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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Aug 22. 2024

아버지와 헤어질 결심. 마지막 인사를 준비하는 시간

난소기능저하로 난자를 채취하는 일부터 고난에 부딪혔던 나에게 두 개의 수정란이 착상 단계에 이르는 일. 임신 수치를 확인하고 하루하루 예민하고도 불안한 걸음을 내디뎌 39주 1일까지 버텼던 것. 유도 분만으로 뜬 눈에, 생 고통으로 하루를 보내고 자연 분만으로 쌍둥이를 출산한 것. 하루하루가 불안함의 연속이었다. 뱃속의 아이가 행여 잘못되지는 않을까... 온갖 상상 속에, 애써 일군 임신 성공의 일이 수포로 돌아갈까 봐 떨고 또 떨었다.  생명을 넘어서 두 생명을 한꺼번에 기다리는 일. 나에겐 숱한 노력과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고됨, 설명이 안 되는 우연들이 응축된 기적과같았다.


설렘과 긴장감, 불안함 사이를 오가다 어찌어찌 39주 1일을 맞이하고 아이들을 만났던 순간. 난임병원을 다니던 시간뿐만 아니라 39주, 무통 주사 천국도 없이 온 얼굴 근육을 일그러트린 채 고통스러워하던 그 시간들. 출산의 몇 분, 몇 초를 기점으로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해냈다!" 성취감보다 "다행이다" 안도의 눈물이 새어 나왔던 때.


독일로 가족들이 떠나기 전, 아빠를 보고 간다며 요양병원에 들렀다. 며칠 전 봤을 때의 아빠와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10년 투병 후에 스며든 죽음을 기다리는 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운 진실은 묘지가 모든 사람의 최종 목적지라는 것’과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와 죽으면 대지의 자궁으로 들어가 눕는다’라는 것이다.


허공을 멍하게 응시하다, 가까스로 우리를 알아본 아빠는 힘겹게 "아빠의 세 아이"라고 말했다. 그 조합 역시 우리가 짜 맞추었던 단어들이었다. 세 아이 중 지극히 F성향의 나는 아빠를 잡은 손 위에 눈물을 후둑 거리느라 바빴다. 아이들 때문에 잠시 퇴원해, 곧 재활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T와 F성향 사이의 딸은 속으로 아빠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한다. 간호 전공의 T성향 딸은, 면회 후 머지않아 생길 사태에 대비해 몇 가지 대책들에 순번을 매겨 정리해 놓았다.


아빠의 죽음 앞에 경우의 수란 없어 보였다. 이 큰일이 당장 오늘 밤에 벌어져도 이상할 일이 없다는 듯.  아빠를 위한 천주교 미사에 동행했던 교인 분 중 한 분은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이 장례식장 이사로 있으니.....

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꺼내시곤 장례식장 명함을 건네었을 정도니.


지금의 아빠를 지탱하는 건, 최소한의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을 호스 하나와 빨갛게 피로 물든 소변을 받아내던 소변줄, 산소를 공급하던 콧줄. 몇 개의 줄들 뿐.


당장 독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탑승해야 할 날이 내일인데, 아빠가 죽을 날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른다니.


근육이 다 빠져 앙상한 아빠의 몸은 힘겹고 희미한 숨을 헐떡일 때만 겨우 움직였다. 아빠에게 남은 과제란, 숨이 멎는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아빠의 죽음 앞에는 '아빠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어떠한 불안감도, 혹시나 몇 개월만이라도 더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없었다.


몇 개의 호스로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버티는 일상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는지, 의구심이 일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이 꺼져가듯 희미해졌으며 존엄을 잃은 아빠를 구원할 수 있는 기적은 어디에도 없는 걸까. 의문 들지 않았다.


미리 정리해 놓은 대책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죽음을 담담하다 못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해 황망함으로 거친 울음을 토해내던 사촌동생의 죽음보다 담백하게 기다리는 아빠의 죽음은 예견할 수 있어, 더 나은 상황인 건지.


생명이라는 단어를 놓고 현저히 다른 온도 앞에 오래간만에 쌍둥이를 기다리던 그때의 마음을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까르르 대는 아이들을 보며 웃었다.


'떠날 시간이 됐으니 각자의 길을 가세, 나는 죽음으로, 자네들은 삶으로, 어느 것이 좋은지는 신 만이 안 다네'


꺼트려져 가는 아빠의 죽음이 그가 현재 겪는 고통과 공허한 일상의 무의미한 지속보다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다, 그 생각마저 접었다. 아이들 웃음 앞에 묻혔다.


행여 병원에서 전화가 오지 않을까, 핸드폰을 보는 때가 잦아졌다. 나는 실로 아빠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인가. 나도 실은 이미 헤어질 결심을 하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죽음 앞에 갈대와 참나무도 차이가 없고, 제왕이나 학자, 의사 같은 이들과 청소부 사이도 차이가 없다. 죽음은 신분의 차별과 서러움으로부터 해방이고, 세상의 모든 억압에서 풀려나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억압에서 풀려난 자들이 죽음에서 누리는 축복은 평화와 안식이다.”


병원에서 나와, 아이들과 독후활동 삼아 요새 엄마표 과학 놀이 수박화채로 SNS에서 유행(?)인 사이다 ×멘토스 화채를 만들었다.


아빠의 앙상한 모습 대신 수박화채 사진을 올린 하루.

슬픈 날이었던가, 즐거운 날이었던가.


온 세상은 하나의 무대이고, 모든 남녀는 그저 배우일 뿐이어서, 무대에 오르고 퇴장하나니.


퇴장을 준비하는 병상의 아빠 대신, 내 눈에 올망졸망 귀여운 아가씨가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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