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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매트를 펼치며

피드백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by 요인영



둘둘 말려 한 칸에 놓인 매트를 도르르 마루 위에 펼쳐놓는다. 어지럽게 그려진 움직임의 궤적들 사이로 숨을 고르던 이마자리가 하얗게 묻어났다. 손과 발이 버텼던 자리에 묵직한 흔적이 남겨졌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지만, 깊어진 수련의 흔적이라 부르고 싶다. 요가 매트가 가득한 편백나무 칸막이를 보고 있으면 사물 같아 보이지 않는다. 매트는 지워지지 않을 수련의 기억을 품고 층층이 쌓여 있다. 땀과 숨, 균형을 잃었던 순간과 다시 찾아낸 중심 같은 것들이 말려있다 펼쳐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몸을 계속 움직이고 쓰는 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날에도 변한다. 겉으로는 머무른 것 같아도, 신경계는 미세한 조정을 반복하고, 근막은 기억을 저장하고, 균형감각은 실패의 방향까지 학습한다. 움직임의 궤적을 남기는 건 성공한 동작이 아니라 버티다가 쓰러진 순간이다.


요가는 흔히 유연함과 근력을 이용한 최종 동작이 전부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한히 습득되는 자기 회귀의 결과'이다. '습득'이라는 말은 보통 배우면 끝나는 것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반대로 끝이 없다는 걸 드러낸다. 요가에서 같은 아사나를 수천 번 해도 완전히 같은 날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회귀는 반복이 아니라 축적의 차이다.


어떤 경험을 하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보고, 느끼고, 시도한다는 감각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 대신, 제자리에서 반복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상태를 관찰하는 방식에 가깝다.





일요일은 8시부터 8시까지 요가수련이 예정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요가원을 열고 활동했던 원장이 호주로 건너간지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호주에서 운영하는 요가원은 회원 유입이 꾸준히 늘었고, 원장이 진행하는 요가지도자 과정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올여름 원장은 한국에 돌아와 요가원 운영을 부원장에게 맡기고, 나와 동기강사님은 정규강사가 되었다.


예정된 8 to 8의 긴 수련은 호주강사들의 테스트 수업 덕분(?)이다. 호주에 있는 여섯 명의 강사들이 순차적으로 티칭을 진행하고, 자격요건을 충족하면 국제요가지도자 자격이 부여되는 방식이다. 한국과 호주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요가지도자과정(YOGA TTC)이라 익숙한 강사도 있었고, 처음 보는 강사도 있었다. 대면할 수 없어 수련은 스크린으로 이뤄졌는데, 화면 너머로도 강사들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내년 여름이 되면 나와 동기 강사님도 같은 테스트를 거쳐 국제요가자격증을 취득하게 될 것이다.


유독 눈에 띄는 강사가 있었다. 테스트 바로 전임에도 여유롭게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경력이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기존 강사들과 다른 모습에 수련에 대한 기대감이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그러나 수련이 시작되자 곧 뭔가 잘못되었음을, 문제가 있음을 서로의 눈빛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정작 테스트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는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100시간 동안 수업 방식과 정렬을 익혔을 텐데,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배운 내용을 활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계획한 시퀀스를 그대로 진행하지도 못했다. 상황에 따라 떠오르는 대로 순서를 바꾸고, 정렬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로 대체되었다. 직관성이 떨어져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요일 프리오픈클래스 공지를 보고 유입된 새로운 회원들은 강사의 모습을 눈으로 좇지 않으면 동작을 따라 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로 인해 요가의 흐름은 수시로 끊겼다. 독특한 억양, 말의 높낮이는 수시로 변했으며. 설명이 부재한 자리는 지나친 자신감으로 대체되었다. 기대를 한 탓이었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내게 정보가 없었다면, 알지 못했다면 문제점이 눈에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6시 반 여섯 명의 강사가 진행한 여섯 개의 수련이 끝나고, 원장과 부원장의 피드백 시간이 이어졌다. 오랜 시간 운영을 거치며 숱한 굴곡을 겪어온 원장은 심사에 대한 자신만의 체계를 갖춰놓고 있었다. 큰 기준은 시간, 순서, 정렬 그리고 핸즈온이었다. 이 네 가지 큰 틀 안에서 세부적인 내용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평가했다.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쉽지 않은 시간이지만, 이런 피드백은 다음 수업에 적용해 보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원장의 피드백이 끝나자, 강사가 급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수업을 진행하면서 회원을 통해서든, 어떤 경로로든 수업 방식에 대한 컴플레인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방식이나 설명에 문제가 있었다면 한 번쯤은 들었을 텐데 그런 적이 없어요. 핸즈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접촉방식이 불편했다면 말이 나왔겠죠. 솔직히 말해 선생님의 피드백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통편집)


원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답했다.

“누군가 당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애정을 갖고 하는 행동입니다. 제가 드린 시퀀스나 정렬은 저의 노하우가 담긴 것이고, 그룹수업을 할 때 최적화된 방식입니다. 그게 맘에 들지 않는다면 저도 뭐라 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제게서 뭔가를 얻기 위해서 하나라도 더 알기 위해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것일 텐데, 이런 식이 피드백이 불쾌하다면 저도 더 이상 방법이 없습니다.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이 무의미할 겁니다.”(일부편집)


원장의 피드백이 불편한 이유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습관들에 대한 지적이 한꺼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형성된 나만의 습관은 티칭 과정에서 숨김없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특정 단어의 반복, 제스처, 시선처리, 무의식적으로 하는 크고 작은 일상의 습관들. 그중에서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말투이다.


말투는 말의 피부 같은 것이라 쉽게 고칠 수도 버릴 수도 없다. 말투는 감정의 질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말투 하나에 온도가 달라진다.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억울하게 들리기도 하며, 가볍게 흘러갈 수도 있다. 피부가 외부 자극을 가장 먼저 받듯이 말투는 관계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접촉면이기도 하다.


핸즈온은 작은 터치나 적절한 힘으로 회원의 몸을 직접 교정하는 방식이라, 방법을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크고 작은 실수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몸 전체가 회원의 몸에 과하게 밀착된다든가, 회원의 시선 바로 앞에서 민감한 신체의 부위가 보인다든가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의식 없이 티칭 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문제다. 외국이라면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작은 실수가 금방 입소문을 타기도 한다.


티칭에서 특정 단어의 무한 반복과 말을 꺼내기 전과 말미의 습관 같은 것은 듣는 사람의 피로를 낳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내게 돌아온다. 체계적인 정렬법과 순서에 맞춘 정렬의 설명이 중요한 이유는 단체수업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신체 조건과 사고방식, 생활습관이 너무도 다른 회원들이 뒤섞인 공간에서, 누구든 이해할 수 있게 전달하려면 정렬법을 머릿속에 넣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익숙해지면 해부학적 지식을 더해 조금씩 조정하거나 변형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중의 일이다.





왜 이렇게까지 상세하고 날카로운 방식으로 피드백을 하느냐 물은 적이 있다. 배우던 강사들이 열 명이면 한 명은 이런 식으로 떨어져 나가는데, 그때마다 당신도 상처를 받지 않느냐고, 방식을 조금 바꿔볼 생각은 없느냐 물었다. 원장은 일말의 고민도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절충안이에요" 강압적인 방식으로 지도하던 초창기의 5년 동안 자신도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 과정을 거듭 수정하며 지금의 방식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었다.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배우러 오는 사람을 소홀히 할 수 없고, 자신에게 배웠는데 수업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다.


그 답에 고개를 끄덕였을까.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피드백이라는 건 누가 더 오래 배우고 싶은가, 가장 단단한 곳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올 초 인요가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만난 원장은 앞서 말한 원장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정반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대척점에 서 있다. 원장은 모두의 테스트가 끝난 후 이렇게 말했다. “인요가는 '지금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감각’을 우선합니다.‘멈춤’을 수련의 핵심으로 삼죠. 멈춤의 목적은 판단이나 교정이 아니라 현재를 명료하게 감각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피드백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철학은 지도자를 양성하는 과정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인요가는 동작의 ‘정렬’을 언어가 아니라 경험의 층위에서 접근한다. ‘옳은 위치’보다 ‘지금 어디가 불편하고, 어디가 열려 있는가 혹은 닫혔는가'라는 자기 인식에 초점을 둔다. 그래서 강사의 역할은 수정자가 아니라 유도하는 사람이 된다. 이 관점에서 피드백은 기술적인 교정이 아니라 경험을 자각하도록 돕는 질문으로 바뀐다.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무관심을 뜻하지는 않는다. 개입하려는 의지를 내려놓을 만큼 신뢰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인요가의 비피드백은 적극적인 존중의 자세기도 하다. 인요가 마인드는 머무름과 관찰을 통해 수행자가 자기 감각에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철학 때문에 결과나 기술을 기준으로 한 피드백은 최소화한다. 대신 수련 후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방식으로 배움의 방향을 잡는다. 이는 교정이 아니라 감각의 기록이며, 평가가 아니라 존중의 표현이다. 피드백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피드백이라는 형식을 바꾼 것이다.




나는 지금도 호주 원장이 진행 중인 지도자과정에서 피드백을 듣고 도움을 받고 있다. 그 경험을 밑거름 삼아 관련한 공부를 이어가며, 누군가에게 요가를 안내하고 있다. 내가 쉽게 인지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었던 부분을 예민한 감각으로 포착하여 말해준다는 사실 자체가 큰 도움이 되었다.


필요한 것은 전달 방식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먼저 그가 가진 의도를 파악하는 일일지 모른다. 내 모습이 어떻든 간에 현재에 안주하고, 열린 마음으로 배우려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상대의 의도는 상처로만 남는다. 자신의 방식과 모습에 대한 인정만을 바란다면, 그것 또한 배움이 아니라 그저 확인일 뿐이다.


확인은 안전하지만, 성장은 언제나 불편한 곳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말이 불편하게 다가오는 순간,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경계를 발견한다. 그 경계를 외면하고 싶다면 돌아서면 된다. 배움이라는 건 방향을 선택하는 일일 수 있다. 변화는 타인의 언어에서 시작해 나의 언어로 흡수된다. 그래서 배우는 마음은 늘 낯설고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안다는 건 단순히 정보를 축적하는 일이 아니다. 몸의 날을 세우는 일이다. 예민해지는 감각을 견디는 것, 어느 순간부터는 이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것들이 불편하게 다가오고,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게 되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감수(甘受)는 달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쩔 수 없어 받는 것이 아닌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는 의미다. 불편하고 모욕적인 감정, 찔림과 부끄러움까지도 내 몫으로 삼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감수에는 능동성이 들어 있다. 누군가의 피드백이 내 귀에 날카롭게 꽂히는 순간, 그것을 튕겨내지 않고, ‘여기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방향을 바꾸는 힘이다. 좋은 말만 받아들이는 것은 감수가 아니다. 진짜 감수는 공포, 수치, 불편, 위축까지 내 안에서 처리할 의지를 가진 태도이다.


인요가의 원장은 피드백은 없었지만, 원장의 마인드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고, 그로 말미암아 인요가가 무엇인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둘 다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것은 맞지만, 하나는 흐름 속에서 변화를 체험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머무름 속에서 변화를 감지하는 방식이다.


내가 배우는 것은 어쩌면 중요한 기술이나 아사나 정렬법이 아닐 수 있다. 불편을 견디는 방식, 의도를 구별하는 감각, 그리고 감수하는 태도다. 요가는 몸을 단련하는 수련이지만, 그 몸을 이끄는 것은 마음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돌돌 말린 매트를 바닥에 펼친다. 매트는 오늘도 몸의 흔적을 받아 적을 것이고, 다시 둘둘 말려 한 칸에 놓인다 해도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기억이 접힌 형태로 놓일 것이다.



몸이 닿았던 자리는
시간이 닿았던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매트는
언제나 작은 일기장처럼 나를 기다린다.
수련이 끝난 뒤 말려 들어가는 것은
어쩌면 '오늘의 나'다.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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