원은 그것을 오래 기억한다. 자신의 질문을 끝까지 책임져준 강사를 신뢰하게 된다.

'당신을 위해 내 시간을 할애해 당신과 함께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다.'는 태도는 정답을 즉각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이 와닿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공부는 결국 나의 것이 된다. 그런 식으로 내 것이 된 지식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후에 다른 이가 같은 질문을 할 경우 더 깊고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김상욱 교수의 책 [떨림과 울림]에 이런 문장이 있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생애 내에서도 수차례 관점의 변화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능력이다." 다른 생명체는 오랜 진화를 거쳐야 관점을 바꿀 수 있지만, 인간은 배움과 질문과 성찰을 통해 그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변화는 시작된다.


아는 척은 때로 무지를 감추고

모른 척은 때로 지혜를 감추지만

결국 둘 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일 뿐이다.

아는 척도 모른 척도 결국 사람들은 다 안다.

다만, 그걸 굳이 말하지 않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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