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혼해도 될까_ 갑자기 슈퍼 T 된 딸

세상의 모든 딸들

엄마가 언젠가 우리에게 '이혼해도 될까.' 물었던 적이 있었다. 내 기억으론 아마 내가 고등학생 때였을 것 같은데... 그때의 내 대답은 당돌하기 그지없었다.

"엄마, 우리 집에 딸만 셋인데...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면

나중에 우리 결혼할 때, 우리가 힘들 것 같아.'

엄밀히 말하자면, 그 문장에서의 '우리가'에서 우리는 비단 세 자매들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세 자매들이 받을 정서적 타격감을 우려하던 게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고등학생이었어도 '비혼주의자'는 명확히 아니었나 보다. '미래, 우리의 결혼'에 '부모의 이혼'이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이었다.

요새 이혼은 흠이 아니라 결혼 생활 중 내리는 중대한 선택사항 중 하나이지만 그때의 나는, 미래 시부모뿐만 아니라 사회의 편견마저 걱정한 모양이다.

객관성과 합리성에 초점을 둔 사고형의 고등학생이라니. 이때만은 공감 대신 현실에 중점을 둔 감각형, 판단형이었다니.  

그때의 나는, 아주 잠깐 ESTJ형이었나.

이렇게도 이성적, 현실적, 미래 지향적이었나.

발칙하고 당돌하기 그지없다.

대략 미루어 짐작해 보는 엄마의 결혼생활이었으면서도 "공감"의 말이 아닌 나름의 분석과 판단이 곁들여진 조언이 나왔으니 말이다.

"만약 당신이 이러이러한다면, 이러저러할 것이다."

가정법으로 시작하였지만 다분히 협박 어조까지 어려있었던 답변이었다.

내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엄마는 이혼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결혼 생활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늘 최선을 다했다.

나는 강인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았지만 아기를 낳고 보니 이제는 더 이상 비참해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이제는 울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가 내 곁에 있는 이상은 이제는 눈물을 흘리는 연약한 모습은 절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 보고 산다." 일념 하나로 살았을지언정 말이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의 감정은 거두고 눈물마저 바싹 말려버렸을까.

문득 8세 된 딸이 종종 써주는 쪽지들이 생각났다.

"야난, 너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되겠지,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국엔 이 세상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엄마, 엄마 허리 아프고 힘들 텐데도

우리 돌봐줘서 고마워요."

색색의 사인펜으로 공들여 쓴

몇 자 안 담긴 귀여운 메모들에

힘을 내고 눈시울을 붉히던 때가 많았다.

용기를 잘 내는 약
울려는 기분이 사라지는 약
기분이 좋아지는 약
구름처럼 마음이 따뜻한 약

나 또한 어머니가 되었지만 이토록 사랑스러운 딸이

때때로 내 마음을 어루만져준다는 것에,

작은 몸으로도 큰 온기를 자주 나누어준다는 것에,

나는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엄마, 엄마도 힘들지?"

엄마의 고충을, 슬픔을, 외로움을 헤아리지는

못할지언정 왜 살뜰하게 쪽지 하나 쓸 줄 모르는 감성이었을까.

<세상의 모든 딸들>에 나오는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문구에 밑줄만 칠 줄 알았지, "너 참 엄마 닮았다."라는 말에 나는 왜 싫은 기색을 숨기지 못했을까.

멀리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딸은, 엄마 닮았다는 소리 싫어해요."

난 참 못난 딸이었다.

그리고 못된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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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뽀뽀와 포옹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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