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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lolife Jul 13. 2020

난임 에세이의 마지막 글

드디어 임신했어요.

처음 '난임 에세이' 매거진 글을 쓰기로 시작하면서 마지막 이야기는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었지만 결국엔 나도 임신했어요. 란 글로 끝내는 게 목표였다. 목표한다고 내가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다른 문제였지만.


마음이 싱숭생숭할 땐 난임 카페 성공 후기를 보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는 했다. 하지만 성공 후기 카테고리엔 새로운 글이 자주 올라오지 않고 오래된 글들이 많았다.

시험관 시술을 하는 과정의 블로그 글들도 많이 읽었는데, 그 블로거는 임신에 성공했는지 가장 최근의 글들을 읽어 근황을 확인했다.

최근 글이 육아 이야기이면 나에게도 희망적이었고, 마지막 글이 몇 년이 지난 채 시술에서 끝났다면 나도 그렇게 끝날까 봐 불안했다. (물론 바쁜 육아에 글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내가 생각한 마지막 글을 못쓰게 되는 건 아닐까? 혹은 그 마지막 글을 쓰는데 너무 오래 걸려 글쓰기를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였다.

하지만 임신을 준비하며 들었던 생각과 느낌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거나 대중적이진 않겠지만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한 명의 사람이라도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컸기 때문에 성공이든 실패든 끝까지 써보기로 마음먹었었다.


나도 누군가가 공유해준 글 하나에 공감하기도 하고 희망을 품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힘든 과정을 기록한 내용이 만약 내가 임신하게 된다면 도움이 될 테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공감이 될 것이다. 글을 써서 난임 카페에 성공 후기에 글을 올려서 내가 받았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 내 마음 하나 추스리기도 벅찬데 그런 날이 올까?

혹은 글을 쓰면서 나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서 스스로 치유하기도 했다.



'내 인생에 아기는 없을 수 있겠구나.' 체념하는 마음과 '나도 어렵지만 임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란 희망은 정말 시시각각 변한다. 어떤 날은 난임은 인생에서 별일 아닌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날은 아기가 없는 우리 부부를 생각하면 조금은 울적해지기도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어선 초음파실에서 한눈에 봐도 확실한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담당의사는 차분하게 초음파를 하면서

이게 아기집이에요.
다행히 착상이 잘되어서 앞으로 잘 유지하시면 돼요.


나의 첫 아기 초음파 사진 - 이 사진을 만나기까지 2년이 걸렸구나.



나의 담당의사는 담담한 목소리지만 최선을 다해 나를 위로해줄 때도 있었고, 힘 있는 목소리로 잘될 거라며 파이팅을 외쳐주기도 했었다.

거의 2년 동안 함께한 담당 의사의 그 말을 들으니, 드디어 긴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초음파를 보면서 실감은 잘 나지 않았지만 살짝 눈물이 고였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구나.

이 한마디를 그동안 그렇게 듣고 싶었는데..


의사는 임신 초기이니 조심 또 조심하기를 당부했다. 어렵게 한 임신이니 자궁내막증의 혹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한 것처럼 잘 견디면 된다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다음 진료일에는 아기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심장 소리를 초음파로 듣는다는 것이 잘 상상은 되지 않았다.

내 심장소리가 아닌 내 안의 아이의 심장소리라니.


진료실을 나가며 담당의사는 나에게 아기 초음파 사진을 건네었다.

'소망나무'에서만 보던 그런 초음파 사진이었다.

진료실 밖에 대기 중인 여러 난임부부들이 혹시나 마음 쓰일까 하여 초음파 사진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두 손에 들려있는 그 사진이 혹여나 구겨질까 조심스레 가방 속 책 안에 고이 꽂아두었다.

간호사는 임신을 축하한다며 임신확인서를 발급해주었다.

A4 종이 한 장에 출산예정일이 적혀있었다.

내가 드디어 임신을 했구나!


병원에서의 일정은 모두 끝이 났다.

남편과 나는 병원 밖을 나오자 흥분된 목소리로 임신이 됐음을 만끽했다. 이거 실화냐? 란 유행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평소 차분한 내 목소리는 꽤나 높아졌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집 근처 작은 레스토랑에 들러 축하하기로 했다.

파스타와 피자를 먹으며 우리 둘의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 그 느낌이었다.

몇 달 뒤에 우리 둘이 아닌 셋이 될 가족을 꿈꾸어봐도 되겠지? 나에게도 그런 행운이 왔구나. 세상이 날 버리지 않았어!





'결혼한다고 꼭 아기가 있어야할까?'란 생각으로 지내왔다. 아기는 나에게 선택의 문제였다.

약 2년 전 여러 대학병원에서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

임신은 나에게 없을지도 모른다고.

선택의 문제였는데 내 마음은 그 순간 선택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역시 닥쳐봐야 아는건가..


시험관 시술을 결정했을때 '내 몸은 괜찮을까?' 걱정이 되던 마음.

우리 둘이 살까? 란 서로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많은 밤들. 이제 우린 간절히 아기를 바라고 있었다.

깜깜한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인터넷 카페 난임에 대한 글들을 읽던 많은 밤들.

긴 터널 속에서 빛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디어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끝낼 수 있을까? 란 두려움은 바뀌어 다행히 해피엔딩이 되었다.

약 2년 만에 임신이 된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보다 더 오랫동안 더 좋지 않은 상황에서 몸고생 마음고생하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작은 희망의 글이었으면 좋겠다.

노력해도 되지 않을 것 같던 그 막막한 순간이 지나고, 아직은 때가 아니어서 우리에게 오지 않은 아이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묵묵히 쌓아 올린 하루하루가 모여 오늘이 되었다.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아이를 갖는 과정에서, 우리 부부가 아이를 만나기 위한 절실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나 또한 내가 갖게 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더욱 무겁게 느끼게 되었다.


난임을 겪으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그만큼 더 성숙해졌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상황의 사람들을 만난다면 아무 말하지 않고 두 팔 벌려 안아주고 싶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난임부부에게 세상 온 기운을 가득 담아 행운을 보내주고 싶다.



- 그동안 '난임 에세이' 글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로 또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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