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은 내면이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목사님이 아들 요나단과 자기 사이에 뽑기를 했던 사울 왕 얘기를 하면서 체면을 버리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도 성숙한 인격체가 되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야 인격이 더욱 성숙해진다는 말씀이었다.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았다. 왜 우리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 가면을 쓴 채로 살아가는 것일까? 특히 한국 남자들은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경험했던 가면 쓴 남자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대로 씨는 정부 중앙부처의 국장이다. 그는 부하 직원들로부터 '가정파괴범'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독설과 강압과 권위로 뭉쳐진 인물이다. 그의 타깃은 자기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속 부하 직원이다. 그중에서도 남자 직원들에게만 그의 끊임없는 독화살이 날아든다. 다른 부서의 직원들에게는 친절하고 교양 있는 고위공직자다. 특히 여자 직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느 날, 부서장의 간청(?)으로 동료와 함께 나대로 씨의 집에 생일선물 배달(?)을 간 적이 있었다. 동료가 부서장의 대리 인사와 함께 물건을 전달하는 동안 그의 뒤쪽에 서 있었다. 그때 집 안쪽에서 앙칼진 고음이 들렸다. "여봇! 빨리 하라고 했잖아! 빨리 안 들어오고 뭐해요!" 나대로 씨가 조용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네~! 들어가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돌아오면서 나대로 국장의 이중적인 모습을 떠올려봤다. 집에서는 아내에게 꼼짝도 못 하면서 직장에서는 직속 남자 부하 직원들을 쥐 잡듯 닦달하는 그의 본모습은 무엇일까?
김천사 씨는 함께 근무했던 직장 선배다. 그는 일터에서 '천사'로 불린다. 온화한 성품과 차분한 일처리로 선후배 동료의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교회에서 그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낮고 낮은 자세로 다른 이들을 대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천사'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그 선배의 부인에게 들었다며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해 주었다. 김천사 씨는 집에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매우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무서워서 제대로 의사 표현도 못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의 부인이 비아냥대는 말투로 말했다고 한다. "천사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천사!" 교회와 직장에서는 천사처럼 보이는데, 집에서는 무서운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는 어떤 사람인가?
이말종 씨는 어느 개인 회사의 오너다. 그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엘리트 과정을 거친 사람이다. 아름답고 이지적인 아내와 예쁘고 다정한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회사 직원들도 그의 비전과 열정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모두 한마음으로 회사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여비서가 성추행으로 이말종 씨를 고소했다. 그의 아내와 회사 직원 대다수는 이말종 씨 편에 섰다. 그의 성품과 평소 행동으로 볼 때, 절대로 여직원에게 수작을 부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를 잘 아는 한 친구는 돈을 노린 꽃뱀 같은 여직원의 꾐수에 넘어간 것이라며 그를 적극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말종 씨는 성범죄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비서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이말종 씨의 내면의 모습은 어떨까?
십수 년 전 정신 건강 상담을 받기 위해 신경정신과 전문의와 장시간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가 말했다. "전문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엔 장기 입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 상당히 많아요. 하지만 그들은 입원은 커녕 신경정신과 진료조차 하려고 하지 않죠. 자기의 정신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에요. 결국 사이코 패스 같은 정신 건강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자신과 주변인들을 힘들게 하면서 말이에요." 그의 진단대로라면 직장에서 일명 "싸이코"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증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함에도 그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그 증세가 점점 더 악화된다고 한다. 특히 남자의 경우에 더 하다고 했다. 여자들은 수다를 떨거나 감정 표현을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만, 남자들은 과묵해야 하고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는 체면 의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대로, 김천사, 이말종 씨 세 사람 모두 다 한국 사회가 낳은 불쌍하고 불행한 남자들이다. 오래된 유교적 사회 전통 속에서 체면을 차리거나 자기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가면을 쓴 채 본모습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 외에도 많을 것이다. 자기를 드러낼 수 있을 만큼 건강한 내면을 갖지 못한 남자들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아들에서 그의 아들로 이어져 온 가면을 쓴 남자들! 나도 십여 년 전까진 "One of them"이었다. 그들처럼 살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남자다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건강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던 경험을 통해 내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금씩 조금씩 가면을 벗고 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치유와 회복을 통해 내면세계가 점점 더 단단해 짐을 느끼고 있다. 오늘도 가면을 벗지 못한 채로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그들도 나처럼 자기를 드러내고 내면의 건강을 회복하길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