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는 신통하다고 인정받는 젊은 무속인 화림(김고은)이 미국에 사는 부유한 한국인 가족의 의뢰를 받는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저주를 받은 듯 장손들에게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걸 해결해 달라는 5억 원짜리 의뢰였다. 그리고 영화 파묘는 천만 관객 돌파라는 흥행 기록을 낳았다. 명당에 조상을 모시면 집안이 잘되지 않을까,사업이나 건강상 문제가 생기면이장을 해볼까 고려하는 풍수 문화가 아직도 지배적인 탓이 아닐까 싶었다.
영화 파묘를 보고 온 날, 난 잠에 들지 못했다. 고단한 날의 끝이어도, 3초 컷으로 잠에 드는 날이 많지 않을 정도로 예민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파묘 관람 끝, 생각의 연결고리가 우리 집안 세 남자에게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파묘해야 하나...?)
갑자기 우리 집 조상님의 묫자리를 생각하게 하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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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남자 1은,젊고 건강하던 20대 아들, 남자 2를잃었다. 도시에 살다가도, 작업 철이 되면 스스럼없이 섬 마을로 찾아들어 일을 돕던 우직한 아들이었다. 그 아들과, 나는 사촌四寸지간이었다.
평소에도 말수가 없던 남자 1은 그 뒤로 더 말을 잃었다. 입을 닫은 그의 푹 꺼진 등 뒤론, 아들의 마지막 죽음을 목격한 아비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난데없는 비극에, 모르는 사정을 따지고 들며 아무 말이나 퍼다 나르던 섬마을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도 몰렸다. 추측과 소문들이 무성했다.
그러나 저러나 남자 1은 말없이 일에만 매달렸다. 아들과 둘이서 주축이 되어 싸매고 하던 드넓은 밭의 작업을 혼자서라도 다 짊어지려는 듯. 탄식도, 원망도 없이, 급격히 쇠한 기력을 애먼 밭에서 쥐어짜는 모양이었다.
그런 남자 1에, 애달픈 도시의 형, 남자 3이 있었다. 밥은 잘 먹고 사는지, 마음은 어떻게 추스르고 있는지 차마 묻지 못했던 형이었다. 형은 '한번 보러 가마', '밥이나 먹자' 한 마디를 못한 채 간간히 먼발치에서 밭을 맴돌았다. 행여 섣부른 위로가 아픈 마음을 후벼 팔까 싶어 그저 조심스러운 모양이었다. 궁금한 근황을 확인할 길이 없던 형은,남자 2의동선을 짐작하고 먼 길을 나설 뿐이었다. 고작 수 분의 안부 확인을 위해몇 시간을 느리게 달려가고 한 마디를 못 건네고 돌아왔다.
그렇게 말이 없던 두 형제는, 어느 날 대파밭에서 벌어진 허망한 비극을 끝으로, 밥 한 끼를 야무지게 못했다.
어느 날, 오랫동안 입을 닫고, 마음을 닫고, 관계를 끊고 살던 남자 2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겐 작은 아버지다.
"형, 몸은 좀 어때."
안부 하나를 명쾌하게 직접 묻지 못하고 조카딸에게 근황을 물어온 것이었다. 말이 많지 않았지만 절박했고 화려한 언변도 아니었건만 걱정하는 마음만은 깊게 울리던 질문 몇이 이어졌다
몇 마디 대화 끝에 달리 할 말이 없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한 마디로 마무리지으려 했다. 그런데
"어떻게, 걱정이 안 된다냐!" 예상치 못한 반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없는 의학상식과 빈약한 정보들로 조합해 나름의 자구책을 생각해 내셨다. 또 며칠 뒤엔 갓 수확한 쌀 몇 포대를 말없이 보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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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으로 시작해 뇌로 전이된 종양으로 큰 수술을
감내하다, 최근에 또 이상 징후를 발견하곤 급격히
기력이 쇠한 남자 3.
건강하다 못해 건장하던 푸릇한 20대의 몸이었건만
스스로 생의 불을 꺼뜨려버린 한 남자 2.
든든한 아들을 잃고 허망함 속에 살다, 이번엔 사랑하는 형을 하나 더 잃을까 싶어 애달파하는 한 남자 1.
이 셋 모두 섬마을 대파밭 옆 작은 집에서 나고 자랐다. 고리고리한 젓갈에, 파릇한 열무잎 몇 대만 있어도 한 끼 밥을 맛있게 해치우던 남자들이었다.
최근, 박복한 세 남자의 연결고리에 눈물을 흘리다, 기가 막혀하다 못난 글들만 쏟아낸 적이 여러 번이다.
그러다 이번에 영화 파묘를 보고 나서, 우리도 '파묘'를 해야 하려나, 생각했던 게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이 비극의 끝자락들을 쥐고서, 무덤에서 답을 찾으려 하니 막막함이 밀려들었다.
우울증으로 추정되는 자살과 폐암과 뇌종양이라는 질
투병의 비극 사이에서, 원인을 어찌 조상의 파묘에서 찾으려 했을까.
또, 금슬 좋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90세가 훌쩍 넘은 연세에 지병 없이 장수하셨다는, 희극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신실하게 교회를 다니셔서 그랬던 걸까.
날이 갈수록, 불시에 맞이하는 슬픈 일에의 범주가 넓어지고 빈도가 잦아짐을 느낀다.
생각보다 쉽게, 생과 사를 넘나들어 어이가 없다.
예고도 없이 깊은 상실감이라는 폭탄 넘겨주고 가는 기막힌 상황 앞에 실소가 난다.
하지만 우습도록 간사한 것은, 불쑥 찾아드는 슬픔과 허망함을 직 간접적으로 경험하게되는 횟수가 늘면 늘수록 나의 현재에 더 집착하게 된다는 거였다.
행여 내게 그런 불행이 찾아들기 전에,마음의 병도, 몸의 병도, 그게 뭐든 차단해 버리겠다는 듯.
잘 먹는 오늘의 한 상에, 잘 노는 오늘에, 집착한다.
그러다 또 두려움과 허망함 사이를 오간다.욕심껏 부풀어 올랐다가 푹 꺼져버리는 풍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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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할머니의 시골집에서 세 남자 모두가 모여 짭조름한 젓갈과 한 입에 꽉 찰 정도로 큼지막하던, 할머니의 깍두기를 먹던 날을 생각한다. 오래된 전기밥솥 속, 풋내 나는 밥이었어도 한 고봉으로 담아
푸지게 먹던 시골 밥상. 열무 잎에 구수한 시골된장만 찍어서 먹어도 입맛이 돌던 그때를.
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세 남자를 이 맛집에 소집해 낼 수도 없을기막힌 상황이라 애먼 눈물만 훔쳤다.
문득 설거지를 하다, 사촌 동생 앞으로 남아있던 오피스텔과 1억에 가까운 돈이 생각났다. 그 건장한 몸으로, 해외여행 한 번을 못 가본 아이였는데... 착실하게, 차곡차곡 돈 잘 모은다며 모두들 칭찬했었구나.
도모코, 마음이 병든 건 착실히 살아왔다는 증거란다. 설렁설렁 살아가는 놈은 절대로 마음을 다치지 않거든. 넌 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에 병이 든 거야. 마음의 병을 앓는다는 건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증표나 다름없으니까 난 네가 병을 자랑스레 여겼으면 싶다 -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