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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Aug 01. 2024

미니멀리즘 살림 중, 건져올린 '어떤 어른' 양육 다짐

정리는 어렵다. 일단 아집만 버리기로 한다.


여전히 책정리 중이다. 하지만 무척이더딘 작업이다. 좀처럼 미니멀리즘 실현이 안 되는 내 책장엔 늘 이유가 있다. 어떤 책은 그림체가 예뻐서. 어떤 책은 내용이 좋아서. 어떤 책은 아이가 몇 번이고 읽는 책이라...


내 책들은 정작 메인 책장에서 벗어나 먼지가 쌓여갔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기 전까지, 여태의 육아 중 자신 있게 열심히 한 일이 있다면 아이들 동화책 앞에서 열연熱演 일이라... 괜찮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책을 펼쳐드는 아이 앞에 뿌듯해한다.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귀를 쫑긋하며 엄마의 구연동화 시전 앞에 집중하는 아이들 앞에서 행복하다. 그러다 마음껏 안고 매만지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육아 일상 중 손에 꼽을 순간들이다.



다시금 정리를 결심하면서 다시 한번 읽어주던 책 중 '이제 다 컸어'는 결국 다시 책장 속으로 꽂혔다. 껑충껑충 뛰어 숲까지 간다는 캥거루는, 가는 길에 여러 어른들을 만난다. 지렁이를 잘 잡아야 어른이라는 오리너구리 아저씨. 멋지게 굴을 파야 어른이라는 오소리 아주머니.



꼬리로 매달릴 수 있어야 어른이라는 주머니쥐 아저씨.



날개가 없어도 하늘을 날지 못하면 어른이 아니라는 물총새 아주머니.



자기네들 기준에서, 어른임을 자부하고 어른은 '이래야 한다' 말하는 어른들은 캥거루에게

"넌 어른이 아니야. 넌 어리니까 혼자 다니면 안 돼." 이야기한다.


이 동화책을 소장하겠다며, 책을 집어든 나는 어떤 어른일까 생각해 봤다.


부처님이 승섭파(=나무 이름) 숲에 머물 때, 손으로 그 나뭇잎을 한 줌 따서 그것을 비유로 삼아 아난에게 말한다. “내가 설했던 법이 이만큼이라면, 내가 깨달았던 법은 마치 모든 초목의 잎과 같다.”

- 승섭파엽유경(升攝波葉喻經)


초등학생 1학년이 되어, 학부모 명찰을 갓 달은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쌍둥이들에게 "넌 어리니까 혼자 다니면 안 돼." 이야기하는 어른 엄마.


채팅으로 알게 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A양이 집에 혼자 있는 틈을 타 성폭행한 혐의(미성년자 의제강간)로 입건되었다는 20대 B씨와 C씨같은 어른들이 있어서 그렇고.


범행 당시 주나 약물을 복용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에게 80cm가량의 일본도를 휘두른 30대 남성 D 같은 어른들도 있어서 그렇고.


화재 위험 등의 연유로 항공 보안법에 따라 금지된 항공기 내 흡연을 굳이 자행했다는 전자담배를 피우는 어른 승객 E 같은 어른도 있어서 그렇다.



비단 오늘 자 기사에서 언급된 주머니쥐, 오소리... 동물들만도 못한 어른들 때문만은 아니다.


지하 주차장 자동차 사고가 걱정되어 등굣길 아이들과 함께 길을 나선다. 학교 폭력이 무섭다. 학교에 비비탄총을 소지한 채 등교해 실명 위기 이슈를 가져온 또래의 아이도 걱정된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하교시각 학교 앞에서 대기를 타던 1학기의 여러 날들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오리너구리는 아니지만 지렁이를 잘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미술수업에 보낸다.

멋지게 굴을 잘 팠으면 좋겠다 싶어, 태권도 수업에도 보낸다. 꼬리로 잘 매달리는 법을 가르치려, 영어, 수학 수업에도 보내고. 없는 날개로 나는 법을 배울까 싶어, 수영도, 줄넘기도, 테니스도 가르친다.


주변의 아이들은 저마다, 무엇인가를 잘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험하고 배운다.



조이, 캥거루는 껑충껑충 잘 뛰면 된단다.


캥거루에게, 껑충껑충 잘 뛰면 된단다 이야기해 주고

주머니쥐에게, 잘 날지 못하더라도 꼬리로 잘 매달리면 된다고 일러주고. 지렁이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것들을 땅 속에서 탐색해 볼 수 있을 거란다_ 오리너구리에게, 미리부터 한계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 이전에, 캥거루가 여러 경험들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엄마가 지정해 놓은 협소한 인간관계를 넘어서 다양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혼자 숲에도, 바다에도 보낼 수 있는 그런 캥거루 엄마가 되어보자고 다짐해 본다.


하지만, 아직도 혼자 보낸 등굣길을 먼발치에서 10배 줌으로 확대해 들여다본다. 핸드폰은 쥐어주지 않을지언정 키즈콜의 알림 소리에 귀를 기울다.


담대한 엄마 어른이 되기엔 아직 먼, 쪼랩 학부형이다.


일단 책장을 정리하는 방구석, 낡은 동화책 앞에서 자기반성과 다짐을 웅얼거려 본 것이라도 칭찬해 본다.


아집 我執

생각의 범위가 좁아서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 가지 입장에서만 사물을 보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방식. 즉,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삼고, 자기에게 집착하며 스스로를 내세우는 모든 생각과 마음.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어떤 어른으로 키울 것인가.


하루하루 돌이켜보고 다짐하다 보면

1cm씩 멋짐으로 나이 들어갈 지도.

1cm씩 의젓하게 자라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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