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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움 속 수고로움 앞에 돌을 던지는 자, 누구인가.

"선생님, 휴가 다녀오셨죠?"

사진으로 다 봤어요~ 진짜 좋으셨겠다..."


실로 그랬다. 카카오톡 메인 사진 몇 장만으로 너머로 보는, 지레 짐작해 보는 나의 휴가는. 나의 여름은.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은 있었을지언정

구름은 비현실적으로 뭉게뭉게 아름다웠고

그 아래 수영장 물은 넘실넘실, 청량감이 느껴졌다.

탁 트인 바다를 앞에 두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라니.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행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통제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성취 의지가 강하고 동기부여가 잘되며, 불안감이 적고 곤경에 잘 대처한다. 반면 외부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는 믿음은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이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 이름 붙였다.


하지만 저 맥주잔은 내 잔이 아니다.

저 바다에, 저 수영장에, 뛰어들어 유유히 물결 사이를, 위를 넘나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괜찮았다. 탁 트인 바다 앞에서 까르르 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이 풍경을 마주하는 일마저도 감사한 일이다, 했다.


집에 돌아올 땐 극심한 근육통과 냉방병으로 추정되는 감기 증상과 함께 돌아왔어도. 참을만했다.


저녁을 준비하며 힘들어하는 나에게 "혼자만 힘들었냐"는 핀잔이 던져지기 전까진. '누가 보면 콩쥐, 팥쥐 하다 온 줄 알겠다..." 내 입에선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단어로 뭇매를 맞기 전까진. "평소에 에너지를 비축했어야지, 엉뚱한 데 기력을 다 쓰고 다닌다." 탓하는 말을 듣기 전까진.


그리고 그다음 날 코로나 확진을 확인했다. 변이 바이러스로 근육통과 고열이 극심하다는 코로나 당첨.


얼마나 고되어하나, 얼마나 무더워야 하나. 내 여름은.

아이들을 차례로 열 보초를 서다, 눈물이 새어 나왔다.

내 휴가의 끝은, 부부싸움과 코로나였다.



양가의 여름휴가 시기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질 때가 있었다. 투병 중이었던 아버지는 차치하더라도... 블랙아웃 사건이 벌어진 게 여름 전이었으니 적어도 그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건강 악화 이슈로 한쪽이 거의 풍비박산나 일상을 잃은 지금은, 무게추가 기울고 기울었다. 내 가정의 쌍둥이 엄마이지만 친정에서는 장녀이기도 한 나에겐 기울 대로 기울어 축 쳐진 무게추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작동했다. 그나마 몸이 성한 친정엄마와 나는 아등바등, 여름 방학 내내 그 추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구덩이가 어디까지인가, 그 깊이를 알 길이 없는 우물 곁이었다. 간신히 끌고 잡아당기는 친정 엄마와 내 옆으론 다섯 아이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그들은 쉬임 없이 질문들을 쏟아냈다. 시시때때로 싸우다, 울다, 찡얼거리다, 편을 가르며 놀았다.


본격적인 휴가 전까지는 여름방학을 견디기 모드로, 간신히 버텼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TV 하나 틀어주고 선풍기를 쐴 성미는 못 되는 우리 모녀는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유익하고도 슬기로운 여름방학생활이었다. 안으로의 1박 2일 물놀이를 시작으로, 도서관으로, 각종 체험학습들로.

집 안에서는 온갖 독후활동으로 살뜰히 채웠다.


그런 와중에도 골프장에서 골프 치는 사람 따로, 집에서 빵빵 트는 에어컨으로 여름의 더위를 피하는 사람은 따로였다. 그래도 괜찮다, 했다. 장기전으로 지속되는 위기상황에서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으므로. 불쑥 찾아온 '병마' 앞에, 누군가는 '회피'의 자세로 발을 빼고 누군가는 여전히 '내 일은 아니다' 모르쇠로 무반응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비단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서류 제출 사전 안내를 정작 잊었으면서도 시급한 시일 앞에 굳이 본인이 직접 와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동료이자 상사도 있었다. 출혈로 인해 거동 불편으로 직접 갈 수 없다는 말에도, 기어코 직업 와야 한다는 안내였다.


그리고 단지 '안내' 차원에서 알려준답시며 '직권 면직 처분'이라는 조항과 함께 사무적으로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전 학교 동료는, 식당에서 들어가는 순간부터 부자연스러운 걸음새를 쭉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굳이 테이블로 와 "OO 맞지?" 이름을 확인하는 이 질문 하나만 던지고 홀연히 왔다가 떠났다.


병마와 싸우는 이도 있고, 그 전쟁통에서 아이들 다섯 손을 잡고 총알을 피해 뛰고 기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스크린 너머로 힐끗거리며 댓글 폭탄으로, 확인 사살을 하는 이도 있다.


무게추가 기울어진 이 상황이 싫지만 내색은 할 수 없어 나오는 비아냥. 안 그래도 힘든 쌍둥이 육아에, 플러스가 된 수고스러움이 못마땅해서 나오는 정색.


이슈 사냥꾼이 되어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거리다가 "매운맛 더 봐라." 자괴감과 상실감이라는 수류탄을 직접 넣어주고 결국 눈물, 콧물 쏙 빼놓고 사라지는 타인의 공격.


누군가의 불행 앞에, 당사자는 아니어도 곁에서 가족으로서 감당하는 수고로움과 고생 앞에, 도움을 바란 적이 없다. 공감을 요구한 적도 없다. 적어도 기울어진 무게추가 너희 탓이라는 말은 듣기 싫어, 더 이를 악 물고 빠진 사람들 몫까지 기력을 쏟아가며 수고로움을 자처한 일 밖엔. 


하지만 살포시 기대했던 것 무색하게, '고생하십니다. 대신하여 애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감사 표현의 국제전화 한 통 없었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애쓰네. 자네 몸도 생각하세' 공감이나 응원도 없었다. 호기심의 눈빛이 실린 레이저망과 가십거리로 모터 달린 입을 가동할 준비 태세의 타인들에게서 최소한의 예의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애먼 아픈 사람들만 그들의 공백을 미안해하는 한숨만 남았다.


적어도 돌은 던지지 말았어야지. 여름 내내 간간이 쏟아지던 크고 작은 돌들을 맞다... 무작정 편하지만은 않았던, 휴가 끝에 돌을 맞고... 난 코로나가 안겨준 또 다른 고통과 함께 푹 가라앉았다.


칸트에 따르면, 행복은 ‘자기 존재에 있어서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상태’다.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내 몸에 이고 지어진 짐덩어리들을 벗어던지고 유유히 유영하는 나를 잠시 상상했다. 러다 심의 바다 저 깊은 곳에서,  움직이지도 못 채 비위관을 꽂고 있는 아버지를 봤다. 그 옆엔 갓 수술을 마쳐 걸음이 온전하지 못한 인어공주와 재활에도 여전히 한쪽이 어눌한 인어공주가 하나 더 있었다.


정신이 번쩍 나, 솟아오른다. 정신 차려.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야. 적어도 내 스스로 통제력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할 일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거드는 정도의 고통이 통제력을 잃은 당사자만 할까 싶은 마음에 숙연해졌다.

통제력을 행사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외부 세계를 통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통제하는 것이다. 외부 세계를 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나마 나의 내면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쉽다. 일상을 더듬어보면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는 것, 지식과 경험을 확장시키는 것, 더 나은 상태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자신을 통제함으로써 가능하다. 왜 세상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느냐고 불평할 필요 없다. 사람들이 세상을 원망하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행복해지려면 통제할 수 없는 것 대신 내 마음을 바꾸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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