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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티바람 Mar 19. 2024

택배야 미안해

15일 차


아무 생각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처진 내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뭘 해볼까 하다가 그 전 부터 궁금했던

쿠팡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


사실 신청하고 출근하기 30분 전까지

계속 고민하고 스스로와 싸웠다.


야간에 8시간 동안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분류, 적재, 반품 등을 다 해야 되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굳이 내 몸을 혹사시킬 필요가 있을까?

그 돈 없어도 삶에 지장이 없는데?

운동하고 푹 자는 게 낫지 않나?


밀려드는 자기 합리화와

눈 앞에 펼쳐진 이부자리


여자친구한테 호기롭게

까짓 거 한 번 해보고 올게!라고 말했던

스스로한테 부끄럽지 않고자

그 회사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내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기여코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우여곡절 끝에 수컷냄새 물씬 나는

사내들과 뒤섞여 달이 뜰 때 땀 흘리고

남들 출근길에 퇴근하는,

노동의 쓴맛을 경험하고 왔다.


내가 거의 젊은 축에 속했다.

쉽게 돈 벌 생각하면 안되겠구나.


택배야 미안해.

네가 미워서 던진 게 아니라

네가 너무 많아서,

너의 빈자리가 없어서 그랬어.


택배야 고마워

그 와중에 무사히 우리 집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어 줘서.


이 글은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밥 먹을 때 빼고는 오늘 12시간째 누워서

가만히 산송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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