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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Sep 20. 2024

부고 알림 딜레마

막상 임종 알림 전화와 가족 관계 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아 오라는 안내 전화를 받아 들고 나니 발은 떨어지지 않고 손이 달달 떨렸다. 목소리는 가늘게 떨려, 가족들에게 가까스로 소식을 알렸다.


1. 행정복지센터 (가족 관계 증명서)

2. 요양병원 (사망진단서 발급)

3. 장례식장

4. 천주교 묘원 관련, 성당 2곳 방문

5. 아이들 픽업 및 케어


갈 곳이 많았는데 운전할 기력이 없어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다가 이곳저곳을 빠르게, 그리고 느리게 돌았다.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우왕좌왕이었지만 해야 할 일은 슬픔과는 상관없이 한껏 차올라, 정신을 차려야 했다. 눈물을 훔쳤다가 무심하게 방향 지시등을 켰다... 학교 마치고 학원에 차례로 도착했다는 쌍둥이들의 보고 전화가 이어지니 한데 모았던 집중력은 또다시 분산됐다.


그런데, 이 와중에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나는 철저히, 혼자구나. 가운데, 외로웠다.

나를 중심으로 여러 역할들이 몰리고, 몰려... 내 목덜미를 쥐고 정신 차리고 일 처리 안 해, 몰아세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필요한 서류들을 발급받는 일 처리들을 하고. 외국에 있는 남은 가족들이 돌아오는 시간들을 감안하여, 화장 가능 일정을 체크하여, 4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하고 부고 알림에 대해 카톡 메시지로, 전화로, 이야기했다.


"부고를 낼 것인가, 아님 가족과 친척들끼리만 장례식을 치를 것인가."


아빠는 딱히 그의 장례식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만 언젠가 그의 메모에서 '부고를 내지 말 것' 끄적거림을 본 적은 있었다. 결혼식장이며, 장례식장이며, 다른 이들의 경조사들은 매번 살뜰히 챙겨 왔던 아빠는 정작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부고도 알리지 않았다.


아빠의 몸이 아픈 와중에, 아빠를 모시고 아빠 지인 분 어머님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인사말 대신 "옛날의 OOO가 아니시구먼!" 안타까움인지, 놀라움인지, 조롱인지 모를 평가 어린 말만 함께 듣고 와서 노여워했던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당사자인 아빠는 오죽 마음이 아렸을까 싶어, 배려 없이 감탄사처럼 내뱉듯 말한 상대의 인사에 격분했었다. 그런 수모까지 겪어가면서도 남들에게 하는 인사는 늘 깍듯했던 아빠의 소식은 그냥 묻어두는 게 나은 걸까.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으나... 역시나 내 옆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줄  만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


아내이자, 엄마이자, 며느리인 40대의 사람이었지만... 아빠를 잃은 나는, 그저 아빠의 작은 아이, '우리 아빠 큰 딸'이었을 뿐이다. 아빠는 날 늘 '우리 아빠 큰 딸'이라 불렀다.


하지만 생전에 많은 분들에게 애정을 갖고 챙셨던 "사람 좋아하던" 아빠였기에 가시는 길 외롭지 않도록,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는 마련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장례식에 엄마가 안 오면, 분명 모두들 또 섣부른 판단과 평가 어린 말들을 쏟아내고 탓하는 말들로 비난할 텐데... 이 참담한 심정 속에, 스쳐 지나가는 의구심 어린 눈빛을, 무례한 지 모르고 지극히 사적인 질문들을 쏟아내며 궁금증을 채우기에 바쁜 이기심들을, 굳이 겪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이슈 앞에, 눈을 번뜩이고 드라마 앞에 새치 입을 나불거리는 가벼운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깊은 사정은 모르고서 단편적인 조각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다, 남 아픈 말은 잘도 뱉어는 사람들. 직접 겪어보지 않고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밀한 사정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지나갈 것을!


그런데 또... 우리에겐 우려하는 일이 또 하나 있지 않나. 장례식의 주인공은 아빠인데 아빠의 죽음을 온통 슬퍼하고 추모하는 자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웬 사족이 이렇게도 많은 걸까.


그런데, 현실이 실로 그러했다. 따지고 보면 가족이지만 제삼자인 나에게도 드는 걱정인 것을. 당사자는 오죽할까. 장례식인가 동시에 '병밍아웃'을 해야 할 자리가 될 수도 있었다.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면, 알리지 않아도 돼.)


아빠의 부고와 더불어 장례식장에서 드러날, 내 가족의 완연한 병색에 아는 척하는 무례함들에... 행여 내 소중한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싶어 하는 말이었다.


슬픔이든, 황망함이든 틀어막고서 발 빠르게 일처리 해야 할 사람은 나뿐이었는데도, 이리저리 마음이 가는 곳들도 많아서 참으로 버웠다.


아픈 게 죄는 아니었지만 파리한 행색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던 아빠는 늘 가족들 바운더리 안에서만 움직여왔기에 지난 몇 년간의 공백에, 부고 알림이 뜬금없지 않을까 싶었고.


또, 아픈 게 죄는 아니었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프게 되어 재활 중인, 나 말고 아빠의 또 다른 아이가, 크다면 클 마지막 인사의 자리에서 상처를 받아 그나마 곧추세워왔던 회복력을 잃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장례식은 부고 알림 문자에서부터, 어렵고도 무거웠다.

경황이 없어서 그런 것도 맞고,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도 많다.

내밀한 사연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고,

나 혼자 결정한 사안들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차라리, 아빠의 뒤에 숨던 작은 아이이고 싶어졌다.


북유럽 사람들은 서로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 않는 여백을 가지고 있어요.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사람이 비호감이다." "좋고 나쁨의 기준이 다를 뿐인데, 어떻게 감히 평가하느냐. "당신 삶이나 잘 살아라"라고 말이죠.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리다.'는 선입견이나 편견에서 벗어나세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리다,

섣부른 판단 어린 말들로, 여태껏 슬픈 마음에

돌 던지고 가지 마세요.


이럴 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아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있고

이것이 옳고 저것은 틀리다는 걸 알아도,

사정이 안되어 속이 문드러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은 응원의 말 한마디만, 부탁드립니다.

아무 말 안 하고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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