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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Sep 25. 2023

다시 사랑하기

나를 사랑하는 방법

사람이 보험이다.1
다시 사랑하기

고민이 되었다. 굳이 다시 칼럼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을까? 이 내용이 신문의 지면을 할애할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누가 궁금해한다고? 결론은 새로운 시작이 지난 번 '이수현의 보험 아는만큼 보인다' 70회의 거리보다 더 먼거리를 가려한다면 새로이 시작하는 이유와 그 다짐을 정리하고 공유하는 것이 맞겠다는 것이었다.
우선, 새로운 시작의 이유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멈췄던 이유를 논하는 것이 순서인듯 하다. 가장 흔한 이유, 바쁘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글쓰기 뿐 아니라 모든 것이 그저 버겁기만 했었다. 만성소화불량으로 소화제와 변비약을 수시로 먹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급기야 정신과에서 불안과 수면에 관련된 약을 처방받기에 이르렀다.
 내가 사는 모양새를 아는 이들은 연재를 멈추겠다고 하자 모두들 잘했다고 격려해주었다. 한동안 2주 간격으로 찾아왔던 마감의 압박이 없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자신에게 조차 숨겨왔던 진짜 이유가 드러났다. 바쁘다는 이유로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글을 써내는 게 힘들어졌던 것이었다.
40대 중반의 아줌마. 손해사정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고, 회사를 시작한 지 8년차, 부모님들은 물론, 대학의 은사님들도 정년퇴임을 하셨다. 누구도 나한테 잔소리를 할 수 없다. 20년을 함께 산 남편도 퇴근 후 내가 소파 위에 올려놓는 가방이 불편하지만 침을 꿀꺽 삼킨다. 다른 회사 대표님들도 '아 사무실이 좋네요~' 하지만 그들의 칭찬은 칭찬이 아니라 "이미 어쩔 수 없는 40대 이상의 꼰대끼리 건드리지는 말자"의 정중한 표현임을 서로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나를 위해 잔소리할 열정을 낼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슬프거나 아픈 일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임을 잘 알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만큼 나를 사랑하는 사람 혹은 나의 행동이 자신을 불편하게 할만큼 나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매우 귀하다.
이런 나에게 책은 유일한 채찍이고 배움이었다. 책을 통해서 움직임의 동력과 이유를 얻고 반성하고 안식하던 내가 책을 읽지 않으니 칼럼연재 뿐 아니라 모든 일에 힘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연재를 쉬는 동안 공저로 책이 나왔고 사무실을 이사하는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동력을 모두 바닥내버렸고 나는 몸과 마음에 단 한 톨의 쌀도 남지 않은 쌀독이 된 기분으로 다시 나를 채워야 한다며 두 달여를 급한 일 외에 모든 것을 뒤로 미루며 지냈다. 준비하던 책의 관련자료 등은 이사짐 박스에서 아직 꺼내지도 않았다. 폭식과 불안정한 수면으로 몸무게는 계속해서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하루 종일 머리가 띵했다. 온 몸에 두드러기와 가려움증이 올라와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고 피가 나도록 긁어도 가라앉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면, 온 에너지를 끌어올려 대하고 혼자가 되면 벽이나 소파에 들러붙어버렸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은 욕심에 확장한 사무실에 새로 들인 소파는 나의 온몸을 받아주었다. 어느날 갑자기 내 방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 위에는 내가 검토하기를 미룬 서류들이 한가득이었다. 그 사이에 내가 꼭 읽겠노라 선발해 둔 몇 권의 책들.
그래, 어차피 내가 저 서류들을 맑은 정신으로 보기는 요원한 거 같으니 책이라도 읽자. 이렇게 눈 감고만 지낼 수는 없잖아. 용기를 내어 책을 폈다. 파스칼의 '팡세'였다. 소파에 누워서 보기에 작은 문고판이라 가장 팔이 안 아플 거 같아 고른 '팡세'는 당연히 재미가 없었다. 반쯤 읽었다. 그리고 너무 지루해서 결국 다 읽지 못했다. 그러나 파스칼의 잔소리는 효과적이었다. 나에게 두 개를 가르쳐 주었다.
1. 사람이란 대개의 경우 타인의 생각을 이루어진 이유보다는 스스로 찾아낸 이유로 더 잘 납득할 수 있다.
2.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알아야한다. 그것이 진리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자기 생활의 질서를 세우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당연한 일은 없는 것이다.
파스칼의 팡세 중
나는 사람들이 그만 좀 쉬어야 한다고 말하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걸 핑계로 더 쉬고만 싶었던 것이다. 일이야 어떻게 되든, 성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나한테 사람들이 쉬어야 한다고 말하니 내가 소파에 눕는 것은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결국 나를 납득시킨 핑계는 나였는데 말이다. 이런 나를 제대로 잘 알아야 새로 살아갈 힘을 내고 방법을 찾아나갈 수 있는데 나는 이 당연한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든 내가 몸을 추스르고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팡세의 지루한 잔소리가 나를 힘들게 해서였는지 이상하게 그날밤 잠이 잘 왔다. 다음날 전화를 받는 나의 언어가 풍부해졌고 시원해졌다. 아니, 그냥 평소보다 내 맘에 들었다. 책 한권도 안되는 인풋이 아웃풋을 보여줬다.   
다음날부터 좀더 적극적으로 책을 읽으려 노력했다. 읽었던 책들 위주로 보며, 나를 움직이게 했던 동력들을 확인했다. 식이요법을 할 마음이 났고, 쌓여있는 서류들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식이요법을 하자 속이 진정되고, 가려움이 없어지고, 마음에 적극적인 움직임들이 생겨났다. 그러다 글도 다시 쓰고 싶어졌다.
조금 황당할 수도 있다. 책이 가려움증이랑 무슨 상관이지? 책 읽으면 병도 고쳐?
나는 책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책읽기’는 아무에게도 잔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나를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그 사랑을 다시 시작하자 내 몸과 마음을 돌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지쳐 있는가? 사랑하자. 마감이 안되는 자신이 싫고 힘든가? 사랑하자. 아무도 잔소리 할 엄두가 안 나는 꼰대인데 영업도 안되는 자신을 다시 사랑하자. 책. 읽어라. 사랑해라. 책으로 사랑하는 게 버겁다면 이수현의 칼럼으로라도 자신을 사랑하자. 함께 사랑하자. 이수현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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