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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여희 Sep 27. 2024

ENFP가 어때서, 파국 행을 거부합니다.

프롤로그

친정 모임에서 7인의 사람들이 각각의 MBTI유형 결과를 공유했다. 세 자매이건만, 자매라고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성향. 모녀 관계이건만,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한 이불 덮고 같이 자는 사이로,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남편과 나는 철저히 다른 성향인 것으로 나왔다. 딸과 엄마 사이, 자매지간, 남편과 아내라는 서로의 관계망 속에 성향이 완벽하게 같거나 비슷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런데 막상 심심풀이 삼아 MBTI성향 검사를 해보았더니 나는 우리 가족 모든 이들과 '파국'이었다.


파국破局 ; 일이나 사태가 잘못되어 결딴이 남.




재미 삼아한 것이지만 나를 중심으로 한 관계 모두 '파국'이라는 빨간 글씨가 나온 결과에 기쁘진 않았다. 심히 당황스러웠다. 가족끼리도 결과가 이쯤 되면 사회에서의 나는 '사회부적응자' 즈음돼야 하는 걸까.

 

결과에 승복할 수 없었지만 암묵적으로 MBTI 과몰입현상처럼 'ENFP형이니 이러이러하다', 나라는 사람이 규정지어졌다. 그 부연설명엔, '즉흥적', '어리바리', '감정적'이라는 단어가 따랐다.


MBTI검사를 통해 나온 성격 유형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다양한 상황적 요인에 의해 변동될 가능성도 높아 타당도가 떨어지는 면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각각 '범주적 사고'로 인해 단순화, 구조화 작업의 일환으로 사람들마저 '유형화'하려는 경향이 있단다.


하지만 나는 MBTI 유형검사를 통해 '내가 ENFP'입니다 내 정체성을 온통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나는 집에서 머무는 것을 좋아하고 낯선 이들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내향형이라기보다 사람들과 두루두루 금방 친해지는 성향, 집도 좋지만 밖에서의 시간도 좋아하는 외향형에 가깝다.


그렇다고 상황을 주도하고 분위기를 업시키는 외향형은 아니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를 이야기하는 시간도 좋아하지만 적당한 추임새를 넣고 공감하는, 듣기의 시간도 좋아다.


비트 있는 클럽음악을 듣기 좋아하고, 둠칫둠칫 리듬을 타는 요란한 시간도 즐기지만 혼자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고요한 시간도 좋아한다.



나는 매사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고 현실적인 감각형이라기보다 때로 두루뭉술하게 나만의 방식으로 이상적으로 해석하기도 하는 직관형이다.


일과 목표, 효율성을 중시하지만, 매번 어떻게 목표 지향적으로 살까 싶고, 효율성을 따질까 싶다. 감정적으로 공감해 주고 대인관계 속에서의 화합을 지향하는 걸 선호한다.


명확한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계획을 중시하는 타입이라기보다 대략적인 큰 틀의 계획 안에서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선택한다. Pop-up issue의 상황에 '계획이 틀어졌다'라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융통성 있게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편이다



굳이 MBTI유형검사가 아니더라도 첫인상만 보고 '차가운 도시 여자'일 것 같았다고 에둘러 말씀하시거나, '빈틈없어 보여서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대놓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차가워 보인다'가 곧 '냉철하고 지적으로 보인다'라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도시적''라는 어감에서 '세련됨'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달리, 허술하고 어리바리함 그 자체라 스스로 속상하고 불편할 때가 많았다. 하여 첫인상만큼이나 빈틈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할 때가 있었으나 이내 들키고 마는 '빈틈'이다.


나의 '빈틈'으로 인해 생겼던 에피소드들을 고백해 본다. 그리고 '어리바리함'으로 인해 '즉흥적이었던, 우리 가족들 성향이라면 속 터질지 모르는 에피소드들을 부끄럽게 끄집어낸다.


허술하면 어떠랴. 빈틈 많으면 많은 대로, 여백의 미를 즐기고 애써 채우며 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있는 그대로의 허당끼로, ENFP의 면모대로, 사뭇 진지해 보이나 진지하지 않은 채로, 감정적으로, 즉흥적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다.


노력하지 않겠다. 노력해도 완벽할 리 없을 테니.



이 이야기 끝에, 정말 ENFP, 모든 이들과 '파국'의 관계로 끝맺을 성향인 건지, 두고 볼 일이다.


나라는 사람을 단정 짓고 규정하며 '이래야 한다', '이랬어야 한다' 말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감히 단정 지을 수 있나요?

'마땅히 이래야 한다' 말할 수 있나요.


하지만 파국으로 끝날 수는 없으니 저도 제 자신을 좀 돌아보겠습니다. 불혹不惑. 잘못된 것에 흔들리지 않고 미혹되지 않는 나이. 경험을 통해 쌓은 확신을 바탕으로  스스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매진하는 나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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