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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Sep 18. 2024

낭만이 없어 서울을 떠납니다.

 시골에서 살아보면 서울은 완벽에 가까운 도시다. 일할 곳 많고, 대중교통으로 안 닿는 곳이 없고, 널린 게 병원이고, 찾으면 나오는 게 은행이다. 차를 타지 않아도 밥을 먹을 곳이 넘친다. 배달앱으로 어떤 메뉴를 검색해도 수십 개의 업체가 대기 중이다. 취미는 또 어떤가 각종 모임에, 클럽에 러닝만 해도 수십 개 모임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차고 넘치는 도시다. 현실을 살아감에 있어 환상적인 도시가 서울이다.


 갓벽한 도시 서울에서의 삶이 현실을 살아가는 최적의 도시라 한다면 현실은 출근이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 그 뒤에 내 삶이 있었다. 출퇴근에 최적화된 환경, 원룸, 대중교통, 인프라, 심지어 식당과 카페의 시스템, 배달앱까지 출근에 최적화되어 있다. 직장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최적화. 그래서 고민이 끼어들 틈이 없다.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일을 하며 정해진 시간을 보낸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아무거나' 또는 '빨리 나오는 걸로'가 선택의 기준이 되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시킬 때마저 고민의 흔적은 없이 '아아'를 주문한다. '뭐 먹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내야 되는 것은 막내직원의 임무가 된다. 이런 경우에는 '최근에 들리지 않은 식당'이 메뉴 선택의 기준이 된다.


 퇴근 후의 삶은 다음날의 출근에 맞춰진다. 하루종일 회사에 뺏긴 시간을 생각하면 남은 시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채워 넣어야 한다. 내일의 일자리를 보장할 수 없기에 자기계발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밀린 빨래와 세탁기를 돌리는 것은 그나마 시간의 여유가 있는 편이다. 머리라도 식히려 유튜브를 켜면 거기서도 '더 잘살아야 된다.'는 압박으로 뇌를 채운다. '더 잘 사는 것'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써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성공적인 삶이 아니라 말한다. 성공은 내일을 열심히 살아야 할 동기가 된다. 이 처럼 최적화된 시스템 안에서는 고민의 틈은 없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최적화되었기에 고민이 사라진 것인지, 고민을 하지 않기 위해 최적화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직장생활에 최적화된 도시 서울에서 '고민'은 자리가 없다. 서울에서 사라진 고민은 취향을 사라지게 했다. 취향이 사라진 인간에게 낭만은 없다.


  서울을 갓벽한 도시라고 말한다면 반대로 시골에는 대부분의 것들이 없다. 일자리, 병원, 은행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찾아가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있다. 심지어 대중교통마저도 차를 타고 나가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배달앱은 '텅'이 기본이다. 그래도 읍까지 나간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면 소재지라는 곳에서는 배달앱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모든 것에 고민이 있다.


 아무것도 최적화되어 있지 않은 시골, 점심메뉴 하나를 고를 때도 고민이 깊다.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마트에 가봐야 할지, 가까운 식당은 얼마나 나가야 하는지, 점심에 밥을 하면 저녁까지 먹을지. 어차피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 한다면 내가 가장만족할 메뉴는 무엇인지. 시골에서 점심메뉴를 고르는 기준은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싶은지'가 된다.


 출근이 사라진 자리에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고민이 있다.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밀린 글을 써서 연재를 할까? 누룽지를 구워 놓을까? 과수원에 알바를 나가서 돈을 벌어 올까? 지역행사에서 스텝을 구하던데 지원해 볼까? 지원사업이 나왔던데 지원서를 써볼까? 오늘 내가 할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내가 오늘 추구하는 '의미'가 된다.


 최적화되지 않았기에 고민의 자리는 널려 있다. 선택의 기준이 '효율'이 아닌 '만족'에 있음에 고민은 깊어진다. 고민을 통해 취향을 발견하게 되고, 취향을 내 삶에 받아들이면 그것은 낭만이 된다.


 시골의 삶에는 고민이 있고, 취향이 있다. 취향을 따르는 삶에 낭만이 있다. 하늘을 보며 사색하고, 동내 개들을 따라 산책하고, 입맛에 맞는 점심을 해 먹고, 날씨에 따라 카페를 가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커피를 고른다. 도서관에 널린 책들 사이에서 나의 취향을 발견한다.


갓벽한 도시에는 낭만이 없었고, 고민이 많은 시골에는 낭만이 있었다.

그 이유만으로도 시골행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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