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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법]

뫼르소, 살인사건

by 봄부신 날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법]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들은 서로를 어떻게 견디는가?

인간은 홀로 태어나고 죽을 때도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건 과연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많은 책을 읽어봤지만

사랑은 타협이지 결코 미스터리는 아닌 것 같아.


(뫼르소, 살인 사건 : 카뮈의 《이방인》,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 카멜 다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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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보는 텔레비전 방송 중에 즐겨보는 것이 하나 있는데 <이혼 숙려 캠프>다.


서로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다. 사랑하지만 사랑은 자기 방법으로, 자기 중심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서로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비켜나고 엇갈린다. 마음은 갈가리 찢기고 생채기가 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아차릴 수가 없다. 사랑은 점점 미스터리가 된다.


나는 사랑하는 널 위해 모든 걸 내버리고 네 고향에 와서 네 꿈을 이루기 위해 내 모든 걸 쏟고 있어. 하루에 네 시간 겨우 자고 일하고 다니니 너무 피곤해. 내 에너지며 감정은 모두 바닥 났는데, 넌 네 감정을 공감해 달라고 하고, 그게 안 된다고 이혼하자고 해.


당신은 오로지 일만 생각하고, 나를 바라봐주지 않아. 나는 나를 공감해주길 바래. 감정을 나누고 대화를 하고 싶어. 그런데 당신은 단답형 로봇 같아. 당신과 대화가 안 돼. 이렇게 살 순 없어.


이런 부부에게 심리상담사가 붙고, 정신건강 사회복지사가 붙는다. 다양한 심리검사를 통해 쓴뿌리와 내면아이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동안 꽁꽁 숨겨져 있던 트라우마를 끝내 끄집어낸다. 그러면 이해가 쉬워진다. 자아를 발견한 그는 눈물을 흘리다. 그동안 무의식 속에서 자기를 가스라이팅하던 내면아이를 조우한다. 드라마 심리치료를 통해 그 껍질을 벗겨낸다. 드디어 어른으로 되돌아온다.


사랑은 미스터리처럼 보이지만 미스터리가 아니다. 까뮈의 <이방인>에서 어이없이 죽은 아랍인 무싸의 남동생 시선으로 쓰여진 이 책에서 저자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사랑에 대해 '미스터리'보다는 '타협'에 가깝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타협'이라는 표현이 영 거슬린다. 혹시 잘못 번역된 단어는 아닐까 하는 의심도 품어본다. 사랑이 타협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사랑이 미스터리가 아닌 것에는 동의하지만, 사랑이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내와 나는 올해로 결혼 30주년을 맞는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한 번도 싸우거나 다투지 않고 30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대화 중에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들었을 땐, 다음날 다시 대화를 나누며 끝내 풀고 만다. 얼굴 보고 얘기하기가 쑥쓰러우면 카톡으로 진솔한 대화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퇴근할 때 서로를 안아주며 오늘 하루 고생했다고 토닥여 줄 수 있다. 힘들지 않은 날이 어디 없었을까. 고부간에 마음 상하는 일이 왜 없었을까. 파산 직전에 갔던 때는 또 어떠했는가. 우리는 그래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갱년기가 왔을 땐, 갱년기를 공부하고 이해하기 위해 서로 노력했다. 살짝 식을 순 있겠지만, 사랑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사랑은 타협하는 것이 아니다.

타협은 내 이익과 상대의 이익을 비교해보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사랑은 결코 줄다리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타협이 성공해 서로 적당한 선에서 양보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타협이 성공한 한 번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사랑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어 몇 번의 타협으로 끝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랑은 오히려 미스터리에 가깝다. 어제는 아내와 오산 독산성에 갔다 왔다. 결혼 이후 산이라는 곳을 거의 가보지 않았던 아내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는 것을 힘들어했다. 나는 먼저 올라가 아래서 힘겹게 올라오는 아내 손을 잡아주었다. 손에 힘을 주고 위로 끌어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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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를 견디지 않는다.

사랑은 손을 내밀어 준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죽지만,

죽을 때까지는 혼자가 아니다.

마지막까지 우리는 손을 내밀 수 있다.


사랑은

내 삶의 일부를,

내 시간의 일부를,

내 에너지의 일부를

건네고 넘겨주는 것이다.


내가 나를 소유하지 않는 게 사랑이다.

사랑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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