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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lolife Aug 31. 2019

난임 병원의 풍경

지금 진료 접수하시면 대기 시간이 2시간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생리 시기가 한참 지나도 소식이 없어 몸 상태가 어찌 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 열흘을 미루고 미루다가 답답한 마음에 병원에 왔다.

토요일의 병원 접수창구는 복잡하다.

대기실에는 내 또래로 보이거나 혹은 더 어려 보이는 부부들이 손을 잡고 조용히 이야기 중이거나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

가끔 둘째를 계획하고 있는 부부가 아이를 데려올 땐 아이의 고음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져 적막함을 깰 뿐이다. 이곳이 아닌곳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면 투정을 부리는 구나.. 하는 생각으로 스쳐지나갈텐데 난임병원안에서의 아이의 목소리는 누군가에겐 간절히 원하지만 들을 수 없는 내 아이의 목소리라는 생각에 내 작은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가 다니는 병원에 의사는 세 명인데 모든 의사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대기가 꽉 차 앉을자리가 없었다. 평일보다는 남편들이 동행해서 병원을 더 많이 찾아서 그런지 서 있는 사람들도 많다.

주말엔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서 간식으로 미니 핫브레이크를 병원에서 놓아둔다. 물론 나는 초콜릿을 피하고 있기 때문에 외면할 수밖에 없지.


오늘 나의 담당 의사 대기 인원은 16명이다.

이렇게 많은 부부들이 병원에 꽉 차 있을 때면, 대기 시간에 불만이 생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부부만의 힘듦이 아니란 생각에 괜한 위안을 받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흔히 걸리는 감기로 병원을 찾았을 때 별 걱정 없이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란 생각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부부의 일도 그런 거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겠지.

지금 진료실에서 초음파 사진을 들고 나오는 저 부부처럼 신기함과 설렘을 담은 표정을 짓는 우리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가끔 숨죽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부부를 보면 어떤 사연인지 몰라도 조용히 가서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





진료 접수를 마치고 병원 앱으로 대기 순서를 체크할 수 있어서 앉을 곳도 없는 대기실을 벗어났다.


같은 건물에 주말이라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토요일 오전 10시의 카페는 텅텅 비어 방금 들어온 남편과 나 둘 뿐이다.

좋아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키려 입 밖으로 꺼내려고 했다가 목구멍으로 삼키었다. 그리고 대신 과일주스가 있나 살펴보고 수박주스를 주문했다.

하루에 2잔 이상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하루에 한 잔  먹는 것도 좋지 않을까 봐 늘 자제하지만, 매번 머릿속으로는 고민이 된다. 오늘은 괜찮지 않을까?

딱 오늘 한잔만 먹고 싶다.

하지만 오늘의 유혹도 참았다.

남편이 시키는 아메리카노 한 모금만 뺏어 마셔야지.


카페에서 남편은 노트북을 꺼내어 작업을 하고, 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글을 쓴다.

지금 이 순간도 소중히 아껴야지.

언젠가는 바쁜 육아에 정신없는 때가 오면 주말의 병원 그리고 우리 둘이 보낸 카페에서의 시간이 생각나겠지?



대기 순번 03.

이제 병원으로 돌아가야겠다.

다시 그 풍경으로 들어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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