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집에 누군가가 있을까?
아기 초음파 사진을 자세히 본 적 있으신가요?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 장면이었던 아기 초음파 사진.
난임인 나에게 가장 보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사진이 바로 초음파 사진이었다.
누군가가 임신했다며 행복해하는 미소를 띠며 초음파 사진을 내밀지만, 누군가에게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사진이다. 그 사진은 연출해서 찍을 수도 없다.
나는 간절하지만 지금 가질 수 없는 그 사진을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별다른 어려움 없이 금방 임신에 성공한 지인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진심 어린 축하보다는 상실감이 먼저 들었다.
'나도 저 사진을 갖게 되겠지?'란 작은 희망보다는
'난 왜? 저 사진을 볼 수 없는 걸까?'란 마음이 들었다.
임신은 다 같은 마음일 텐데..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은데, 왜 그렇게 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다니는 난임 병원 입구에는 '소망나무'라는 이름으로 어렵게 아기를 갖게 된 후, 갖게 된 초음파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소망을 담아 포기하지 말고 임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 걸어놓은 목적이겠지.
문을 열자마자 바로 보이는 초음파 사진들을 나는 2년 가까이 되도록 병원에 드나들면서도 한 번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사진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과연 나는 그 사진을 갖게 될까?'란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냥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그냥 임신이 되어있으면 좋겠다.
늘 이런 마음이었으니.
지금 이 고난을 회피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나처럼 초음파 사진을 보는 자체가 부담인 사람들이 많았는지 병원에 다니고 얼마 후에 '소망나무'를 병원에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없앨 것인지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었다. 난 어느 쪽에도 투표하지 않았지만,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래도 초음파 사진과 그 속에 적힌 희망 메시지들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았나 보다.
세 번째 배아 이식 후에 늘 몸을 사리며 이번엔 임신일까? 배가 아픈데 착상해서 그런지 임신징조인가? 란 생각을 매일 매시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임신이 되지 않으면 자궁내막이 저절로 탈락되는 생리현상이 나타나야 할 시기임에도 아직 감감무소식이었다. 설마? 이번엔 임신테스트기를 해볼까? 란 생각을 잠깐 해보았지만 설레발치지 않기로 했다.
작은 희망이라도 품으면 그만큼 절망으로 바뀌기 마련이니 피검사가 잡혀있는 병원 예약일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정신 수련하는 느낌이랄까? 이러다가 득도하겠단 생각이 자주 들었다.
드디어 피검사하는 날.
출근 전 병원에 들러 피검사를 하고 점심때쯤 결과가 올 전화를 기다렸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기 위해 오전에 회사일에 집중하려고 있는 힘껏 최대한 노력했다.
점심을 먹고 나니 걸려온 전화 속 목소리는 의사가 아닌 간호사였다. 희망적인 신호인가?
간호사는 1차 피검사 수치가 임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하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고 있었다. 아직 임신을 판단할 수는 없고 2차 피검사를 하고 그 수치가 1차에 비해 두배가 되어야지 임신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했다. 핸드폰을 든 손은 떨렸지만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다. 아직 확정은 아니니까.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음파 사진을 볼 때까지는 우리만 알고 있기로 했다.
다행히도 2차 피검사까지 통과한 후에 병원에서 진료를 보러 오라고 했다.
한 번도 진행된 적 없는 배아 이식 후의 진행상황에 며칠 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병원 진료를 가기로 한 날 새벽에 잠을 설쳤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남편과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태명 이야기를 꺼내보았지만 이내 말을 아꼈다.
아직 피검사 이후에도 불안한 경우는 많으니까.
월요일 아침. 대기번호 22번
휴.. 오늘도 긴 대기가 시작이지만 지금까지 왔었던 기분과 다르게 새로웠다.
이런 기다림은 처음이니까.
대기시간 동안 처음으로 소망나무를 자세히 보게 될 용기가 생겼다.
남편과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아기 초음파 사진들을 처음으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초음파에 적힌 메시지도 희망적으로 보이고 우리를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그냥 까만 배경화면에 뭔가가 있는 거였는지 알았는데, 이게 바로 아기집이구나.
흔히 볼 수 없었던 쌍둥이 초음파 사진은 이렇구나.
그 흔한 초음파 사진 한 장을 나도 볼 수 있을까?
우리에겐 흔하지 않은 간절한 그 사진 한장.
오늘 우리만의 초음파 사진을 갖게 될까?
남편과 나는 설렘과 긴장감으로 병원에서의 오전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 반 만에 드디어 내 차례의 진료가 시작된다.
대기전광판에 내 이름이 제일 위로 올라왔다.
두근두근.
ooo님. 초음파실로 들어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