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는 살면서 소소하게 느끼는 즐거움 중 하나가 밥을 짓는 즐거움이다. 직업특성상 누룽지를 만들기 위해 밥을 많이 짓는 편이지만 내가 먹는 밥을 짓는 재미가 쏠쏠하다. 갓 지은 밥은 반찬이 따로 없어도 맛있다. 계란프라이 하나에 고추장 넣고 살살 비비기만 해도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요리솜씨가 없어 반찬은 거의 인스턴트 아니면 밀키트다. 그래도 쌈을 좋아하는 편이라 거의 밥에 쌈, 약간의 고기를 구워 곁들이는 것이 주식이다. 입맛이 없을 땐 밀키트 주꾸미를 볶음을 애용하는데 쌈에도 잘 어울리는 음식이라 딱이다.
특히 의성이 쌀이 좋아 밥맛이 좋다. 이건 내가 늘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인데, 의성사람이기에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좋다. 밥을 지으면 쫀득쫀득 하달까 밥알이 씹히는 느낌이 좋다. 개인적으로 약간 죽처럼 식감이 없는 밥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밥알이 살아 있는 느낌이 드는 쌀을 좋아하는데 의성 쌀이 그렇다. 그리고 높은 품질에 비해 브랜드도 잘 알려지지 않아 경기도나 전라도의 브랜드 쌀과 비교하면 가성비가 좋은 편이다.
처음 의성에 왔을 때 지역의 어르신이 한 말이 있다. '여기는 리틀포레스트가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고 와서 농촌에 대한 환상을 갖는데 그렇게 되면 시골 생활이 힘들다.' 이런 내용이었다.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의성에 내려오기 전에 귀촌 영상을 많이 봤다. 서울보다 훨씬 싼 임대료에 시골집을 얻어 동네 어르신들이 쌈이며 야채며 바리바리 싸다 주시는, 쌈을 사 먹으면 등짝 스매싱을 당하는 그런 영상들. 하루 종일 밥 해 먹는 고민만 하는 삶.
그런 환상을 100% 믿고 여기 온 것은 아니지만 실제는 많이 다르다. 하루 종일 끼니 걱정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농촌에서의 삶도 먹고사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삶이다. 뭐라도 일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서울에서는 할 일이 천지다. 배달 일도 있고, 알바도 많다. 하지만 농촌은 그런 일을 찾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되는 삶이다.
그럼에도 시골에서의 삶은 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다. 매 끼니마다 오늘은 무얼 만들어 먹어야 하지, 오늘 내가 먹고 싶은 것과 구할 수 있는 재료의 경계에서 고민하다 보면 조금씩 취향이 분명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습관적으로 먹었던 치킨, 피자, 떡볶이 같은 것들 말고, 취향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날은 스테이크보다 두부부침이 맛있는 날이 있다. 어느 날은 치킨보다 김치볶음밥이 맛있는 날이 있다.
음식의 가격이 아닌 그날의 나에게 더 끌리는 음식을 찾는 시간만으로도 시골에 사는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