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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 green Jul 04. 2021

보물찾기

아빠의 서툰 애정 표현법.

  년이나 병원을 오가도 부모님은 길게 우리 집에 머무는 경우가 없었다. 검사를 받으러 와서 결과를 듣고 돌아가는 1 2일이  년간의 루틴이었다.

2019 6.

 5월 입원 후 일주일을 병원에서 지낸 아빠는 남은 방사선 치료를 위해 우리 집에서  달여를 머물러야 했다. 급히 병원에 올라오느라 밀린 일들 다시 집에 내려가야 했던 엄마는 [찮은이] 나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말했다. 물론 매일매일 우리의 안부를(어쩌면 부족한 나에 대한 감시를) 잊지 않으셨다.

 

 아빠와 나의 시간은  때로는 어색하고, 때로는 평화롭고,  때로는 불안했다. 보호자를 자청한 나는 모든 것이 어설펐고, 여전히 아빠는 딸에게 강하고 든든한 모습만을 보이고 싶었다. 불안함과 분노 혹은 절망감   동안 아빠에게 편안했던 시간은 얼마나 되었을까? 불편한 현실과 불편한 장소에서 아빠는 편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꽤나 살가운 딸이었다. 가끔은 마주 손뼉을  번치는 우리만의 인사법을 엄마가 웃으며 질투(?) 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무슨 말을 건네어야 막막하기만 했다. 아빠의 기분을 환기시킬  있는  어떤 것들이라도 필요했다.


산책

운전을 못해 기동성이 없던 나는 아빠에게 그럴싸한 외출을 제안하지 못했다. 답답함을 못 견디는 아빠는 그래서 가까운 공원과 놀이터로 매일 산책을 나갔고 나는  산책에 자주 동행했다. 하루는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이미 아빠는 침실과 거실까지 청소기돌려놓고 산책에 나섰다. 나는 부랴부랴 아빠를 찾아 뛰어나갔다. 다행히 그가 갈만한 근처 공원은  되지 않았다. 걷는 모습을 보고 단박에 그를 찾았다.

걸음은 체력보다 습관에 가까운 모양이다. 체력이 많이 약해졌어도 등이 팔을 앞뒤로 흔들며 걷는 아빠의 걸음걸이에서 힘이 느껴진다. 걷는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약속이 없는 평일의 산책이란 피곤한 노동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빠와 함께한   달간의 산책 덕분에 가장 아름다운 초록의 변화를 눈으로   있었다.


 산책만으로는  하루를  보낼  없다. 스마트폰을 쓰지 아 인터넷도 하지 않는 아빠는 그렇다고 티비에 빠져 들지도 않았다. 평소에도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가 책장을 둘러보았다. 생텍쥐베리의 야간비행, 시드니 셀던아빠의 취향은 서양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아사다 지로를 포함한 일본 작가와  신경숙, 은희경을 필두로  한국 여류작가의 책들로 가득한 나의 책장은 지극히 동양적이다. 꿈을 꾸는듯한 바나나도, 시니컬한 하루키도 저돌적인 가즈키도어쩐지 아빠에게 권하기가 어렵다.

 

  추천을 기다리지 않고 아빠가 처음 고른 책은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이었다. 어쩌면 제목이 맘에 들었던  같다. 나는 초반부에 살인범이 누구인지 스포를 날려버렸다. 흥미가 떨어진 아빠는 책을 덮고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꺼내 읽으셨다. 아빠의 취향이 일본 소설 쪽과는 전혀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소설을 완독 하셨다.  이후   책은  때마다 아빠를 떠올리게  책이 되어버렸다.


음식

 매일 엄마처럼 맛있는 요리를   없다. 자신 없는 요리를 하는 대신 주변 음식점의 국을 사다 날랐고 쿠팡으로 두부봉을 비롯해 단백질을 보충할만한 간편식을 주문했다.  성의를 생각해 밥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방사선 치료 후유증은 꽤나 심해서  식사가 아빠에겐 부담스러웠던  같다. 힘겹게 한술 한술 뜨는 모습에  건강한 식도락가였던 아빠가 겹쳐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다.


 남기지 않으려 국에  밥을 입으로 밀어 넣던 아빠가   자리에서 음식을  게워낸 적이 있다. 당황아빠는 토사물을 급히 손으로 쓸어 담았다. 절대 나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일 텐데

“아이고… 다 먹어볼랬는데 이리 바닥이 더러워짔다. 이걸 우짜노 … 미안하다이~”

“아빠, 내가 치우면 되지~ 더러운 거 아이고 그냥 아픈 거잖아~ 방사선 치료하면 다 그렇대.  괜찮아 괜찮으니까 들어가 있으이소”

나는 아빠가 나를   의지했으면 했다. 우리 집에서 눈치 보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하지만 그나마의  눈치가 아빠의 남은 자존심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후 병원을 통해 처방받은 항구토제와 식욕촉진제가  문제는 조금 해결해주었다. 아빠가 음식을 그나마라도 먹게 되자 나는 점점 쿠팡 단골이 되었고, 추어탕과 곰탕  동네 맛집을 자연스럽게 섭렵하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우리들은 어색함에서 벗어났다. 아빠가 평소와 같이 농담을 받아주지 않았거나 노래를 부르지 않았거나 또는 평정을 연기해주지 않았더라면 함께한 시간들을 “다행”이라 여길 수 없었을 것이다.


가까이 공원이 많아서, 또 스포를 날릴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이 접점은 생각하지 못했었지만) 책들이 책장에 가득 있어서, 국을 사 올 수 있는 음식점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접근금지구역

 그렇게 한 달여를 우리 집에 머무르면서도 아빠는 컴퓨터가 있는 내 작업실에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 다시 집으로 내려가기로 한 날. 한 번도 들어가지 않던 작업실 문 앞을 서성이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빠는 어색하게 내 눈을 피했다. 왜??

며칠 뒤 아빠가 그 앞을 서성인 이유를 뒤늦게 발견했다. 키보드 아래에 숨겨져 있던 5만 원권 두장... 그동안 고생했다며 이미 엄마가 내게 돈을 30만 원이나 쥐어주고 간 뒤였다.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이게 뭐야~~ 나  지금 발견했네??”

“어어. 나중에 얘기하자 뚝~”

내 감사를 다 듣기도 전에 함께 있던 엄마에게 들킬까, 어쩌면 쑥스러워 전화를 황급히 끊는 아빠 모습이 그대로 상상됐다. 며칠 전 어색하게 내 눈을 피하던 모습도...

뭐라도 조금 더 표현하고 싶지만... 아빠는 다정한 말이 서툴다. (보물 찾기처럼 숨겨진 용돈을 나는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찾았다. 때로는 베개 아래에 있기도 했고 화장대 위에 올려져 있기도 했다.)

조금은 간지럽고 사랑스러운 아빠만의 표현법에 나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 났다.


아빠 고마워요... 근데 버릇되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거봐. 나 지금도 그 보물 찾기가 그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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