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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Aug 29. 2024

절 예불 드리러 가는 시간

눈물을 쏟아내기에 안전한 장소, 나의 아지트

불현듯 '예불에 가야겠다'는 마음은 왜 들었을까.


새벽녘에 터무니없이 운이 좋았던 꿈속을 헤매다, 번쩍 눈을 뜬 아침을 보내서 그랬는지. 아침에 확인한 첫 메시지에서 "아빠의 상태를 업데이트해 달라"는 말을 확인해서 그랬는지.


다음 달부터는 여름방학 특수를 끝내고 운동에 다시 등록해야 할 테니. 오늘 생각난 김에 절에 다녀와야겠다는 다짐으로 길을 나섰다.



난임의 기간 동안 '마음 편하게 먹으면 다 생긴다. 예민하면, 생길 아이도 안 생긴다.' 모두가 하나같이 입 모아 하던 말들에 매번 발끈하다... 그놈의 내 마음 하나 하게 할 수 있을 방법을 몰라 고심한 끝에 불교대학에 등록했다. 얼결에 여련수라는 법명의 불자가 되었다.


두바이에 있을 동안엔 성경과 찬송가에 제법 또르르 눈물을 훔치던 잠시, 크리스천이었다. 친구 권유로 성당에도 몇 번 드나들고 외할머니 집에 있던 성모 마리아 상도 유심히 들여다볼 땐 이러다 가톨릭 신자가 되나 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난임 일상 이후로, 불자. 불교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교리를 배우긴 했어도 반야심경을 외울지 모르는 사람이면서도! 불자라고 말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여행을 갈 때마다 그 지역 유명 사찰을 늘 들러, 쌀 보시라하고 오고. 생일 때마다, 해마다 가족등도 쓰고. 부처님 오신 날만이 아니더라도 시시때때로 아이들 데리고 가까운 절에 자주 가는 정도면! 금강경 책자에, 살뜰히 편지까지 써서 소원을 담아 부처님 상 아래에 넣기까지 했다.  쇼핑엔 자주 안 열리는 지갑인데도 20만 원 내고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워낙, 예불은 오랜만이라... 내심 긴장 모드로 대웅전에 들어섰다. 들어가자마자 진하게 맞이해 주던 절 향을 맡으며 안도감을 느꼈다. 눈으로 주지 스님을 먼저 훑고 건강하신 지 확인하고서, 안심했다. 주섬주섬 책자를 펼쳐보데 그때나 지금이나 주문 같은 진언들은 한 박자 느리게 따라서 웅얼거리기만 할 뿐, 깊은 뜻을 알 리 없



그래도 '옴마니 반메훔' 소원 성취 진언 뉴진스님 못지않게 열성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금강경 독송으로 넘어가는데 불현듯 눈물이 후둑후둑 참을 새 없이 떨어졌다. 난임 병원에 다니며, 불교 대학에 다니는 동안 금강경 글귀 아래에 깨알 글씨로 우리말로 써넣던 작업을 하던 게 생각났다. 분, 시 단위로 시간을 쪼개 시간 효율성을 지독히도 따지는 사람이, 그땐 상당 시간을 그렇게도 보낼 수 있었던가 싶었다. 이왕 하는 불교대학에서의 공부, 내용을 알고나 하자 싶어 시작한 것이었는데 그때의 노력들이 생각나면서 난임 일상 속 종종 예불에 다니며 눈물을 훔치던 새댁의 모습이 떠올랐던 거다.


야리야리했던 새댁 대신 지금은 결혼 10년 차가 되어가는, 성난 승모근의 쌍둥이 엄마가 무릎을 꿇고 앉아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눈물을 훔치다 말고

108배를 하는 분위기가 되어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108배를 하는 동안 나 말고도 꽤나 여러 얼굴들을 떠올렸다.



어릴 적 엄마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내가 뭘 했다고 우느냐"였다. 결혼 후엔 남편에게 종종 그 말을 듣는다. 엄마는 자주 눈물을 훔치는 내게 눈을 흘겼고 남편은 툴툴대다가 이따금 고성을 내질렀다. 내 울음으로 인해 자신이 형편없는 남편이 된 것 같다며 억울해며. 내 인생에 이토록 고성을 내지르는 사람이 있었던가. 학창 시절에도, 직장생활 도중에도, 평생을 경험한 적 없던 그 수모를 결혼 후 종종 감내해야 한다는 게 서글퍼 더 눈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유를 모를 눈물을 흠씬 쏟아내도 비난이나 지탄받지 않아도 되는, 흘려보내는 내 감정들에 다른 이의 눈치까지는 살피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장소가 하나쯤 있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매일 10시 향긋한 향내에 둘러싸여 알 수 없는 활자들 속에 배회하는 시간. 한껏 눈물을 쏟아내며 후련해하다 마음이 가라앉고 슬픔 속에 홀로 앉아있는 나를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조금 챙겨갈 수 있는 시간. 간만의 108배로 걸음은 다소 무겁게 나왔지만 도심 속 초록 식물들로 둘러싸인 사찰 안에서 내 마음은 가벼워다.


“제행무상 제법무아, ‘모든 것은 항상 변하니 ’


예불이 끝나고 등산 모자를 챙겨 나가시는 주지스님의 당찬 발걸음이 보였다.


2016


옛날에의 주지스님처럼, 그 발걸음에 여태 경쾌함이 실려있어 참 다행이다 싶었다.


#무각사

#예불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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