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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Sep 18. 2024

임종을 기다리는 딸 vs 시댁 제사를 앞둔 며느리

누군가의 딸, 엄마, 아내, 그리고 며느리


사고사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에 비할 바 아니나. 예견된 죽음이었다 한들, 준비해 왔다고 한들, 슬프지 않은 게 아니었다.     


떨어지는 산소 포화도와 혈압 와 더불어 몸의 긴장도는 한껏 높아졌다. 소위 카운트 다운 전화를 받고 난 이후 극도로 부산스러워지거나 멍해있거나. 아빠의 숨소리가 희미해지고 동공이 풀려가는 동안 나는 양극단을 오갔다. 병원에선 코로나 재유행으로, 긴 면회가 불가하다, 전화를 드릴 테니 기다리시라...'이야기했다.  


수시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걸려오는 전화가 마음이 내려앉기를 여러 번. 일상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맥이 뚝뚝 끊겼다.  그래도 수시로 배는 고프고 입맛은 돌아, 끼니 한번 거르지 않고 잘 챙겨 먹었다. 그리고 멍하게 있는 나를 자각하는 순간, 과거의 온갖 슬픈 기억들을 소환해 훌쩍거리는 나를 발견하는 인지하는 순간. 나를 집안일 속으로 밀어 넣었다.   

 

케케묵은 집안일들까지 꺼내어 사소로이 처리하다, 시댁 제사 준비 '전 부치기' 앞에서 멈췄다.  추석 때에도 준비해야 할 차례에 앞서 집안의 제사가 하나 더 있었다. 여름의 무더위가 한 꺼풀 꺾이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그리고 추석 연휴 장바구니 물가 상승에 대한 뉴스가 연일 이어지면 제사와 추석 준비에 대한 마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매년 제사와 차례, 길지 않은 텀 사이에서 일주일이나 열흘 사이에 육전과 다섯 가지의 전을 살뜰히 준비했다.  

   

그런데, 이번 제사 전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빠의 임종을 앞두고 점점 떨어져 가는 모래시계를 조마조마 바라보다 뒤엎기를 여러 번. 병원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한 지 3일 즈음 지났나... 산소 포화도와 혈압이 떨어지는 시간과 속도를 비례해 계산해 봤을 때 두 날이 겹칠 확률은 90% 이상이었다.     


(네가 지금 무슨 정신이 있어서 전을 부치겠냐. 그냥 재료 갖다 주면 내가 부치마...)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임종 임박 전화 전, 미리 준비해 둔 전 재료를 싸서 갖다 드리면, 제사 당일 오전 어머님께서 전을 부치시겠다는 말씀이었다.


전 외의 다른 제사 음식들을 힘들게 준비하셨을 70대 노모이자, 며느리, 그리고 나에겐 시어머님이 혼자 쭈그리고 앉아 전을 부치시겠지... 잠시 생각하다, 착잡한 마음은 한 곳에 밀어 두고 떨리는 손을 씻었다.


시댁의 며느리로 돌아와 앞치마를 입었다. 반죽을 시작했다. 갈아온 돼지고기에, 당근과 양파를 다져 넣고 두부를 으깼다. 마음의 긴장감이 가시길 바라면서 당근과 양파는 여느 때보다 더 촘촘히 칼로 다졌고 두부의 물기는 면포로 바짝 쥐어짰다. 청주와 간 마늘을 넣으며 돼지고기 잡내와 함께 내 마음의 잡내도 다잡길 바랐다.


이상할 일이었다. 소변줄, 산소줄 등 호스에 의지해 그저 누워있기만 하던 아빠가 차라리 죽음으로 평안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 내가 더 살뜰히 돌봤더라면 아빠의 기력이 이렇게나 떨어졌을까 나를 되돌아보며 지난날 내가 느꼈던 버거움에 대한 미안함. 평생 아버지가 내게 주었던 애정을 반추하며 들던 그리움과 고마움. 그런데 왜 자기 관리 하나를 야무지게 하지 못하고서 저렇게 힘없이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을까 원망.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차례로 내 머릿속을 오갔다. 무슨 정신에 전을 부치겠냐는 어머님의 걱정이 그제야 이해됐다.      


전을 부치는 와중, 뒤늦게 깻잎이 없다는 걸 깨닫고 마트에 가 깻잎을 샀다. 중국산 표고버섯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중국산이라는 단어 앞에 버섯을 내려놓았다. 마트에서 돌아가는 길에, 동네 엄마 중 유일하게 친구라고 부를만한 K를 만났다. 맨손으로 들고 가던 깻잎과 새송이 버섯을 보고 혀를 끌끌 찼다.  

  

(결국 전 부치는 거야? 그렇게까지 하지 말아... 아버지 돌아가시는 마당에 무슨 전이야.)     


K 역시 암 투병 중인 친정아버지의 요양병원을 오가는 딸이자, 시댁 제사를 모두 도맡아 하는 며느리였다. 그런 그녀가 나의 '전' 준비를 걱정하다니. 물론 날은 날이었다.


가까스로 전을 부치고 전이 식어가는 동안 차에서 아이들 가방을 안 내렸지... 싶어 뒤늦게 주차장에 다녀왔다. 설거지까지 정리를 마치고 나니 그제야 남편이 퇴근 후 회식 일정을 마치고 비틀비틀 돌아왔다. 이나 자야지.


아침부터 일어나 평소보다 많은 집안일들 속에 몰아넣고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아이들 하교에 이어 학원 행까지 부산스럽게 다녔지만 몸은 무거웠을지언정 잠 속에서도 푹 가라앉지 했다.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 날이 밝았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제사 전을 가져다 드리러 시댁에 가려고 보니 차 키가 없다. 온 집을 다 뒤져보아도 없던 차 키를 간밤에 아이 가방에 넣어버린 걸까. 부랴부랴 중간놀이 시간을 틈타 아이의 학교로 달려갔다. 아이들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가 경쾌하던 학교 교정을 부산스럽게 걸었다. 그리고 머릿속에선 담임 선생님께 '뭐라고 해야 할까.' 핑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 가방에 차키를 두고 차키 찾으러 학교에 온 정신없는 엄마이지만... 또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 모양이었다.    


(시댁 제사를 준비해야 했는데... 친정 아빠 임종 전화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친정 아빠 임종 전화를 기다리는 중에, 시댁 제사를 준비느라...

어쨌거나 제가 정신이 없어서... 차키를 아이 가방에 두고 학교에 보냈나 봐요.)  

    

우왕좌왕 말이 길 던 문장들을 되뇌다, 마음속으로 웅얼거린 기나긴 항변을 풀어낼 겨를도 없이, 서로 멋쩍게 웃으며 차키를 받아 들었다.     


시댁에 들러 전을 건네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시어머님께서 밥 한 술 뜨고 가라 하셨지만 거절했다. 밥 위에 눈물을 후둑 거리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그 후 한두 시간 즈음 지났을까.  임종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왔다.   


폐암으로 시작해서, 뇌종양 - 뇌수막염 - 뇌출혈을 겪고 안면마비 증세까지 왔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근 10년간의 투병 끝에.


I used to be mad but now I know
You just try your best
The older I get
It just hadn't hit me yet
Sometimes it's better to let someone go

많은 화를 냈었지만 이제는 알겠어.
넌 그냥 최선을 다했어
나이가 들수록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야
때로는 놓아주는 게 나을 때도 있다는 걸.

https://youtu.be/c1wp5EEoXtc?si=c7nIiDiUsYovCq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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