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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힐링 워크숍의 함정

자존감, 자기자비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 = 힐링?


심리학이 힐링의 대명사가 된 지 꽤 오래다. 당장 서점에 가서 심리학 코너를 가보면 온갖 기분 좋은 말을 들려주는 책들이 가득하다. '충분히 잘하고 있어', '좀 못하면 어때', '누가 뭐래도 넌 소중해',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타인과 비교하지 마',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어루만져 줘', '자신을 비난하면 안 돼' 제목만 다를 뿐 대체로 이런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워크숍이라고 다를까? 긍정 워크숍에 가면 꼭 이런 거 시킨다.



자, 여러분 목소리 크게 따라해 봅시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최고다!!'



상당수의 힐링 심리학 책, 비전공자의 워크숍들은 자아존중감self-esteem, 자기자비self-compassion, 자기효능감self-efficacy 등의 유명한 학술 개념을 빌려 오고 있다. 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존감/자기자비/자기효능감 등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더 삶의 만족도도 높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세요', '무조건 자신을 용서하고 받아들이세요',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하고 당당히 속삭일 수 있는 이유 말이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



필자는 무조건적으로 자기 긍정만 전파하는 사람을 경계한다. 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서다. 건강한 자존감 대신 손상된 자존감을 얻게 될 수도 있다. 자기에게 들어오는 모든 비판을 거부한 채 자신만이 옳다고 믿으며 타인을 얕잡아보는 자기애narcissism 성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성장과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주지하듯, 때로는 쓴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반성하고 고찰하며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사실 많은 힐링 심리학 책, 비전공자의 워크숍들은 결과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자아존중감/자기자비/자기효능감 이런 개념들이 긍정적인 측면과 연관이 있다는 것에만 주목할 뿐,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를 고찰하지 않는다. 자아존중감이 높은 사람들은 어쨌길래? 자기 자비를 실천하면 어째서 우리 삶이 나아지는가? 그것도 부작용에 빠지지 않은 채. 제대로 된 심리학 교양서적이라면 바로 이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



결국 문제는 방법이다.

일찍이 심리학계를 휩쓴 유명한 난제 하나가 있었다. 이른바 긍정적 환상positive illusion에 관한 것으로, 자기 자신을 객관적(중립적)으로 인식하는 것, 혹은 약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느냐는 논쟁이었다.


'객관파'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쨌든 왜곡은 옳지 않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은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게 만들어 실패 가능성을 높인다. 자신의 현재 장점이나 단점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현실적인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자아실현에 유리하다'.


반면 '긍정왜곡파'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지나친 왜곡은 해로울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적당히 긍정적인 자기 환상은 행복감을 갖거나 우울 증상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사람들이 결국 더 과감히 행동하고, 더 나은 성취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


이를 연애 상황에 대입해서 생각해 보자. '객관파'는 다음과 같이 조언할 것이다. '현재 너의 조건들을 냉정하게 진단해 봐. 단점을 마주 보고, 합리적인 개선 방향을 모색해야 진짜 발전이 일어나는 거야'. 반면 '긍정왜곡파'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것이다. '야, 네가 뭐가 어때서. 내가 보기엔 넌 충분히 멋지고 훌륭해. 무조건 자신감이야. 그냥 고백해. 용기 있는 자만이 원하는 것을 얻는 법이야'



'객관파'와 '긍정왜곡파', 어느 쪽이 이겼을까?



안타깝게도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진실'은 두 주장 사이 어딘가에 위치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논쟁이 촉발된 지 얼마 안 된 시점, 유명한 심리학자 바우마이스터Baumeister가 그의 논문에서 먼저 그런 통찰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른바 'The Optimal Margin of Illusion'이다.


The Optimal Margin of Illusion((자기)환상의 최적 균형점)(그림출처: 직접 그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정리하자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자기 인식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냉정히 현실을 파악하고 보다 합리적인 발전 방향을 궁리하는 태도 역시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심리학들이 우려했던, 지나치게 왜곡된 자의식에 빠져 일과 대인관계를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긍정과 현실 파악은 함께 가야 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믿어주고 용서하고 응원해 주되, 그렇게 해도 되는 현실의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가령, 자존감의 원천은 '오냐오냐', 즉 무조건적인 자기 긍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여러분들이 그동안 이뤄왔던 크고 작은 성취들, 주변에서 여러분을 칭찬하고 인정해 줄 수 있는 소중한 지인들(이를 자존감 네트워크 라고 한다)이 받쳐줘야, 자존감 → 행복의 연결고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자기자비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그냥 무조건적으로 자기를 다 용서하라는 게 자기자비가 아니다. 자기자비의 의 핵심은 '실패'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아냐, 난 실패하지 않았어. 괜찮아, 괜찮아' 이게 아니라, '나는 지금 실패했구나. 지금 내가 기분이 다운되었구나. 내가 이런이런 실수들을 했구나', '내가 이렇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못했구나', '솔직히 나 지금 스스로를 책망하고 싶어 하는구나' 이런 느낌이다. 자기자비는 실패에 '직면'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는 절차이고, 자기자비를 잘 실천하는 사람들은 이로써 실패의 원인을 진단하고 더 나은 합리적인 방향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요약.

달콤한 말에 현혹되지 말라. 답은 자기 긍정과 현실 파악, 그 사이에 있다. 현실의 끈을 붙잡아라.

* 참고논문: Baumeister, R. F. (1989). The optimal margin of illusion. Journal of Social and Clinical Psychology, 8(2), 176-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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