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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Oct 05. 2020

아내는 등산을 싫어하지 않았다

앞장서서 산에 올라가는 아내를 보았다

중추절 연휴의 어느 날, 처갓집 같은 처형 댁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모두 나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처형이 동네에 작은 산이 있는데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했다며 산행을 제안했다. 갑자기?


당연히 거절할 것으로 생각했던 아내가 선뜻 함께 간다고 나섰다. 공원 둘레길도 오르막이 있다고 마다하던 아내가 산에 오른다고! 두 처형과 아내와 큰 동서와 함께 차를 타고 인근의 쌍봉산으로 향했다.


산이 별로 높지 않아 보였다. 산 정상에 오르는 계단 입구에서 출발해서 우선 2킬로미터 정도의 둘레길을 걸었다. 작은 산이지만 둘레길 주변의 숲에 울창한 나무들과 빽빽하고 무성한 수풀이 장관이었다. 아내가 말했다. 장가계 같은데!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러게!


울창한 나무와 무성한 수풀이 마치 원시림같은 느낌이었다
이름모를 수풀이 산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둘레길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데크로 만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산 정상에 오를 차례다. 사진을 찍는다고 잠시 머뭇거리던 사이에 아내와 일행이 보이질 않았다. 아뿔싸! 벌써 저 멀리 올라간 모양이다.


낮은 산 같았는데 오르면서 보니 경치가 제법이었다

전직 군인이었던 터라 뒤처지지 않으려고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갔다. 요즈음 채용 시험공부한다고 한 달 정도 앉아만 있었고, 연휴 기간 중 잘 먹은 탓에 몸이 둔중했다. 헉헉대며 쫓아가다 보니 멀리 아내가 보였다. 앞서간 네 명 중 두 번째로 산에 오르는 아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동네 공원 뒷산도 오르막 계단이 싫다던 사람이 저렇게 앞에서 올라가고 있다니!


헉헉! 헥헥! 후유!

숨 고르기를 해 가며 열심히 뒤쫓아 올랐다. 산 정상에 올랐는데, 아내가 보이질 않았다. 둘러보니 3층짜리 전망대가 있었다. 아내는 이미 그 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아내는 등산을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산꼭대기에서 다시 전망대 꼭대기에 올라간 아내와 처형


그럼 뭘까?

동네 공원의 뒷동산 오르막 계단은 그토록 오르기 싫다더니, 아내가 쌍봉산에 오른 이유가 뭘까?

궁금하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아내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전망대의 쌍안경으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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