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여희 Mar 25. 2024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러 갑니다.

당신의 섹시한 운동복을 응원합니다.

배우 전종서가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 스페셜 게임, LA다저스와 키움 히어로즈 경기에서 시구에 나섰다. 그리고 그 시구의 순간부터, 전종서는 우리나라를 넘어서 미국, 일본에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포커스는 그녀의 '잘 던진 공' 시구보다 '레깅스 패션'에 쏠려있었다.



녀의 몸매, 그리고 당당한 시구는 한없이 멋져 보이기만 했다. 코어 힘이 없어서 매번 다리가 후들거리기 일쑤인 내게, 스쿼트 3세트, 런지 3세트에 후달리는 내게, 그녀의 레깅스 패션 시구는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라는 물음을 낳았다. 근육 하나하나 울끈불끈, 잘 다져진 몸매보다 내 눈엔 더 멋져 보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온라인상에서는 그녀의 패션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다 못해, 비난과 욕설까지 오가고 있었다.


'장소에 맞지 않고 보기 민망하다', '아무리 패션이라도 때와 장소를 가려 입어야 한다'로 시작해서, 그녀의 엉덩이 뽕에 대한 평가, 관종짓이라는 비난, '배우의 싸구려 이미지로 국제적 망신이었다'는 막말로 끝났다.


그들이 주장하는 '레깅스 패션의 민망함'이, 선을 넘어선 원색적인 표현들로 인해 더 민망해지는 순간이었다.


무심코 댓글창을 열었다가, 황급히 닫았다. 난 그때 레깅스 차림이었다.


'야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야구 시구의 현장에서, 어떤 운동복이 적합할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으로, 이벤트 삼아 하는 시구 상황에서, 레깅스 패션을 뽐내며 '멋진 시구'를 하는 일이 욕으로 얻어맞고 '포르노 배우'라며 돌로 맞을 일인지 싶다. 것도, 미국이나 일본 매체에서는 '좋은 시구', '귀엽다', '당당해 보였다' 칭찬 일색이었는데도 말이다.


손 끝으로든, 툭툭 내뱉는 말로든,

굳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순간에, 선택에,

탓 어린 말들을, 미움이나 혐오나 원망을, 질투나 시샘을, 내뱉을 필요가 있을까.


자기 자신의,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데에도

모자란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꽉 채워서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I'm only different to the people who see with me wrong eyes.
And I don't care what people like that think.

나는 요가나 필라테스에 갈 때마다 레깅스 바람으로 집을 나선다,

레깅스 위로, 뭔가 두르고 나가긴 하지만 운동 갈 때 레깅스만큼 편한 기능성 옷도, 내 몸 상태를 체크할 수 있어 자세 교정이 가능한 옷도 없다. 반바지를 입고 요가를 하면 반바지 사이로 힐끗 보일 수 있을 살이 민망할 것이고, 할랑이는 옷을 입고 운동하면 출렁거리는 운동복이 신경이 쓰여 집중이 안된다.

몸매가 안 좋더라도, 매끈한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면 운동 열정도 솟는다.


런저런 이유 갖다 부칠 필요 없이,


난 굳이 '내가' 좋아하는 운동 시간에, 남의 눈 의식해 가며 운동복까지 다른 사람 구미에 맞추고 싶지가 않다. '나를 위한' 운동을 하는 시간에, 내 몸에 불편한 옷을 펄럭거리고 싶지 않다. 철저히 '내 만족을 위해' 레깅스를 입고 몸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싶다.


어느 날, 중년의 요가 강사님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옛날에는 보라색 옷을 못 입었었는데... 요즘에는 입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입어봤는데... 어째, 괜찮은가요"


또 어느 날, 어느 중년의 회원분이 내 운동복을 만지작거리며 말씀하셨다.

"이런 운동복은 어디서 사는가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나 입을 수 있는 옷이라..." 역시 혼잣말처럼 한 질문을 부끄러워하며, 매듭지으셨다.


또 다른 어느 날, 새벽마다 수영장에 갔다가 출근하시던 남편의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아줌마들, 수영복 사이로 삐져나온 살들... 보는 것도 곤욕이야" 수영은 어땠냐는 질문에, 혼잣말처럼 나온 답변이 그러했다고 한다.


TPO란 time(시간), place(장소), occasion(상황)의 약자로 적절한 시간, 장소, 상황에서 지켜야 하는 예의로 통용되며, 특히 복식에 대한 표현으로 쓰인다.


크롭트 기장으로 리폼한 다저스 유니폼 상의에 카키색 레깅스를 매치한 전종서의 복장은 일반적인 시구 복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틀린 걸 넘어서서 원색적인 비난을 들어야 할 만큼의 민폐였던 걸까. 그녀가 바라던 게 '화제'였다면, 한국을 넘어서서 미국, 일본에까지 연일 '좋은 반응'이었으니 성공적이다.


장소에 따른 의상의 규칙을 엄격한, 드레스 코드가 있는 곳이 아니라면 보라색 운동복이면 어떠하고, 중년 여성이 입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나 입는 운동복'이면 어떠하며, 살이 삐져나오든 말든 내 몸에 딱 맞는 수영복이면 어떠하랴.


상황을 불편하게만 보는 아니꼬운 시선, 남들에게서 흠집을 찾지 못해 안달 난 좁은 마음, '나는 괜찮지만 남은 아니다', '내로남불'식 마인드야 말로 TPO에 어긋난 게 아닐까. 어느 때라도, 최소한 선의 예의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응원한다.

멋진 몸을 위해, 계란 한 알도 쪼개먹으며 오랫동안 운동으로 다져왔을 당신의 노력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멋진 시구를 보여주기 위해 연습했을 당신의 시간을.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운동 의지를 불살라주게 했던_ 당신의 용기를.


또 응원한다.


'나이가 들어, 젊은 사람 같지 않다' 하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중년의 당신을,

건강을 지키고자, 운동을 위해 투자하는 당신의 시간을.


그리고 못한 말을, 여기에 남긴다.


P.S.


"보라색 운동복이 잘 어울려요."

"운동복 입는데,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마음 가는 대로 하셔요."

"본인의 툭 튀어나온 뱃살들은 어찌하시고... 툭 삐져나온 여성분들 살을 힐끗거리시고선

곤혹스럽다하십니까..."


나를 창피하게 여기면 못쓰는 거예요
그거야말로 못난이야
못난이는 마음이 병든 사람이에요

매일 죽는 날까지
아침에 눈을 뜨면 결심을 해야 해요.
이렇게 물어봐요.

오늘, 세상의 바보들이 나를 깎아내릴 때
매번 그렇게 신경을 쓸래?

-영화, 더 울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