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봄날 시편

(점심 단상) 1월의 마지막 날 점심 산책

by 봄부신 날

2024년 1월의 마지막 날이다.

갑자기 훅 달려오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직 2월을 맞이할 준비를 못했는데

내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왔다.

사진을 찍고 떠오르는 생각을 버리기 아까워 조금씩 메모했다.

그러면서 풍경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떠오르는 생각을 주으며

기록한 점심 단상이다.


요나단_사진_20240131_1.jpg


꽁꽁 얼었던 논바닥이 다 녹았다.

소똥 거름 냄새가 코를 뚫고 들어온다.

폭신해진 논에 봄인 양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는다.

밭 끝자락 커다란 나무에서 까마귀 스무여 마리가 자리 쟁탈전을 벌이는지 시끄럽게 울며 돌아다닌다.



요나단_사진_20240131_2.jpg


높은 하늘 위, 오산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두어 대 까마귀와는 다른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공간을 지배하는 소리다.

소리보다 언제나 비행기는 앞서간다.

이곳은 비행기 때문에 높이 제한 지역이다.

그래서 아파트들은 12층이나 15층을 넘지 못한다.

2월에 이사가는 바로 앞 아파트는 비행기들이 더 가까이 날아간다.

왜 전세값이며 아파트값이 싼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비행기를 찍으려고 하늘을 찍었는데, 비행기가 빠르긴 빠른가 보다.

유령처럼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맑은 하늘만 가득하다.



요나단_사진_20240131_3.jpg



반면 까치는 가깝다. 소리도 살아있다.

까마귀와도 맞장을 뜬다.

무서운 걸 모르는 새다.

그래도 까치는 반갑다.

깍깍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내 왼쪽에 있던 까치 한 마리가 종종 걸음으로 순식간에 나를 가로질러 오른쪽 나무쪽으로 옮겨간다.

다시 하늘을 본다, 오리일까 새 세 마리가 창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간다.

어느 물을 찾아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하면서 다시 사진을 찍어본다. 찾을 수 있으려나.



요나단_사진_20240131_4.jpg


사거리 귀퉁이에 조그맣게 하던 사과나무에도 사과는 다 따내고 없다.

새로운 모종을 심은 것었는지 바닥은 까만 비닐로 덮여있다.


요나단_사진_20240131_5.jpg


논밭을 없애고 아파트를 짓고 길을 크게 만들고 버스정류장도 만들었지만,

2년이 지나도록 이곳에는 버스가 서지 않는다.

언젠 만들어질까.

결국 버스 정류장 제대로 이용해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요나단_사진_20240131_6.jpg


우리집이지만 어쩌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할 집이다.

정남향이어서 햇살이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거실에 들어오는 곳.

새로 이사가는 곳도 주인이 하루종일 햇살이 들어오는 정남향이라고 소개한다.



요나단_사진_20240131_7.jpg


어제 프리랜서 이후 첫 출장을 가게되어 명함집 찾느라 돌아다니다 이사갈 집을 보았다.

정말 햇살이 가득 들어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제 햇살 없인 살지 못할 것 같다.

오늘은 너무 따뜻해서 장갑도 벗고, 목도리도 벗었다.

집에 돌아와서 창문을 열었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새 집에서 오래된 집으로 가는 이사긴 하지만 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

아이들은 입이 비쭉 튀어 나왔다.

할 수 없다.

그게 인생이다.

오늘 인생은 따뜻한 햇살 가득한 봄날이다.



요나단_사진_20240131_9.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통증, 그리고 수술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