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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l 12. 2020

구멍 난 양말이 창피하지 않은 이유

언제든 새양말로 바꿔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직장 동료들과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실 때의 일이다.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Kenny! 오른쪽 발바닥에 구멍 났네? 요즘 삶이 고달픈 모양이지?”


오른발을 들어보니 양말 뒤꿈치에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난 그의 말에 개의치 않은 듯 대답했다. “그러게요! 요즘 유난히 오른쪽 뒤꿈치에 구멍이 잘 나네요!”


사실이다. 그 며칠 전에도 오른쪽 뒤꿈치에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있었다. 하지만 양말 바닥에 구멍이 난 것에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언제든 새양말로 갈아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만큼 세파를 견뎌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구멍 난 양말이 창피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70~80년대 그 시절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렵게 살던 시절이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매어 신고, 구멍이 너무 커져서 더 이상 기울 수 없을 때까지 신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친구가 양말에 구멍이 났다고 말하면 창피해서 귓불이 빨개지곤 했다. 더 이상 꿰맬 수 없을 때까지 신어야 하는 양말만 있었기 때문이다.


구멍 난 양말 얘기를 했더니 아내가 새양말을 잔뜩 사 왔다. 젊은이들이 즐겨 신는다는 발목 양말이다. 똑같은 모양에 색깔만 달랐다. 발목 위가 없어서 시원했다. 요즘엔 색을 바꿔가며 그 양말을 즐겨 신는다.


지난 금요일,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던 중, 슬리퍼를 벗어보니 양말 색깔이 달랐다. 한 짝은 흰색, 회색, 검은색이고 다른 한 짝은 흰색, 옅은 감청색, 짙은 감청색 양말을 신고 있었다. 무늬는 같고 색은 다른 삼색 양말을 신었던 것이다.


어!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왔네! 무심결에 내가 말했다. 한 동료가 웃으며 말했다. “Kenny 작가! 일부러 그렇게 신은 거 아냐? 작가답게, 언밸런스한 감각으로!”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젠 구멍  양말을 신거나 짝짝이 양말을 신더라도 창피하지 않구나! 그런 모습을 보고도 직장 동료 간에 서로 무안해하지 않고 웃어넘길  있구나! 그만큼 삶의 여유도 있고 마음도 풍요롭구나!


오늘은 한 친구가 첫 번째 출간했던 종이책의 어설픈 편집에 대한 구매자 평을 해 주었다. “Kenny! 브런치에서 읽을 땐 좋았는데, 종이책을 구매하고 보니 편집이 너무 허접하던데! 전문가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것 같더라.” 솔직하고 정확한 평이었다. 첫 번째는 그랬다. 출판을 위한 편집도 처음 해 보았고, 부크크 플랫폼의 기능도 잘 몰랐으며, 빨리 출간하겠다는 마음만 너무 앞섰다.


그런데 그 친구의 비평이 기분 나쁘지 않고 오히려 고맙게 들렸다. 아마도 이미 네 번째의 종이책을 출간하면서 그 친구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을 좇던 시절엔 다른 이들의 비평과 비난에 무척 민감했다. 쓴소리를 새겨듣기보단, 그로부터 나를 방어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했다.


하지만 이젠 알고 있다. 외부로 드러나는 것보단 내면세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과 내용이 형식을 지배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어떤 것의 외형을 보고 그 내면을 판단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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