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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포비아Call Phobia, 내향인

전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팁

전화가 무서워



나는 전화를 많이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강연/기고를 많이 하다 보니 강연 섭외 전화나 원고를 요청하는 전화가 자주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향인으로서 솔직히 전화라는 것은 아무리 걸고 받아도 완벽히 적응되지가 않는다. 늘 긴장되고 어렵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어렸을 때 배달주문을 위해 전화하는 것도 긴장되어서 전화를 망설이곤 했던 나다. 지금은 그나마 낫지만, 예전에 강사/작가 일을 하기 이전에만 해도 내게 걸려 오는 전화의 절반은 고민만 하다 결국 받지 못했다. 왜 전화 안 받느냐는 질책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래도 전화받는 게 더 힘든 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전화 거는 것 vs. 전화 받는 것

여러분은 전화를 거는 것이 어려운가, 받는 것이 어려운가? 개인적으로 꼭 해보고 싶었던 질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전화를 거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예전부터 그랬다. 부모님이 내게, 우리 집안 어르신께 안부 인사 한번 드려라, 할머니 댁에 가기 전에 출발한다고 전화로 알려 드려라, 고모에게 연락드려서 반찬 잘 받았다고 말씀드려라,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어른께 전화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던지.


'어떻게 정중히 말씀을 드리지?', '혹시 늦게/일찍 말했다고 언짢아하시는 것 아닐까', '내가 너무 긴장해서 제대로 말을 다 전달할 수 있을까' 온갖 고민을 안은 채 전화기 앞에서 서성이다 보면 상대의 반응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예측하게 된다. 왠지 뭐라 하실 것 같고, 안 좋은 반응일 것 같아서 괜히 위축된다. 그러다 보면 더 전화를 걸기 어려워진다.


대학원에서도 그랬다. 나는 교수님께 전화를 드리기가 정말 어려웠다(어쩌면 이건 다 공감할 만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전화를 거는 순간 자동으로 몸이 굽신거리고, 속으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리허설을 한다. 어떻게든 전화를 마치고 나면? 그날 할 일 다 한 거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전화라는 건 왜 두려울까?

우리 내향인들에게 전화라는 것은 크나큰 시련이자 도전이다. 아니, 요즘 세상에 문자 메시지도 있고, 이메일도 있고 여러 가지 수단들이 있는데 왜 굳이 전화를 걸고 받으려 하는가! 문자나 이메일을 쓸 때 대화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수월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답변할 수 있어 더 나은 것 같은데, 어째서 외향인들은 전화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인지!



피할 수 없다면 분석해야 한다. 

왜 나는 전화를 두려워할까?

몇 가지 이유들을 생각해 봤다.



1) 상대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화상 통화가 아닌 이상, 전화는 목소리만을 주고받는 행위이다. 당연히 상대의 표정을 알 수 없다. 이는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단점으로 다가온다. 사실 내향인으로서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래도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 내 말을 듣는 상대방이 경청해 주고 웃어주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화에서는? 설사 표정은 웃고 있다고 해도 목소리는 무미건조할 수 있다. 아주 격하게 웃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화자는 청자에게 얼마든지 자신의 기쁜 감정을 숨길 수 있다. 화난 감정도 마찬가지다. 목소리에 화가 묻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화가 났어도 목소리에 잘 티가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만을 가지고는 상대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채기가 힘들다. 내 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 부정적으로 작용했는지 가늠하기가 어렵고 혼란스럽다.



2) 즉흥적으로 답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편지나 이메일은 기록 매체다. 내용을 외울 필요도 없고, 받자마자 답변을 해야 할 필요도 없다. 답변을 작성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정해도 된다. 하지만 전화는 아니다. 상대방이 한 말을 순간적으로 잘 알아듣고 외워야 하고(친한 친구라면 적당히 못 알아들어도 문제없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이 웃어른이라면? 마냥 '잘 못 들었는데요?', '네?' 하기가 어렵다...), 바로 답변을 만들어 내야만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점.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바로 만들어낸 답변이 이미 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면 무르기가 어렵다. '잘못 말했다'고 정정을 해도 이미 상대방은 들어버렸고, 내 이전 답변에 따라 이미 기분이 나빠진 상태일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유독 전화를 할 때는 말실수를 의식하게 된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긴장하느라 우물쭈물하고, 목소리는 자꾸 떨리니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상대가 날 가볍게 보지 않을까 괜히 걱정도 되고 그렇다.




전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나름대로 효과를 본 전략들이 있어서 소개해볼까 한다. 이 전략들에 어떤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여러분이 전화에 대한 두려움을 겪고 있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하다.



1) 초점의 전환


긴장한 티가 나고, 말실수가 생기고, 여유가 없어 보이는 이유는 전화를 할 때 자신을 '화자'에 포지셔닝하기 때문이다. 특히 '끊어지지 않고 계속 자연스럽게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정신없이 말을 지어내느라 바쁘고 그 와중에 상대방의 반응도 신경 써야 하니 이래저래 전화하는 상황 자체가 두려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초점을 바꾸자. 전화에 임하는 우리는 '화자'가 아니라 '청자'가 되어야 한다. 꼭 해야 하는 말이 없다면, 당장 생각나는 말이 없다면 억지로 대화를 이어나가지 말자. 그 대신 힘을 빼고 상대방의 말을 주로 경청하자. 시간을 들여 주의 깊게 듣고, 상대가 남김없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자.


상대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넘기고, 여유 시간을 확보한 다음에 그 시간 동안 해야 할 말을 고민하면 된다. 그런데 만약 내가 전화를 건 쪽이어서 말을 해야 할 것 같다면 어떻게 하냐고? 처음부터 서론/본론/결론을 다 줄줄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일단 서론은 제끼자. 그다음 핵심적인 본론만 이야기하면서, 곧바로 상대방에게 턴을 넘기자. '~할 예정인데, 네 생각은 어때?'



2) 다음 기회에


꼭 앉은자리에서 다 답변해야 할 필요는 없다. 전화를 하며 긴장하는 이유는 상대의 물음이나 요청에 바로바로 반응해줘야 할 것 같은, 일종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착한 아이를 연기하려면 피곤하다. 억지로 다 맞춰주려다 보면 솔직하지도 못할뿐더러 금방 지쳐 떨어져 나간다. 따라서 전화를 하면서도 '거절'할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



제가 다음에 다시 말씀드려도 될까요?

지금은 답변드리기 어렵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 좀 해봐도 될까요?



정말 급박한 상황이 아닌 다음에야 대개 상대방은 나의 양해 요청에 화답해 준다. 정리되는 대로 다시 연락해 달라, 기다리겠다 등의 말을 하면서 전화를 마치려 할 것이다. 그러니 용기 있게 '유보', 혹은 '거절'의 메시지를 날려 보자.



3) 전화 울리자마자 받기


개인적으로 '필살기'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전략이다. 전화가 울리자마자 최대한 빨리 받아버리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전화를 당장 받지 않고 한 번, 두 번, 세 번 전화벨이 울리면 점점 긴장도가 더 올라가게 된다. '앗, 어쩌지', '뭐라고 말하지', '아, 준비 안 됐는데', '아, 이 사람 하곤 어색한데',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전화벨 울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긴장/불안을 유발하는 온갖 잡생각들이 머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더구나 전화벨이 더 길게 이어질수록 '앗, 끊기면 어떻게 하지', '전화 늦게/안 받는다고 뭐라 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까지 머리를 휘젓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래서 나는 전화가 울리자마자 웬만하면 그냥 받아버린다. 즉각 받아버리면 온갖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걱정 따위 하고 있을 때인가. 상대방과 인사하고 바로 대화로 들어가야 한다. 처음에는 고민도 안 하고 바로 받아버린다는 발상이 너무 긴장되고 겁도 났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전화를 빠르게 받아버릴수록, 잡생각이 줄고 전화 통화에도 자신감이 붙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정리하면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통화는 빠르게 시작하고, 둘째, 통화 중에는 상대방에게 발언권을 넘겨서 여유 시간을 확보할 것. 나는 이 두 가지 전략을 통해 전화에 대한 능숙한 대처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글을 읽은 외향인 분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른다. '고작 전화 하나 받는데 이렇게까지 고민을 한다고?' 하지만 내향인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다. 자신 있게 전화를 받아 본 게 솔직히 인생을 통틀어 별로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만약 외향인 여러분이 내향인과 전화를 하게 될 일이 있다면 조금만 이해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도 점차 나아지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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