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오베가 소냐를 그리워한 것처럼 오베를 그리워하며>
한줄평 : 죽음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는 삶과 죽음의 위대함을 노래한 책
그리그가 편곡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피아노 버전으로 들으며 읽었다. 이번이 내가 <오베라는 남자>를 세 번째 읽는 거였다. 세 번째 읽을 즈음이면 식상하고 지루하고 그냥 설렁설렁 건너뛸 법한 데도, 나는 한장한장 세심하게 읽고 그를 사색했다. 그의 모든 행동거지에 들어있는 삶에 대한 무게를 가늠하느라 나는 쉬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오베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고, 한 가지 원칙과 기준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는 원칙주의자로 보이지만, 그 모든 내면에는 사랑이 있었다.
이야기는 마치 코믹한 드라마처럼 꾸며져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베를 응원했고, 마침내 그가 눈을 감았을 때에는 내 눈에 눈물방울이 맺혀 있음을 깨달았다. 오직 피아노만으로도 오케스트라의 모든 느낌을 표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피아니스트처럼, 오베는 자신의 삶을 한 가지 색으로, 사랑하며 살았다. 한 가지로만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 모든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실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오베에게 박수를 보내고 응원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아내 소냐를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이해한다면, 그가 왜 그렇게 못 죽어서 안달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 심지어는 고양이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하루 더 뒤로 미루는지 이해할 것이다. 오베는 그런 사람이다.
오베는 어린아이 같다.
단순하고 직진 성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온갖 유형의 이웃이 끼어들고 참견하고 명령하는 통에, 정작 자신의 시간, 그러니까 먼저 하늘 나라로 간 아내, 소냐의 뒤를 따르려는 자신의 계획이 무참히 박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 전개가 마치 피아노로 운명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과 닮았다.
다른 악기는 전혀 없고 오직 피아노로만 전달되는 운명.
그것이 새로운 운명이라면 예, 아니오만 있는 삶, 옳고 그른 것만 있는 흑백의 삶에서 타인의 광기로 빠져나오는 것도 나아보인다.
세 번째 읽으니,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오베의 마음이 더 진하게 전해져온다. 책 마지막 거의 끝날 무렵까지 그는 오직 자살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실행한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그냥 죽게 놔두지 않았다. 오늘만 죽기에 좋은 날인가. 내일도 충분히 죽기에 좋은 날이다. 코믹한 설정처럼 보이는 온갖 장치들도 오베의 마음을 꺾지 못한다. 방 한 가운데 천장에 매단 로프로, 차고에서 아끼는 자동차 사브의 배기가스로, 그마저 이웃의 본의 아닌 방해로 실패하자, 끝내 전동차에 뛰어들기로 지치지 않고 죽기를 시도하는 그를 보고 본다, 마치 진한 에스프레소 두세 잔을 연거푸 마시는 기분이다. 집에 있는 약병을 모두 꺼내 약물로 죽기를 시도하려는 오베를 보면서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이란에서 온 외국인 이웃에게 운전연수를 시작할 때는 아, 이제 죽을 마음을 버렸나보다, 생각했지만 생각지 못한 라이플 권총이 튀어나올 땐 정말이지 이 작가가 왜 이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전에 <오베라는 남자>라는 책을 읽을 때는 이렇게 죽음이 큰 서사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야 나는 작가가 책을 통해 오베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줄기차게 아내 소냐가 간 하늘나라에 가기만을 염원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훼방하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아내 소냐라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거라고 자신에게 변명한다. 소냐가 있었다면 당연히 배기가스가 가득찬 자동차지만 다친 이웃을 병원에 데려다 주었을 것이고, 갑자기 발작이 나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했을 것이고, 겨울에 얼어죽어가는 고양이를 살려냈을 거라고. 소냐라면 분명히 그렇게 하는 걸 좋아했을 거라고 오베는 생각하고, 자신의 날을 하루 더 연장한다.
"다시 숨이 가빠지는 것 같았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고 싶은 충동과 싸웠다." (218)
격정의 4악장이 혼신의 힘을 다한다. 피아노는 손을 놓고 운명교향곡은 끝이 났다. 잠시 고요가 거실을 점령한다.
"그는 위층에 도착하여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가슴의 통증은 가셨다. ... 그는 딱히 심장이 더 오래 뛰길 원하지도 않았다. 어느 쪽이건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까" (220)
심장의 쥐어짜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오베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리모컨으로 다시 시디플레이어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오직 한 악기. 피아노로 편곡되어 연주되는 베토벤의 교향곡이 다시 거실을 가득 채운다. 마치 오베가 바로 눈 앞에서 자신의 생을 향해, 죽음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인생이 그렇듯이 모든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죽음을 맞이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410쪽)
사랑이라. 오베에게 그런 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베는 오직 아내 소냐 외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소냐가 말한다. 집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모두 새 물건이어서 경탄해 마지 않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벽은 바래고 나무는 결이 갈라지고 쪼개진다고. 그러면 그때부터는 새 물건이어서가 아니라, 집이 불완전해서 사랑하기 시작한다고. 온갖 구석진 곳과 갈라진 틈에 통달해서 발을 디딜 때 어느 바닥 널이 살짝 휘는지 알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고.
내가 오베를 좋아하고 이렇게 세 번씩이나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바로 오베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충직하고 원리원칙을 따지고 융통성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오베지만, 다친 아내를 위해 모든 가구를 낮게 만들고, 출근하는 학교에 직접 경사로를 만들고, 평소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던 그가, 집안에서 이미 사라진 소냐 사진을 보며 시도때도 없이 대화를 하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도 내면은 부드럽고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의 삶이 헝클어졌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을 땐 혼자서 펑펑 우는 사람이다.
"파르바네는 계속 그에게 반박하려 했지만 그는 그냥 문을 닫았다. 그녀가 문을 쾅쾅 두드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현관의 의자에 주저앉아 자기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심장이 정말로 세게 뛰는 바람에 귀가 폭발할 것 같았다. 마치 거대한 어둠이 숨통을 걷어차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의 압박이 20분 넘도록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베는 울기 시작했다." (369쪽)
아직 <오베라는 남자>를 안 읽어본 분이라면 한 번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번 읽어본 분이라면 한 번만 더 오베의 입장에서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두 번 읽어본 사람이라면, 삶과 죽음을 생각하며,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한 번만 더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오베는 그런 사람이다. 내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