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해..
생각처럼 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시험관 시술이 진짜 이렇게 힘든 거구나.. 설마 했던 불안감이 커지자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조바심에 한 달을 쉬겠다는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바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생리 3일째에 출근 전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이번엔 냉동된 배아가 있으니 이식만 하기 되기 때문에 배 주사는 맞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루 한 알의 약만 꾸준히 먹기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진찰을 받고 수납을 하면서 정부지원 차수에 대해 물어보았다. 현재까지 신선 2차. 그리고 냉동 1차를 소진하였고 다음번엔 냉동 2차이다. 시간이 생각보다 훌쩍 지나간다. 시간의 단위가 한 달이 된 지 꽤 오래되었다. 내 신체의 흐름에 맞추어 감정의 기복도 왔다 갔다 한다. 임신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차수는 생각보다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어느 순간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차수의 끝이 오는 날까지 계속 난임 병원에 다니는 건 아닐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란 생각을 하니 마음 한편이 소리 없이 쿵하고 무너진다.
오늘도 걱정들로 채워지고 있는 마음을 애써 외면해 보려 에어 팟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회사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병원에서의 감정을 잊고 회사일에 빠져 봐야겠다.
회사에 도착하면 생계형 직장인이 되어 정신없는 하루가 또 지나간다.
병원 다녀온 지 10일쯤 지났을까? 이식 가능 시기를 보려 병원에 들르기 전 며칠 전부터 갈색 혈흔이 비친다.
며칠 째 계속되는 비정상적인 출혈에 걱정이 되어 잠을 설쳤다.
병원을 다시 찾아 초음파를 보니 큰 이상은 없는데 출혈이 계속되면 이번 달 이식은 중단해야 할 수도 있었다.
의사는 이식 전까지 먹고 있는 호르몬 약이 몸에서 잘 받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번에도 갈색 혈흔이 있었지만 그땐 여러 그럴만한 상황이 있어서 넘겼는데, 이번엔 배 주사도 없이 호르몬 약만 먹는데도 그러니깐.
냉동되어 있는 배아의 상태가 좋은데 내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이식은 힘들게 만든 배아를 그냥 흘려보낼 수 있다고 의사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주말이 지나고 다시 병원을 찾을 때까지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주말 동안에도 출혈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멈추진 않았다.
남편과 이야기를 하며 이번에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게 어떨까?라고 말을 건네보았고, 남편은 내 몸이 우선이라며 나를 달래주었다. 속도보다는 냉동배아가 중요했다.
한 달이면 내 몸이 더 괜찮아지지 않을까?
난임 병원을 다니면서 자연 임신을 위해 노력하고, 그 후 시험관을 시작하며 앞만 보며 달려오다가 처음으로 이렇게 멈추었다.
한 달 주기 동안에 배 주사, 끊임없는 호르몬 약 복용, 난자 채취, 중간에 자궁 폴립 제거, 이식 그리고 기다림.
내 몸이 한 달 주기로 맞추어져 '이번 달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과 '모든 게 짜증 나..' 그리고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 기복을 겪으며 호르몬의 노예가 된 느낌이었다.
이번 일을 핑계 삼아 잠시 임신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마음껏 먹고 싶었던 빵, 밀가루 음식, 라면, 짠 김치찌개를 배부르게 먹고 싶었다.
극심한 생리통이 와도 꾸역꾸역 회사를 출근해야 하고, 그게 끝나면 호르몬 약을 먹으며 매일 같은 시간 배 주사를 놓고 나면 난자 채취를 해야 하는 날이 오고 며칠 후 이식한 후에는 최대한 안정을 취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좋아하는 여행은 커녕 거의 회사 집 말고는 멀리 가지 못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날 밤 우리는 실망감보다는,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설렘으로 이 기간이 아니면 또 엄두도 못 낼 해외 비행기표를 검색했다. 여행에 대한 결정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당장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도 예약했다. 우리에겐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사실 우리는 아기를 간절히 기다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이 자유로운 생활의 달콤함을 계속 느끼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에라, 모르겠다.
우리.
잠시나마 잊고 떠나자! 보라카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