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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배우들의 말을 모으는 시간

육퇴살롱 가족 시네마

나와 남편은 아이들이 잠드는 야심한 밤, 유독 합심이 잘된다. 한 명은 리모컨으로 TV를 틀고 한 명은 냉장고에서 한것 차가워진 맥주캔을 딴다. 한 명은 안주로 씹을거리를 준비하고 한 명은 고심해서 '이 밤의 영화'를 고른다. 유일하게 일사분란하게 잘 움직여지는 육퇴 살롱의 현장. 오징어를 질겅거리고 감자칩을 거칠게 씹으면서 하루의 고단함을 날린다. 입 안에 짠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시원한 맥주로 하루 종일 달아오른 몸을 한 김 식혀준다. 술 한잔, 안주부림을 하면서 우린 영화를 보며 만담을 주고 받는다.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과 작품들을 나눈다. 남편과 배우 취향을 이야기하면서, 어느 날부턴가, 난 라이징 스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걸 깨달았다.



잘 생기고 눈에 띄는 몸매 덕에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되었다는 배우. 아무 생각없이 친구 따라 오디션을 봤다가 친구를 제치고 덜컥 주인공 캐스팅이 되었다는 배우. 아이돌 가수 활동을 하다, 그 인기에 휩쓸려 주연을 꾀찬 배우.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 일은 특히나 힘들고 가슴 아픈 순간은 본인만 알아요. 그걸 잊어버리면 안되는거고.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서 그 기회가 올수도 있고 내가 아무리 준비해도 안올수도 있어요. 평생. 그 부분에 있어서 난 운은 좋은것 같아. 끊임없이 노력은 한것 같아."


아마도 처음부터,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지만 늘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사람. 힘들고 가슴아픈 순간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되뇌이는 배우가 좋다. 배우 김혜수다.


2020년 영화 '기생충'으로 칸 국제 영화제에 초청받은 배우 이정은은 영어 인터뷰 당시 당당한 모습으로 영어 실력을 발휘했다. 단칸방 연습실에서 지내며 대학로에서 연기하던 시절에도 언제 쓸지 몰라 전화 영어로 영어공부를 했다고 한다. '언제 써먹을 지 모르지만', '당장 본업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생각할 지 모르지만' 난 무모한 이정은 배우의 그때 그시절, 무모한 노력을 좋아한다.


류승룡 배우는, 20대 시절 생계를 위해 수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떤 일이든 바로 투입될 수 있게, 자동차에 컴프레셔 등 여러 장비를 들고 다녔다한다. 도로 포장, 과수원 비닐하우스 설치, 비데 공장 등 여러 삶의 현장을 떠돌고 그 다음 작품, 다음 작품, 여러 터널을 지나쳐 세상의 빛을 본 류승룡 배우를 좋아한다.  그가 말하는, '수영을 못하는데 발이 안닿는 느낌'에 공감한다. 터널을 걷는 와중에 겪었던 그의 경험들이, 어떤 영화에 바로 투입되더라도 류승룡 표 찰떡 연기를 가능케주는거라고 믿는다.


지금까지 한 100편 넘게, 다 똑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열심히 했었는데...100편 다 결과가 달랐다는 오정세 배우.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잘해서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고, 제가 못해서 망한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돌이켜 생각해보고' 뭔가를 깨닫고, '참 많은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을  응원하며, '그냥 계속하다 보면은 평소에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을 받는 날이 올거라고 말해주는 오정세 배우의 연기를 응원한다.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나햐면 60여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근데 스포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황정민 배우가, 여전히 지금도 스포트라이트 밖의 사람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배우이길 바란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될 레전드 밥상 소감을 남겨주어 고맙다.


"나이 먹을수록 궁금한 게 더 많아진다. 만져보고 냄새맡고 맛보고 싶은 작품들도 너무 많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더 즐기고, 더 느끼면서 하고 싶다. 더 제대로."


나이 마흔을 푸념하던 내게, 달디단 딱밤이라도 때려주듯, 이런 멋진 말까지 전해주는 최민식 배우를 사랑한다.


 '하고싶다' 그러면 해봐야 알지. 그냥 뛰어들어서 하면 돼요! 만져보지도 않고 뭐 어떻게 알겠어요.만져봐야 뭐 뜨거운지, 찬지 알지...냄비 솥이 뜨거운 지 알려면 만져봐야 안다. 뜨거운 맛을 한번 봐야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고, 막상 생겨도 머뭇거리는 나에게, 그냥 뛰어들어서 해보라고 말해준다.


'저같은 사람은 배우가 못 될 거라고 생각했다.','제가 젊었을 때 이런 좋은 작품을 했으면 멘탈이 흔들리고 힘들었을 거 같다. 그런데 늦게 시작하면 간절함이 있어 괜찮다.','전 특별할 게 없다. 연기를 하는 순간 제 삶이 판타지가 된다.'


늦게 시작해도, 전공자가 아니었어도, 배우로서 특별할 게 없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작품마다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염혜란 배우의 판타지를 응원한다. 그녀의 다독거림을 나에게도 귀뜸해준다.


13년 무명 배우 진선규, 본인은 쌀이 떨어져 운 적도 있고, 극단 시절 월급 30만원으로 버틸 때가 많았다한다. 그런데도, 고생하는 후배에게 가지고 있던 돈을 건네고 '밥 같이 먹자. 형이 살게!'말했다던데...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던 진선규 배우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억한다.


살면서, 무엇인가에 그토록 간절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준익 감독이 '땅을 깊게 팔수록 말간 물이 나오다. 물론 손톱이 아프고 피가 나지만 포기하지 말고 더 깊게 파.'라고 류승룡 배우에게 말했다한다. 나에겐, 파야겠다고 생각했던 땅이라도 있었던가.

손톱이 아프고 피가 날 정도로 깊게 파본 적이 있었던가.


영화를 보다말고...

연기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배우인가.


이전 21화 나는 전업주부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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