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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Jul 26. 2024

사주를 보러 갔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사주를 보러 갔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사주를 보러 갔었노라 고백했더니 그 돈으로 콩물국수 한 그릇 더 사먹으라며 핀잔을 주더라구요.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냐_ 그런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으련만. 친구를 탓할 수도 없는게...저를, 제 가족을 가여이 여기는게 싫어, 애초에 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의 불행이, 가십거리가 되어 훨훨 날개돋힌 듯 전해지고 옮겨지는게 싫어, 애초에 아무렇지 않은 척 했으니...그걸로 됐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재단하여 어줍잖은 조언을 쏟아내는 꼴에, 손사래치며 방어하지 않아도 되었으니...만족합니다.


하여 콩물국수 한 사발 대신 사주집이 낫겠다, 싶었어요. 혼 전에도 갔던.. 그리고 임신과 출산 전에도 갔었던 사주봐주시던 할머니는 그간 많이 노쇠하셨습니다.


생시를 듣고선 일필휘지로 적어내려가던 사주풀이는 여전하셨지만 그 해석에 사견이 더해진 느낌이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 남자들은 다 거기서 거기다, (80대 이효리 이신줄. '그 놈이 그 놈이다') 미련 갖지 말고, 기대도 갖지 말고 아이들 생각하면서 이혼 생각하지 말고 살아라. 남자들은 원래 다 그렇다. 밖으로 나돈다.

- 외국서 아이 공부시킨다고 아등바등하지말고 온 가족 함께 살아라.

- 이혼해도 또 다른 남자가 계속 생길 팔자이니, 그냥 그 남편이랑 잘 살아보라.


기억나는대로 두서없이 적어봤지만 아무래도 갈등과 분쟁을 싫어하시고, 가정을 지키려 애쓰는 가족 중심적

평화주의자임에 분명한 것 같았어요.


했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시거나, 저희가 던져주는 힌트 이후로 끼워 맞추는 해석을 자꾸 내놓으시는 할머니의 말들을 들으면서, 이제 여기 그만 와야겠구나_ 생각했습니다.


설탕 팍팍 쳐서 살얼음 녹아든 진한 콩물국수 한 그릇을 시원달달하게 후루룩 거렸으면 마음이라도 후련했을지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크게 기대없이 가긴 했지만 뭐라도 희망적인 메세지는 있지 않을까 싶어 갔던 2만원짜리 사주는 그래도 가성비 좋게 끝났습니다. 커플 사주는 덤으로 봐주셨으니 오히려 제겐 남는 장사였어요.


사견은 더해졌을 지언정 틀린 말은 없었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부정적인 이야기도 없었거든요. 그냥,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내 이야기로 하여금 감정의 쓰레기통 삼아 다른 이의 마음이 복잡다난해지지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말 끝자락에 '이건 비밀인데 말이야...' 단서를 붙이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에요.


그냥...요즘의 저는, 남들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로 인해 얻는 실익이 말을 꺼내는 용기에 비해, 지켜지지도 않을 비밀을 단도리해야하는 수고로움에 비해 크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이유로 전 누군가에게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공력을 들이지 않게 되었거든요.


대신 쓰는 수고로움으로 대신합니다. 일부러 연재일을 [월, 화, 수, 목, 금]으로 주 5일 타이트하게 설정해놓고 이 중 이틀만이라도 쏟아내라...하는 심경으로 쓰는 글일지라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고, 글로 해묵은 감정들을 뱉어낼 수 있는 창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늘 감사하는 중이에요. 사주 보러 가는 데 쓰는 시간, 썼던 돈 상관없이 어느 때라도 쏟아낼수 있고 그 후 얻어가는 후련함이라도 있으니 어찌나 고마운 지.


듣는 사주로 얻는 위안 대신 쓰는 후련함을 안겨주는 브런치가 정신 건강에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야심한 이 밤에도 주섬주섬 들어와봤습니다.


뭐라도 써서, 다행인 밤.

백설탕 팍팍 쳐서, 시원하게 콩물국수 한 그릇 후루룩거린 기분으로, 두서없는 글을 서둘러 마무리하며 잠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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