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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lolife Jan 10. 2021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 커피와 맥주

결혼 직후, 건강 검진을 받고 정밀 검사를 요해 찾은 대학병원 산부인과 2군데에서는 자궁내막증으로 수술 날짜를 바로 잡아주었다. 그 뒤로 찾은 난임 병원에서는 수술하기 전에 임신 시도를 해보고 난 후에 수술을 생각해 보는 게 어떨지 권유했다. 나는 그렇게 임신을 준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몸 관리를 위해서는 알코올과 카페인은 금물이었다.  커피고 맥주고 오로지 내 몸에 해롭다는 건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이별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영혼의 단짝 친구 같은 커피와 맥주를 멀리하게 되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해 애주가는 아니지만 가끔 퇴근 후 맥주 한 캔 정도면 취기가 살짝 기분 좋게 올라와 속이 후련한 마음을 달래주는 친구였다. 커피는 일상생활에서 잠깐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매일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였다.


맥주는 치킨을 먹을 때 생각이 났지만, 참을 만했다. 회사에서의 회식자리에서는 맥주 대신 음료수를 찾는 나를 팀원들이 낯설어했지만, 그냥 몸이 좋지 않아서 안 먹는다 라고 절대 권하지 않았다.

커피는 매일 회사에서 동료들과 오전과 오후 드립 커피로 내려마실 정도로 꽤 친한 친구였다. 갑자기 한 번에 끊지는 못하겠고, 양을 천천히 줄여 나가기로 했다. 처음엔 금단현상처럼 커피 향을 맡을수록 더 애착이 갔지만 마시고 싶을 때마다 매달 점점 심해지는 극심한 생리통을 생각하니 저절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달아났다. 동료들과 함께 커피를 내리고 커피 향을 맡고 한 두입을 최선을 다해 음미를 했다. 그걸로도 충분히 이 친구와 달콤한 시간을 갖는 것 같았다. 그 양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니. 한창 커피에 빠져있었을 때는 하루 세, 네 잔 먹었었는데,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 후에 결국 시험관 시술 여러 번 시도 끝에 쌍둥이 임신이 되었다. 이제 두 생명을 책임지게 되었으니 그동안 잠깐이지만 달콤한 시간을 보낸 커피와도 이별을 했다. 임신을 하게 되니, 더 이상 그 친구가 생각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임신하니 커피 생각나는 거 어떻게 참냐고 물어봤는데, 신기하게도 전혀 먹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게 9달이 흐르고 출산을 했지만, 여전히 모유수유 중이니 그 오래 소식이 끊긴 친구들이 가끔 생각났지만, 만날 수 없었다.


몸도 회복이 되는데 꽤 오래 걸렸고 단유를 한지 한참이 지나도 혹시나 유선염이 올까 봐 그 친구들을 소환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니 소식이 끊긴 그 친구들의 소식이 점점 궁금해져가고 있었다. 어떤 맛이었지? 어떤 목 넘김이었지? 다 아는 맛이면서, 굳이 확인하고 싶은 날이 나에게 찾아왔다.




평범한 일요일 오후, 평일과 다르게 남편이 집에 있고 친정엄마는 주말에는 집에 가시는데 그날은 우리 집에서 같이 계시는 날이라 왠지 평일과 똑같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들 육아로 맥주 한 캔 마신적 없는데 이런 날 기분 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세명 있는 날이니까, 우리 맥주 맛만 보면 안 될까?"로 남편을 꼬드겼다. 남편은 그동안 잘 참았던 내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그러자!"라고 했고, 친정 엄마도 동의하셨다.

가볍게 아파트 단지 안 편의점에 4캔에 만원 하는 긴 맥주를 남편이 사 왔다. 4캔 중에 한 캔을 작은 맥주컵 세 개에 나눠서 따랐다. 우리 가족들은 다 술을 조금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고 잘 못 마신다.

"우리 이거 셋이서 나눠 먹으면 부족할까?"

"애들 또 봐야 하니깐 조금만 먹어야지."


아이들을 잠깐 재우고 셋이서 처음으로 식탁에 앉아 맥주잔을 짠~ 하고 부딪혔다. 

"캬~ 이 맛이야. 진짜 몇 년 만에 먹어보는 건가? 이 맥주 친구 정말 오랜만에 만나네."

"우리는 참 가성비가 좋네. 셋이서 맥주 긴 걸로 한 캔이면 충분하다니."


Photo by Thais Do Rio on Unsplash


이 목 넘김 한잔으로 어른 세명은 잠시나마 육아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마시고 난 후, 셋 다 얼굴이 빨개져서 서로를 놀렸다. 누구 얼굴이 더 빨갛네. 하고 깔깔깔 웃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집에서 종종 육퇴 후에 맥주 한 캔을 셋이서 나눠 마신다.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사소한 이벤트 보내기에 여전히 셋이서 한 캔이면 충분하다. 


그 후로 한참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커피 친구를 다시 만났다. 아주 오랫동안 참다가 최근에 커피콩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마시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육아하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으면서, 드립 커피는 빠지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을 낸다. 겨우 커피를 내려도 아이들이 일어나고 밥을 먹고 놀아주다 보면 어느새 커피는 식어버리고 만다. 친정 엄마는 언젠지도 모르게 커피를 원샷을 하셨다. 커피 한잔 마실 여유도 없는 엄마가 안타까워 "엄마, 무슨 커피를 원샷을 해요~?"라고 물어보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음을 잘 안다. 때론 커피를 내렸다는 사실도 까먹을 때가 많다. 예전엔 따뜻한 커피만 마셨는데, 이제는 식은 커피를 마셔도 행복하다. 물론 예전만큼 많이 마시진 않고 아주 소량으로 마신다. 두 친구를 만난다는 건 바쁜 육아 중에 아주 작은 여유를 의미하기에 더욱 애틋하고 그 시간이 소중하다.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갑다, 친구야!"






커버 사진 출처 : Photo by John Fors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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