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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봄날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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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an 31. 2024

(점심 단상) 1월의 마지막 날 점심 산책

2024년 1월의 마지막 날이다.

갑자기 훅 달려오는 기분이 든다.

나는 아직 2월을 맞이할 준비를 못했는데

내 빈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왔다.

사진을 찍고 떠오르는 생각을 버리기 아까워 조금씩 메모했다.

그러면서 풍경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고, 떠오르는 생각을 주으며

기록한 점심 단상이다.



꽁꽁 얼었던 논바닥이 다 녹았다.

소똥 거름 냄새가 코를 뚫고 들어온다.

폭신해진 논에 봄인 양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는다.

밭 끝자락 커다란 나무에서 까마귀 스무여 마리가 자리 쟁탈전을 벌이는지 시끄럽게 울며 돌아다닌다.




높은 하늘 위, 오산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두어 대 까마귀와는 다른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공간을 지배하는 소리다. 

소리보다 언제나 비행기는 앞서간다. 

이곳은 비행기 때문에 높이 제한 지역이다. 

그래서 아파트들은 12층이나 15층을 넘지 못한다.

 2월에 이사가는 바로 앞 아파트는 비행기들이 더 가까이 날아간다.

 왜 전세값이며 아파트값이 싼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비행기를 찍으려고 하늘을 찍었는데, 비행기가 빠르긴 빠른가 보다. 

유령처럼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맑은 하늘만 가득하다.





반면 까치는 가깝다. 소리도 살아있다. 

까마귀와도 맞장을 뜬다. 

무서운 걸 모르는 새다. 

그래도 까치는 반갑다. 

깍깍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내 왼쪽에 있던 까치 한 마리가 종종 걸음으로 순식간에 나를 가로질러 오른쪽 나무쪽으로 옮겨간다.

다시 하늘을 본다, 오리일까 새 세 마리가 창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간다. 

어느 물을 찾아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하면서 다시 사진을 찍어본다. 찾을 수 있으려나.




사거리 귀퉁이에 조그맣게 하던 사과나무에도 사과는 다 따내고 없다. 

새로운 모종을 심은 것었는지 바닥은 까만 비닐로 덮여있다.



논밭을 없애고 아파트를 짓고 길을 크게 만들고 버스정류장도 만들었지만, 

2년이 지나도록 이곳에는 버스가 서지 않는다. 

언젠 만들어질까. 

결국 버스 정류장 제대로 이용해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우리집이지만 어쩌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할 집이다.

정남향이어서 햇살이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거실에 들어오는 곳.

새로 이사가는 곳도 주인이 하루종일 햇살이 들어오는 정남향이라고 소개한다.




어제 프리랜서 이후 첫 출장을 가게되어 명함집 찾느라 돌아다니다 이사갈 집을 보았다. 

정말 햇살이 가득 들어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제 햇살 없인 살지 못할 것 같다. 

오늘은 너무 따뜻해서 장갑도 벗고, 목도리도 벗었다.

집에 돌아와서 창문을 열었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새 집에서 오래된 집으로 가는 이사긴 하지만 부채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다.

아이들은 입이 비쭉 튀어 나왔다.

할 수 없다.

그게 인생이다.

오늘 인생은 따뜻한 햇살 가득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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