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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lolife Aug 26. 2019

안 생겨요

몇 년 전에 인기 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의 코너 '안 생겨요'를 좋아했었다.

15년째 아무런 이유 없이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는다는 두 남자들의 이야기는 슬픈 상황인데 참 웃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SAWdQmz2K4

출처 : 유튜브 계정 KBSEntertain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 이야기일 때는 그렇게 재미있었던 '안 생겨요. 그래도 안 생겨요.'란 유행어가 몇 년 후에 어떤 질문만 받으면 그렇게 대답하고 싶은 말로 슬프게 다가올 줄 그땐 알지 못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랫집에 사시는 할머니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게 되었다.

할머니는 짧은 인사 후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셨다.


"결혼은 했어요?"

"네~ 했어요"


"아기는 없어요? 뛰는 소리가 없어서 조용하길래"

"네~ 아직 없어요"


엘리베이터는 이 두 마디를 겨우 할 정도로 짧은 시간에 아랫집 할머니 층에 멈춰 섰다.

"안녕히 가세요."



얼마 후, 아랫집 할머니를 다시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다.


"퇴근하나 봐요?"

"네~"


"근데, 아기는 왜 없어요?"

".......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아 그래요? 그래도 애가 있어야죠. 애를 빨리 낳아야지."

할머니의 이 말이 끝나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 대답할 겨를이 없어 쓴웃음을 지으며

"안녕히 가세요"란 말로 대신했다.


다시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홀로 남겨진 나는

'.... 안 생겨요. 안 생겨서 못 낳고 있어요...’

'할머니, 어떻게 하면 아기가 생길까요? 저도 너무 답답해요.'

되묻고 싶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색하고 안 생긴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러기도 싫다.

그냥 거짓 웃음을 짓고 넘어가는 것이 편하다. 그냥 다른 사람 이야기인 듯.





나도 안 낳고 싶어서 안 낳는 게 아닌데...

할머니들은 머 다 그러시지.. 하고 쿨하고 넘기기에는 내 주위 사람들의 많은 관심 속에 숱하게 들어온 그 말 때문에 배꼽 언저리 저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났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옹졸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결혼을 하기 전엔,

- 언제 결혼할 거냐? 그러다 아기는 언제 낳을라고.


결혼을 앞두며,

- 지금 결혼하면 노산인데, 언제 애를 낳아서 키우냐? 애가 대학교까지 보내려면 오래 일 열심히 해야겠네.



이런 관심들에 귀찮지만 몰랐던 이야기도 아니고 틀린 이야기도 아니니 진심 쿨한 마음으로 대답할 수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개그 코너의 두 남자들처럼 씁쓸하지만 웃을 수 있는 청중의 마음처럼 나도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난임 병원에 가게 되고 금방 안될 줄은 알았지만 생각 외로 오랜 시기 동안 안될 줄은 몰랐다.

시간이 흘러가며 나도 마음 편한 사람처럼 웃을 수가 없게 되었다.

아기 갖는 게 어렵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게 진짜 내 일이 될지는 몰랐던 것이다.


내 일이라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때론 지난 과거를 후회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지금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많은 걸 포기하고 일찍 결혼해서 아기 낳는데 열중하고 싶진 않다.

과거의 난 충분히 나로서 열심히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남의 이야기일 때와 나의 이야기가 될 때는 다르다. 당해봐야 안다.

나도 남의 이야기일 땐 몰랐었다.

그 절박한 심정을.

매일 아침 집에서 배에 주사를 놓고 아이를 기다리며 몸 컨디션이 저 바닥에 있을 때는 몸도 아프고 마음은 더 아프다는 것을.


나도 누군가에게 지나가는 말로 그 사람의 사정도 모르고 그런 말을 무의식으로 하진 않았을까? 란 생각이 누군가가 걱정한다며 내게 건넨 위로가 오지랖으로 들릴 때마다 나에게 되물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요즘은 사람들이 개인사라며 많이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나는 여전히 자주 듣고 있다.

나보다 한두 살이라도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아직 바뀌지 않았나 보다.



할머니 세대 그리고 우리 부모 세대엔 결혼과 출산이 당연시 되던 시대.

80년대 생인 우리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는 시대.

이 과도기에서 아기를 낳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우려 섞인 목소리, 때론 비난을 받는 세대가 우리 세대이다.

당연했던 시대와 당연하지 않은 시대의 충돌.


그 사이에서 난 어떤 말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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