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시험관 배아 이식
이번에는 냉동 이식이라 난자 채취 없이 생리 시작 3일째부터 5일간 약을 먹고 난포 터지는 시기까지 기다리는데 난포가 아직 터지지 않아서 엉덩이 주사를 한방 맞았었다.
한 번에 채취하는 개수가 많다면 한번 난자 채취로 여러 차례 이식이 가능하다.
나의 경우엔, 난자 채취가 딱 한번 이식할 만큼 3~4개 정도 나왔다.
앞의 두 번은 신선 배아 이식을 했는데 이번엔 한 달을 쉬고 이식하는 터라 냉동된 배아를 이식하게 되었다.
이식의 날이 왔다.
세 번째 이식이라 그런지 아니면 깜빡해서인지 병원에서 이식 후 안내 종이도 주지 않고 구두로도 딱히 설명이 없었다. 그냥 다음에 언제 방문해야 하는지만 알려주었다.
사실 나도 궁금한 게 없어서 물어보지도 않았다. 다 아는 절차니깐. 하지만 이 프로세스에 익숙해진다는 것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이식 날과 다음날 이틀의 휴가를 냈다.
아침 7시 반이 되자 눈을 떠졌다.
오늘은 몇 달째 잠잠했던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려 창문 넘어의 풍경은 침침했다.
병원에 가기 전까지 4시간이 남았다.
어제 먹은 저녁밥이 다 소화되지 않아서 속이 더부룩했다. 잠시 소파에 누웠다.
남편은 출근 준비가 한창이다.
첫 번째 난자 채취와 배아 이식 땐 남편이 오후 반차를 쓰고 달려왔다.
난자 채취 때엔 처음 겪어보는 시험관 시술의 걱정이 많이 되기도 했고 절차상 남편도 꼭 와야 한다.
나 혼자 애를 만들 수는 없으니..
이식 때는 남편은 보호자의 역할 외엔 딱히 할 일이 없다. (사실 그게 가장 큰 역할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남편 없이 혼자 가기로 했다. 잠깐인데 남편까지 아까운 오후 반차를 쓰는 게 내가 아까워서 나 혼자 가겠다고 했다. 딱히 심적으로나 몸적으로 힘들지도 않을 것 같았다.
첫 배아 이식 때엔 남편이 운전하면서 방지턱만 넘어도 괜히 긴장되고 그랬다. 이식된 배아가 흘러나올까 봐.
하지만 이번엔 덤덤해지고 싶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가. 운전도 내가 직접 하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방지턱 때문에 배아가 흘러나오는 거면 우리 아이가 아닌 거지..
그냥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고 싶었다. 아무렇지 않게..
- 나 혼자 아기 데리러 갔다 올게~
- 아기 꼭 데리고 와~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남편은 현관문을 나섰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보니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믿는 종교는 없지만 오늘은 기도하면 들어주시려나?
이럴 때만 기도한다고 더 미움받는 건 아니려나?
병원 접수대에서 접수 후 시술 차례를 기다리며 핸드폰에 브런치 앱을 실행했다.
채취 때나 이식하기 위한 대기석에 앉아있을 때는 괜한 긴장감이 든다.
이럴 때 글을 쓰고 있으면 집중되면서 서서히 마음이 안정이 된다.
진료 대기 전광판을 보며 나의 담당 의사는 여전히 바쁘구나. 진료 대기인원만 9명.
진료 대기 외에 채취나 이식은 별도로 틈틈이 이뤄진다.
채취나 이식 대기 전광판엔 체외수정 채취 중인 5명. 인공수정은 1명이 회복 중이다.
남편이나 보호자를 위해 진행상태를 알려주는 목적인 것 같다.
나처럼 대기 중인 사람은 전광판에 뜨지 않는다.
시술실로 들어가는 저 문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누워서 대기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늘 난 얼마의 대기 시간이 걸릴까? 저번에는 진짜 대기시간이 길었는데..
곧 점심시간인데, 의사는 언제 밥을 먹는 걸까? 내 걱정보다 담당 의사 걱정이 드는 오지랖을 부려본다.
기대하지 않는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내심 이번엔 꼭 되어야 한다는 마음도 종종 튀어 오른다.
이번에도 아기가 오지 않으면, 자궁내막증 수술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담당 의사가 이야기했었다.
처음 대학병원에서 당장 복강경 수술 날짜를 잡자고 이야기 후 희망은 끈을 놓고 싶지 않아 난임 병원으로 온 지 거의 2년이 흘렀다.
2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수술을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조금 억울할 것도 같았다.
자궁내막증 수술은 복강경 수술이라 무섭기도 했지만, 수술 후 난소 기능도 떨어지면 아기 갖기는 더 힘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자궁내막이나 자궁은 별 이상이 없기 때문에 병원을 다니며 자연임신 시도도 여러 번 했고 시험관 시술도 3번 해도 실패하면 의심되는 원인을 제거해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 시술 때는 시험관 시술에 대한 두려움.
두 번째는 이번엔 임신이 될 거라는 설렘.
세 번째는 꼭 아기가 와줬으면 하는 간절함이 든다.
네 번째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의 80프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이식을 하기 위해 수술대에 누웠다.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손발을 고정했다.
의사는 배양된 배아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냉동되었던 배아가 여전히 등급이 떨어지지 않고 상급 1개. 중상급 2개라고 했다.
난 35세가 넘었기에 이식 때 3개의 배아를 이식할 수 있다.
3개 중에 제발 1개라도 착상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만이 간절했다.
비교적 간단하다는 이식이 내 몸 구조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자궁의 위치가 넣기 쉽지 않아서라고 했다. 하아. 한참이 걸려서야 3개가 모두 이식이 완료되었다.
난 회복실로 옮겨져 한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에어팟을 귀에 꽂고 잔잔한 음악을 들었다.
시술 시 아프고 조마했던 마음이 이내 평화로워졌다.
너희들 중 누구라도 내 아이가 되어주지 않으련?
어서 오렴.
두 팔 벌려 너를 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