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호르몬의 역습. 생활 습관 바꾸기.
처음 병원에서 자궁내막증 의심이라고 들었을 때 수술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가장 컸다.
수술이 무서웠기도 했지만, 수술을 한다고 해도 재발하는 경우가 많고, 수술하고 나면 임신이 더 어려워질 수 있는 몸 상태가 된다고 하니 어쩔 줄 몰라 막막했었다.
고민 끝에 난임 병원에서의 의사 결정을 따라 수술을 바로 하지 않고 임신 준비를 하기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자연 임신을 기다리며 한 달 한 달이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줄 알고 혼란스럽고 두려웠던 마음이 자연 임신을 기다리며 한 달이 지나갈수록 점점 가라앉고 무뎌지기 시작했다.
야속하게도 생리가 다시 시작하고 통증이 점점 심해지면 뒤통수를 누군가 때리듯 정신이 번쩍 든다.
'이번엔 아기가 안 오는구나. 아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살았나?'
통증이 심해진다는 건, 생리를 하면 할수록 혹이 커진다거나 개수가 늘어날 수 있는 상황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스물스물 커져갔다. 진통제를 먹는 양도 늘어났다. 임신을 대하는 태도를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싶지만 매달 다가오는 고통을 생각하면 두려워졌다.
내 마음속의 악마와 천사처럼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말자.
아니야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혹만 커지고 많아지는 거 아닐까? 임신은커녕 혹이 터져서 다른 장기로....
나 잘못되는 거 아닐까?'
'더 내가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올 거야.'
'아니, 도대체 왜 임신이 안 되는 걸까? 이러다 진짜 안 되는 거 아니야?'
란 생각에 왔다 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마음이 들었다.
시험 보면 정답이 있는 것처럼, 나의 임신에도 답이 있었으면 좋겠다. 1.2.3.4번 중에 2번을 선택하면 정답이 되는 것처럼 운동을 얼마큼 하고 무엇을 먹으면 임신이 된다는 것처럼 답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말이지 답답했다.
'바디 버든'이란 단어를 알게 된 건 난임 병원을 처음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바디 버든(body burden)이란 몸에 쌓이는 해로운 화학물질의 총량을 말한다. 바디 버든을 구성하는 유해 화학물질은 다양한 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하는 원인이 된다. 바디 버든은 특히 여성 호르몬에 영향을 주며 아이들에게까지 대물림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출처: 다음 백과
SBS 스페셜로 방송했던 '바디버든 1부-자궁의 경고'를 챙겨보는데 충격적이었다.
우리 몸에 스며들 수 있는 환경호르몬이 이렇게 많았다니.. 이 환경호르몬이 우리 몸에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이런 용기나 제품을 왜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주의하라는 문구가 하나 없는 걸까? 제품단가만 생각했지 사람의 건강이나 환경은 눈곱 많지 생각하지 않는 기업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난 너무 무지하게 살아왔구나.
방송에는 바디 버든 줄이기 실험자들의 전과 후를 바디 버든 수치를 비교했는데, 한 실험자는 효과로 그동안 난임이어서 오랫동안 고생했는데 임신을 한 것이었다.
그 실험자는 실낱같은 내 희망이 되었다. 바디 버든 줄이기를 실천하면서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그 실험자가 임신을 하게 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어쩌면 임신이 될 수 있을 유일한 방법.
출구는 모르지만 출구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이라도 해봐야겠지라는 마음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을 모두 유리로 바꿔보자
주방을 살펴보니 김치, 반찬을 담는 통, 과일 씻는 바구니 등 대부분이 플라스틱이었다. 냉장고 안에도 플라스틱이 가득했다.
하아, 이 많은 걸 언제 다 바꾸지?
생각의 끝에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 집에는 남는 유리그릇이 있을 거야.
역시나 엄마 집엔 쓰지도 않고 대기 중인 유리그릇들이 꽤 많았다. 이렇게 돈 들이지 않고 김치통, 반찬통들을 쉽게 바꿀 수 있었다.
화장품, 샴푸, 바디워시, 세제 등 바꾸기
가장 쉬운 방법은 쓰고 다 떨어져 가던 샴푸, 트리트먼트, 바디워시, 세제 등을 차례로 대체품으로 찾는 일이었다.
물론 처음에 어떤 제품을 써야 할지 찾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었지만 유튜브의 뷰티 크리에이터가 추천해주는 제품을 몇 가지 꼽은 후에 '화해'라는 앱으로 화장품 등의 성분을 확인할 수 있고 리뷰 등을 꼼꼼히 읽은 후 한번 결정하고 나면 그다음엔 큰 노력이 들지 않았다.
일회용품 줄이기
그동안 배달음식으로 차곡히 쌓아둔 나무젓가락, 수저, 요리하면서 남은 자투리 채소들은 일회용 비닐봉지에 보관했다.
이런 일회용품 수저로 뜨거운 국물을 뜬다거나 전자레인지에 비닐봉지를 씌운 채 돌리면 화학물질이 내 몸안에 스며든다.
나무젓가락과 수저는 일단 쓰지 않기로 하지만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을 테니 버리진 않고 모아둔다.
자투리 채소들은 일회용 비닐봉지 대신 유리그릇에,
전자레인지에 비닐봉지 대신 다른 유리그릇으로 덮기.
인스턴트 줄이기
인스턴트를 요즘 젊은 세대에 비해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안 먹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시간을 줄여보고자 마트에 갈 때마다 햇반을 사서 쟁여놓았었다.
플라스틱에 담겨있는 햇반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햇반 대신 냄비밥을 해 먹어보기도 하고 밥을 한 후에 냉동밥으로 얼려놓았다가 녹여먹기로 했다.
배고프고 바쁜 마음에 집에 돌아와 편하게 끓여먹는 라면. 튀긴 이 라면이 참 맛있는데..
일요일엔 짜파게티처럼 가끔 찾게 되는데 그것도 함께...
예외 없이 참아보기로 했다.
컵라면은 예전에 먹을 때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용기에 뜨거운 물까지 부어 먹는데 나무젓가락과 일회용 수저로 먹는다. 편의점 앞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으며 화학물질을 같이 먹고 있었던 내 모습이 그려진다. 이제 바디 버든을 알고 난 후엔 그 장면이 더 이상은 소확행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가끔 라면이 먹고 싶을 때는 유기농 마트에서 파는 튀기지 않고 밀가루가 아닌 것을 사 와서 집에서 냄비에 끓여 가끔 먹긴 한다.
라면은 언제 먹어도 참... 맛있다.
배달음식&튀긴 음식&밀가루 먹지 않기 그리고 술 마시지 않기
금요일 밤에 치킨을 시키고 마트에서 시원한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캔을 사들고 들어오는 저녁.
어쩜 별거 아닌 이것이 행복할까?
치킨은 왜 맨날 먹어도 맛있는 걸까?
술을 잘 먹는 편은 아니지만 맥주의 목 넘김은 캬~ 왜 이리 시원할까?
바지락 들어있는 칼국수는 뜨거운 여름에 먹어도 어쩜 그리 시원하고,
냉동실에 늘 상주해 있는 간식용 냉동만두를 꺼내어 에어 프라이기에 바짝 구워 먹으면 희열이 느껴진다.
나는 이렇게 생활하고 있었다. 내가 임신이 잘 안될 수도 있겠다란 말을 듣기 전까지.
이 많은 걸 포기할 수 있을까? 간절하면 다 포기할 수 있다.
처음부터 딱! 모두 끊으면 거부반응과 금단현상이 나타나니깐 하나씩 서서히 아무도 모르게, 심지어 이걸 지키기로 한 나도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자제하기 시작했다.
맥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3잔 주문할 거를 2잔, 2잔 주문할 거를 1잔, 그리고 나중에는 맥주 대신 생과일 에이드를 주문했디. 사람들이 왠 생과일 에이드? 하고 물어보면 상큼한 게 그리 당긴다고 둘러댔다.
이렇게 술 마시지 않기 클리어!
튀긴 치킨 대신에 구운 치킨으로 바꿔서 시켜보고, 치킨 2번 먹을 거를 1번으로 줄이고, 내내 먹지 않다가 약속이 생겨서 먹으러 갈 때 그때만 마음 편히 먹기로 바꿔보니 간절함이 줄어들었다.
냉동만두는 더 이상 우리 집 냉동실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덥다고 먹는 국수나 쉬워서 자주 해 먹는 파스타는 사지 않았다. 냉동만두 대신에 고구마를 쪄먹고 토마토 파스타 대신에 면만 없는 토마토소스에 다양한 야채를 넣고 나중에 계란을 올리는 샥슈카(에그 인 헬)를 먹었다. 면만 없을 뿐이지 기존에 해 먹던 토마토 파스타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맛있다.
몸에 무리가 오는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야채 찜을 해서 마지막에 소고기를 올려서 먹으면 어제 먹고 오늘 먹어도 맛있다. 그 음식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는데 대체 요리를 찾으려고 하니 점점 요리의 폭이 넓어지고 할 줄 아는 요리도 늘어났다. 생각보다는 한 끗의 차이랄까?
고기 위주보다는 채소와 콩 요리
단백질을 운운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를 구워 먹을 정도로 고기를 좋아했는데, 요즘 우리 집에서 가장 자주 해 먹는 요리는 된장찌개이다. 된장찌개엔 좋은 것들이 참 많이 들어갈 수 있는 요리다. 기본적으로는 두부와 호박 감자 등을 재료로 자주 요리하지만 시금치를 넣으면 시금치 된장국, 배추를 넣으면 배추 된장국등 된장 하나로 여러 재료들을 넣으면 또 달라서 거의 2~3일에 한 번씩은 된장찌개를 해 먹었다.
그리고 요리법이랄 것도 없이 쉽고 몸에도 좋은 채소 찜을 하면서 마지막에 소고기를 살짝 올려주는 요리도 자주 해 먹는다. 채소 하면 샐러드만 생각이 났었는데, 채소 찜은 밥을 따로 먹을 필요 없이 집에 남아있는 채소나 버섯 등을 쪄서 포만감도 있고 살도 덜 찌겠다는 나의 최애 요리이다.
동네 마트 대신 유기농 마트 가기
유기농이 좋다는 건 아는데 비싸다는 유기농 채소로 식탁을 채우려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매번은 힘들지만 주로 유기농 마트에서 식자재를 구입하기로 결심한 후, 처음에는 여러 유기농 마트를 탐방했었다. 어느 유기농 마트는 진짜 비쌌다. 당근 하나에, 채소 조금에 진짜 가격이 망설여져서 몇 번이나 집었다가 다시 놓고는 했었다. 큰 대형마트의 유기농 코너는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아서 자주 가지는 않았지만 꼭 필요한 것들은 괜찮은 가격에 팔고 있었다. 내가 찾은 곳은 유명한 브랜드의 가게는 아니었지만, 다른 유기농 마트에서 파는 것들도 팔고 식품과 과일 등이 일반 마트 가게와 비교하여 가격차이가 나지 않았다.
여러 시도 끝에 차로 10분 거리지만 우리 집에 형편에 맞는 가게를 찾아서 항상 그곳에서 장을 본다.
비싼 줄로만 알았던 유기농도 잘 찾으면 싸게 살 수 있다.
4000보, 6000보, 8000보, 그리고 만보 걷기
예전엔 걷는 게 참 싫었다. 걷는 시간에 차를 탄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깐 걷는 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 따로 헬스장에 간다거나 필라테스, 요가 등을 해보았지만, 나중에 걷는 게 가장 효과 있는 운동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처음엔 그냥 걸으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서 캐시 워크. 캐시슬라이드 앱으로 걸으면 포인트가 쌓이는 앱을 이용하였다. 작아 보이던 1포인트, 2포인트가 늘어나 가끔 목마를 때 커피로 바꿔 먹을 때 희열을 느끼면서 점점 걷기에 흥미를 붙였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하루에 4000보를 걷다가 버스 탈 거리를 걸어가며 6000보로 늘리고 점심시간에 따로 시간을 내서 산책하며 8000보, 그리고 퇴근 후에도 걸으면서 만보 걷기까지 쭉쭉 늘려갔다.
가장 몸에 부담 없으면서 사계절을 느끼며 산책하는 재미도 알게 되었다.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걷는 것이다. 이렇게 걸으면서 몸안의 노폐물을 빠져나갈 수 있게 해 주고 기분전환도 되니 걷기는 나에게 꼭 해야 하는 운동이 되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지킬게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번에 모든 걸 시작하기보다 아주 작은 단계를 키워가면서 확장해 나가니 지금은 여기 쓴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실천하고 있다.
내가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건 나 스스로 자신감을 키우는 일이기도 한 것 같다.
시작하기 전의 할 수 있을까? 란 의심이 지금은 이걸 다 해내는 내가 대견하다.
앞으로 더 노력할 것은 많겠지만 지금의 이 노력이 헛되지 않았었다고, 이 덕분에 우리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날이 내가 하루하루 노력한 만큼 그 성과가 오겠지.
그렇게 그 성과가 나타나서 여기 브런치에서 당당히 자랑하고 싶다.
그날이 오길 기다리며. 오늘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