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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05. 2020

낼모레 환갑인 兄의 어린이날

해마다 어린이날은 兄에 의한 兄을 위한 兄의 날이다.

형의 생일은 오월 오일이다. 어린이 날은 형의 생일이다. 그래서 해마다 어린이날은 형의 날이었고 오늘도 형의 날이며 앞으로도 어린이날은 형의 날일 것이다. 즉, 형에 의한 형을 위한 형의 날이 바로 어린이날이다. 세 살 터울인 형은 언젠가부터 나보다 키도 작고 힘도 약해졌다. 아마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하지만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림이 없다.


어린 시절 형과 나는 방학이면 거의 강화 초지의 외갓집에 가서 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쁜 부모님께서 방학 때라도 우리를 외할머니께 맡겨 놓으려고 하셨던 것 같다. 언젠가 겨울방학 때였다. 형과 함께 외할아버지의 신사용 자전거를 타고 십리 정도 거리에 있는 이모 댁에 가던 중이었다. 그 날따라 북풍한설이 세찼다. 앞에서 거센 바람을 헤치며 페달을 열심히 밟던 형이 갑자기 자전거를 세웠다.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서 내 손에 끼워 줬다. 그리곤 맨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시 페달을 열심히 밟아서 십리 길을 달려갔다. 그땐 별생각 없이 형이 끼워주는 장갑을 꼈다. 너무 손이 시렸으니까. 그런데 앞에서 핸들을 맨손으로 잡고 묵묵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찬바람을 막아 주던 형의 손이 내 손보다 훨씬 더 시렸을 거라는 생각을 그땐 하지 못했다. 그렇게 형은 동생보다 낫다.


중학생이 되면서 내가 형보다 키고 더 크고 힘도 더 세졌다. 어릴 때부터 그랬지만 중학생 때까진 난 형을 형이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께서 당신이 날 잘못 가르쳤다고 말씀하곤 하셨지만, 난 아주 버릇없고 나쁜 녀석이었다. 형의 친구들에게 00형이라고 했지만 나의 형에겐 형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형의 친구 중의 한 명이 내게 왜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느냐고 야단을 친 적도 있을 정도다. 여하튼 고등학생이 되면서 철이 들 때까진 형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학생 때의 일이다. 한 번은 형과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힘이 센 나는 형을 내 밑에 깔아뭉갠 후 주먹을 들어 형을 몇 대 때리려고 했다. 그때, 깔려 있던 형이 아주 작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꿇어!"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 자신도 모르게 난 깔고 앉았던 형을 풀어 주었다. 형은 일어섰고 나는 꿇었다. 왜 그랬을까? 이것이 바로 형의 권위가 아니었을까?


나는 어려서부터 평범한 형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형은 늘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내가 뭔가 조금만 잘하거나 특별한 일이 있거나 하면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도 오십 대 중반인 동생을 자랑하고 다닌다. 내가 페이스북에 글을 쓰거나, 내 자랑질을 할 때면 어김없이 그걸 자기 페친들에게 공유하는 형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했을 때도, 브런치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했을 때도, 처음으로 종이책을 발간했다고 했을 때도, 형은 어김없이 내가 올린 페이스북을 공유했다. 그런 형이다. 형만  아우 없다는 옛말은 진실이다.


오늘은 어린이날, 형을 위한 형에 의한 형의 날이다. 낼모레 환갑인 형의 어린이날이다. 아버지의 친형제 자매가 없기 때문에 형과 나의 친가 쪽 혈육은 이 세상에 우리 둘 뿐이다. 형의 어린이날이 내년에도, 후년에도, 후 내년에도, 십 년 후에도, 이삼십 년 후에도 형을 위한 형에 의한 형의 날이길 기대하며 기도한다.


형! 생일을 축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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