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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Apr 01. 2024

나는 전업주부로소이다.

나는 전업주부다. 그리고 갓 입학한, 1학년 초등학생들을 키우는 쌍둥이 엄마다.     

전국으로 난임 병원을 들쑤시고 다녔던 난임의 기간을 거치는 동안 경력 단절녀가 되었다.

하루하루 살얼음 내딛듯 걸었던 임신 기간 39주 1일을 거쳐 엄마가 되었다.

몸으로 한 아이를 안고, 두 발로 한 아이를 지탱해 버티던 지옥 육아의 시기를 홀로 겪고

양 갈래로 찢어져 뛰는 아이들을 좇아다니며 키워, 8세를 맞이했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각 : 8시 50분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각 : 13시 50분     

전업 주부에게 주어지는 자유 시간은 5시간이다.

그리고 학원 수업으로 50분 단위로 쪼개지는 자투리 시간들을 얻는다.      

    

주어진 시간 동안 전업주부 엄마는, 집안일을 한다. 아침 여섯 시, 해독주스를 시작으로, 아침 식사 준비,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의 업무가 이어진다.      

인플루언서 블로거 엄마는, 포스팅 거리를 만들고 포스팅을 한다.     

방과후 교사 엄마는, 일주일에 2번 총 5시간의 수업을 한다.     

운동을 좋아하는 엄마는, 일주일에 2번 1시간 요가 수업에 참여한다.

브런치 작가인 엄마는, 일주일에 3번도 연재를 숙제 삼아 글을 쓴다.

배우는 걸 좋아하는 엄마는, 일주일에 1번 미술 심리 수업을 3시간 듣는다.

아픈 아버지가 계시는 친정에, 일주일 동안 7번 다녀간다.


귀하디 귀한 자유시간이건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30분이 채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정 모르는 남편은 ‘그래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 중점을 둔다. 가끔 "둘이서 벌면 그래도 여유롭지..."라는 말을 한다. “옆집 남편분은 쓰레기를 도맡아버리시더라...” 남의 집 이야기를 빗대어 슬그머니 집안일 배분 이야기를 하면 “그 집은 맞벌이 인가보지...” 대답한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초면의 또래 엄마에게 질문을 받았다. 처음 만나 물꼬를 텄던 그녀의 첫 질문은 “집에 계시죠?”였다. 그리고 학교에서마저 양갈래로 찢어진 아이들을 놓쳐버린 날, 쌍둥이에게 키즈폰이라도 사줘야 하나 고민하던 내게 그녀는 “핸드폰은 맞벌이하시는 엄마들이 많이 사주더라고요.” 대답했다. 그 질문과 대답을 이후로 난 웬일인지 그녀를 피하게 되었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집에 있는’, ‘외벌이의 가정’의 전업주부다. 하지만 생각보다 꽤 여러 사람들이 지금, 현재의 내 위치를 귀띔해주고 있어, 놀랐다. 그들은 마치 내가, 집안일과 육아 사이만을 오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일러주고 있었다.          

     “정신차려 당신은 전업주부야.”     

집에 혼자 있으면 밥그릇 가장자리로 마른 밥풀이 눌어붙은 그릇들이 눈에 치인다.

싱크대 여닫이 문의 손자국들이 눈에 띈다.

한 끼 식사가 끝나고 나면 설거지 끝에 또 다른 식사 준비가 꼬리를 물 듯 이어진다.     

온 집안 바닥을 맨 걸레로 훑어도, 언제 닦았냐는 듯 바닥은 금세 더러워진다.

요즘 유행이라는 로봇 물걸레 청소기 이모님 찬스가 없는 내 무릎에선 요가 중에 따닥따닥 소리가 난다.     

남편이 언젠가, 옷은 세탁기가 빨아준다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지만 애벌빨래를 하지 않은 아이의 양말에선 검은 때가 여실하다. 그리고 이렇게 빨았는데도, 누군가 내게 “이렇게 양말 더러운 거 처음 본다.” 아이의 양말을 지적했다. 아이에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실은 내게 하는 말이었다.     

아이들 없는 시간 동안 야무지게 화장실 청소를 해놓았건만, 아이들 물장난 한 번이면 건식 화장실은 저리 가라다.      

    

어찌 됐건 넘쳐나는 집안일을 모른 척하기 힘든 집구석에서 다만 몇 시간이라도 나가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자유일 진데.          

나가있는 동안 커피 한잔을 마시고 밥 한 끼로라도 기분내면 2만 원이 뚝딱인 고물가 시대다. 아무런 경제적 지불 없이, 몇 시간이고 받아주는 곳은 산책길과 도서관뿐이다. 대부분의 점심은 아침에 아이들이 먹다 남긴 남은 밥으로, 넷플릭스를 친구 삼아 대충 때우는 일이 빈번하다. 하지만 어쩌다 브런치를 사 먹고서 SNS에서 사진으로 기분 내는 날엔, '아이들 보내고 유유자적 브런치 먹는 맘'으로 고깝게 기억된다.


언젠가 SNS에서 봤었던 릴스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골자는, 직업이 있는 남편이 모든 잡다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아내를 두고

"집 사람은 집에 있으니깐요."

라고 말하던 내용이었다.     

모든 잡다한 일이 아내의 몫이라고 말하는 듯했던 그 집 남편의 모든 문장은, "집 사람은 지금 일을 쉬고 있으니깐요."로 귀결됐다.          


전업주부이지만, 쉼 없는 노동 시간이 카운트되지 않는 사람. 그 노동의 가치가 ‘집에서 노는 사람’으로 곧잘 폄하당하는 사람. 독박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10시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조금 홀가분해지지만 새벽에의 육아마저도 당연한 사람.     


집에 있는 집 사람은, 지금 실제로 일을 쉬고 있는 게 맞나요.    

 

심술이 돋고 자격지심에 마음이 심란한 날엔, 집안일의 능률이 오른다.           

겨울옷들을 압축팩에 넣고 청소기로 바람을 빼는 작업을 하면서 불필요한 감정들을 빼버린다. 매트하게.     

싱크대에 찍힌 물자국을 훑으며 누군가 내 마음에 찍고 지나간 더러움 자국들을 훔쳐낸다.     

친환경 세제 말고 락스를 단단히 풀어내 청소하며 뽀드득 소리를 만끽한다.     

열탕 소독을 해 보글보글 물방울들이 맺혔다가 바싹 마른 유리병 안에서 쾌감을 찾는다.           

소모적인 감정들을 정리해 나가며 투명해진 가운데 오롯이 빛나는 느낌들을 몇 건져낸다.     

전업 주부로, 집에 있는 엄마라서 더 영롱하게 느낄 수 있는 것들.          


출근시각이 따로 없는 나는, 갓 일어난 아이들 틈 사이에 누워 한참을 부비적거린다.  그때 내 오른쪽 소맷자락 안으로 손을 파고드는 아이의 맨살에서 느껴지는 보드라움, 내 왼쪽 가슴으로 파고드는 작은 몸에 울리는 두근거림에서 느끼는, 행복감.     

나를 위한 베스트셀러 책 한 권을 못 읽어도 아이들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을 읽어줬다. 책을 들고 쪼르르 달려오는 아이들을 볼 때의 그 쾌감. 신들린 연기 하듯 열연 후에 오는 짜릿함.     

엄마표 독후 활동 삼아 요리활동과 미술놀이를 숱하게 했다. 그 속에서의 유쾌 발랄한 느낌.     

베란다 창문을 열고 이불을 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뭉게구름처럼 만발한 벚꽃들에 혼미해지는 느낌.

그리고 낮에의 햇볕에 바스락해진 이불 안에서 춤추는 밤의 아이들을 볼 때의 만족감.     

제철의 재료들로 요리한다. 천천히 육수를 우려내고 갓 만들어낸 김 나는 요리를 바로 낸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즐기는 식감들에 뿌듯해하는 흡족함을 건진다.     

그래. 누가 뭐라 하든. 나는 전업 주부로소이다.

전업 주부가 어때서.           


P.S.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는 말에 때때로 발끈해서 쓰는 글이지만... 전업 주부든, 직장맘이든,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들을 응원합니다. 존경합니다. 실로, 대단들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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