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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부신 날 Jul 24. 2024

(숲속의 빨간신호등) 17. 찾아낸 빨간 신호등

환경생태동화

날이 밝았습니다. 해님은 하늘 높이 솟아올랐지만 동물들은 집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리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침을 먹고 싶었지만 이제는 먹을 만한 음식이 없었습니다. 바위 옆에 쪼그려 앉은 리초는 점심이 지나도록 그러고 있었습니다. 어제 다친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밤새도록 간호한 따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아물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밤새 간호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새벽녘에 잠이 든 따오를 엄마처럼 포근하게 감싸 주었습니다.

“해님아, 해님아.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니?” 


리초는 실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해님을 쳐다보았습니다. 

"……."


“하긴 입도 없는데 해님이 내게 뭐라 말할 수는 없겠지.” 

리초는 이내 눈을 감았습니다.      


“리초야, 리초야. 어서 일어나 봐.” 

따스한 햇살에 잠깐 잠이 들었나 봅니다. 리초는 무거워진 눈을 가까스로 떠 올렸습니다.


“누구세요?” 

리초 옆으로 구구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내려앉았습니다.


“큰일났어. 어서 일어나 봐. 따오도 깨우고.” 

“왜요?”

리초는 계속 웅크린 채 누워 있었습니다.


“여우 싸리가 올리 할아버지에게 횡포를 부리고 있어.” 

“뭐라구요?” 

리초는 벌떡 일어섰지만 다리가 아파 이내 다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큰일이네. 그럼 어떡하면 좋아요?”

리초는 두 눈을 감은 채 물었습니다.


“어서 가 보자구. 벌써 해가 다 지고 있잖아.” 

“해가 지고 있다고요?” 

리초는 감긴 눈을 억지로 떴습니다.

“어? 해님이 나를 보고 웃고 있네?” 

리초가 엎드린 채로 말했습니다.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야. 어서 일어나라구!” 

구구는 답답한지 푸드득 날아올랐습니다.   

  

"아, 저거. 바로 저거야!"

리초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발목이 아픈 것도 잊어버린 듯했습니다.


"커다랗고, 둥글고, 빨갛고, 바로 저거예요. 빨간 해님을 이용하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빨간 해님이 신호등이 되는 거예요! 해님처럼 큰 신호등을 못 보는 괴물은 없을 거예요! 야호!"

리초가 아픈 다리로 절룩거리며 빙빙 주위를 돌았습니다.


“해님 신호등이라구?” 

따오도 벌떡 일어났습니다. 구구는 이해가 안 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내가 누웠던 자리에 가서 해님을 쳐다보세요."

리초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구구는 리초 자리에 누워 해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해님은 어느새 빨갛게 변해 있었고, 옆으로 살짝 휘어진 나뭇가지에 신호등처럼 걸려있었습니다. 


“어쩜. 내가 사람 사는 곳에서 본 신호등보다 더 크고 붉은 신호등이야.” 

구구가 소리쳤습니다.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 해. 해가 지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구!” 

구구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리초와 따오도 올리 할아버지 집으로 뛰었습니다. 할아버지 집에 다다르자 어느새 동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싸리가 올리 할아버지 앞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괴물과 한 판 싸워야 할 게 아니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두 번이나 실패했으면 약속을 지켜야지. 아직도 생각을 해 보자고요?"

싸리는 올리 할아버지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습니다. 날카로운 이빨이 햇빛에 쨍하고 반짝거렸습니다. 여우의 못된 성질을 알기에 누구도 감히 나서 말릴 생각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구구가 급하게 내려앉았습니다.

“이젠 됐어요. 리초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구요. 해님을 빨간 신호등으로 사용하는 거예요. 이번엔 정말 잘 될 것 같아요.” 


“뭐라구? 해님 신호등이라구? 이제는 아예 미친 소리를 지껄이고 있군.” 

싸리가 더욱 흥분해서 소리를 쳤습니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해님을 신호등으로 생각할 것 같아?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 아무리 용을 써도 해님은 해님이야. 해님이 신호등이 될 순 없다구!"

싸리의 목에서 푸른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습니다. 꼬리는 바짝 세워져 있었고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여우의 소란에 잠을 깬 부들 박사가 날아왔습니다.


"어른 앞에서 이게 무슨 행패야! 도저히 봐 줄 수가 없군. 자네는 더 이상 우리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게 좋겠어. 우리는 우리 식대로 신호등을 만들고 저쪽 산으로 건너 갈 테니까."

부들 박사가 싸리를 쏘아보았습니다.


"그래, 죽으려고 용을 쓰는 데 내가 괜히 끼어들 필요가 없지. 잘들 해 보라구. 다 죽고 나서 나를 원망하지 말고."

싸리는 꼬리를 휑하니 흔들며 가족과 함께 돌아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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