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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Feb 19. 2024

(책꼬리단상) 나와 다른 사람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나와 다른 사람들>


“이 집이 맘에 안 들어.” H에게 말했다.
“너무 커.”

  우리는 집 뒤편에 있는 좀더 작은 침실로 방을 옮겼다. 내가 밤에 잠을 청하기 위해 빗소리를 틀어놓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다른 소리들이 그 소리를 집어삼켰다. 벽을 통해 이웃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고, 바깥에 도사리는 무질서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아침 H와 집에서 나와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브리태니커 조류백과를 읽고 또 읽어서 나중에는 거기 나오는 새들 중에서 심박수가 빠르고 민첩한 어느 새가 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집에 가기 싫었다. 갈 수 없었다. 집에 갈 생각만 해도 공황에 빠져 가슴이 벌렁거렸다.

나는 매우 값비싼 잘못된 결정을 내린 것이었고, 해결책도 없었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참 아름다운 집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지만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 캐서린 메이 저/이유진 역)



저도 곧 이사를 갑니다.
여기 거실에서 보면 이사갈 곳이 보이는 수준의 가까운 거리의 아파트입니다.

신축아파트에 들어온 지 2년 만에 너무 좋은 아파트를 내려놓고 20년도 더 지난 오래된 아파트로 갑니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한번 신축 아파트에 맛을 들이면 구축 아파트에서는 못 산다고 하던데. 우리는 금방 또 적응하겠죠.

어제 그제는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근처 공원까지 걸어가보았습니다.
도서관도 근처에 있었습니다.
이사가는 아파트에서 훨씬 더 공원가기가 편합니다.



이제는 지하주차장에서 아파트로 바로 연결되지도 않고, 칙칙한 갈색 창틀에다, 식탁 놓을 자리며, 김치냉장고 자리도 어렵고, 책장도 다 들어갈지 고민이 되는 상황입니다.

이삿짐 센터에서 다 알아서 해준다고 하지만, 같이 가져갈 수 없는 책이 너무 많아져서 아침부터 책 정리 하느라 벌써 허리가 아픕니다.



오늘 책에 나오는 여주인공은 아스퍼거스 증후군, 자폐 스펙트럼을 앓고 있는 여성입니다.

결혼한 파트너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자기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고 접촉하면 불편을 느끼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 나오고 했지만 그것을 그저 자신 의 결함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과는 어울릴 수 없는 부족한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아차렸고, 그래서 최대한 그녀를 존중하며 그녀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사를 했는데, 좋을 줄 알았는데, 그녀에게 공황이 찾아올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더 넓은 집으로 갔으니 좋겠다고 입을 모아 칭찬을 하지만, 그녀는 집에 가는 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이사 일정이 조금 남아서 집 주인이 도배도 해주고 이곳저곳 손봐준다며, 10년 정도 사용한 블라인드 사용 여부를 묻길래 한번 보고 결정하겠다고 찾아갔습니다.

 두 분이 일하시는 분이 벽지를 뜯어내고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란다 확장을 했지만 사진에서처럼 기둥이 튀어 나와 있어서, 지금의 책장과 스피커가 다 들어가지 않습니다.

책을 읽다가, '공황'이라는 단어만 발견하면 감정이입이 됩니다. 그녀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지는 마음, 공황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그 마음이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는 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죽기보다 더 싫었습니다. 천천히 걸었고 밤 늦게 들어가 부모님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 집은, 내 가정은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얼른 가족을 만나고 싶고 하루종일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제 처음으로, 아침부터 오후까지 가슴 답답하던 증상이 처음으로 사라졌습니다. 걸을 때도 가슴 압박 없이 잘 걸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 아침에는 비상약을 하나 먹었지만,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비 내리는 아침입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시고, 나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이상하다 생각하기보다, 저 사람에게는 나와 다른 어떤 아픔이 있을 수 있구나,를 먼저 생각하는 우리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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