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마주하다
당분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겨울은, 계절의 사강死腔이 된다.
겨울은 잠시 멈춘다.
예정된 불안은
역설적으로 안도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이
먼저 숨을 고른다.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 듬성듬성 빈 하늘
눈이 내리기 직전 소리가 머무는 대기
바람의 궤적을 그대로 닮은 고드름
흐르는 물을 잠시 가둔 얼어붙은 강
삼킨 말을 가둔 후 여운이 남은 입술
움직이지 않기를 선택한 어깨
시간이 멈춘 듯한 누군가의 눈빛
이유를 붙이지 못한 침묵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에야
시계視界를 마주 볼 용기가 생긴다.
이 사강 속에서 내려놓기와 듣기를 배우게 된다.
계절은 잠시 기차역 대합실이 된다.
아직 형태를 갖지 못한 무수히 많은 감각이
고요히 출발을 기다린다.
유일하게 삶의 여백이 허용되는 무명의 시간이다.
시계視界를 마주 볼 때
가장자리를 맴돌다 그대로 얼어붙은 시간의 조각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간이 호흡이 잠시 머물러
숨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호흡의 대기실,
호흡은 늘 들고나니 쉴 틈이 없으리라 여긴다.
삶이 멈추지 않는 한,
숨도 멈출 수 없기에.
‘숨을 쉰다’는 말은 있어도 ‘숨이 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그 영속성 속에서,
우리는 삶의 연속성만을 배운다.
폐는 인체에서 슬픔이 머무는 가장 문학적인 공간이다.
슬픔은 폐포의 가장 깊은 모서리에 습기로 머물며,
숨을 내쉴 때마다 미처 내뱉지 못한 단어처럼 목에 걸린다.
슬픔이 벅찰 때 숨이 막히듯,
폐는 가장 연약한 형태로 감정의 무게를 짊어진다.
그러다 문득,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흐름 속에도
절대적인 멈춤이 있다는 사실에 닿는다.
찾을 수 없는 곳에서 호흡은 잠시 고요히 멈춘다.
그것을 호흡의 사강死腔이라 부른다.
들이쉬고 내쉬는 사이,
이름 붙일 수 없는 지식止息,
숨이 잠시 멈추는 순간
이 멈춤이 폐가 슬픔을 담는 방식이다.
숨을 가득 채운 후,
내쉬기 직전의 멈춤은 망설임이다.
이 슬픔을 세상에 놓아도 괜찮을까.
반면 숨을 완전히 내쉬고 다시
들이쉬기 직전의 멈춤은 공백이다.
이 공백은 거리낌이 없음을
몸의 떨림으로 서늘하게 알아차린다.
이 찰나의 사강 속에서
시간의 톱니바퀴는 아주 미세하게 정지한다.
겨울의 사강안에서
시계視界는 더 이상 미래를 보지 않는다.
대신 지금을 마주 한다.
숨이 멈춘 자리에서
슬픔은 사건이 아니라
풍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